사람의 재발견
원래 징징거리는 성격이라고 한 걸 기억하실 겁니다. 처음 강한 갱년기 증상을 느껴 화들짝 놀란 뒤로, 일주일 동안은 강의하는 클래스마다 그걸로 징징거렸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는 남성 수강생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여자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는 법이지만, 거기에 남성동지가 계시면 우리가 유난스럽게 보일 수 있잖아요. 다들 겪는 걸 가지고 어린애처럼 구는 건 멋쩍은 일인데, 낭독하시는 분들은 내면이 아름답습니다. 강사의 하소연을 말간 얼굴로 다 들어주십니다. 성과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것은 지난 이야기에 풀어놓았고요, 두 번째 성과는 이것입니다. 이것도 강력합니다.
“저 갱년기인가 봐요.” 고백하고 나니, 내 수업에 참여하는 수강생분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로 공공도서관 등의 기관에서 낭독을 강의합니다. 배우러 오시는 분들은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지만 40대~50대, 즉 50세 전후의 여성이 절대다수입니다. 그래서 갱년기의 고통에 많이들 공감하셨던 겁니다. 그 시기를 아직 만나지 못했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분들보다는, 강도는 상이할지언정 현재 겪고 있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아, 나는 왜 그토록 생각이 짧았을까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갱년기 증상으로 힘든 상태라는 걸 왜 고려하지 못했을까요. 이제야 그들이 다시 보였습니다. 아니, 이제야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듯했습니다.
전에는 그저 순수하고 맑았던 분이 요새는 왠지 가라앉고 어두워져서 일상을 물어보면, 조심스레 이야기합니다.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다고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우울하니 낭독 수업에도 오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나왔다고요. 약 5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분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한 분이 아닙니다. 여러 수강생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계셨습니다.
낭독은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목소리는 영혼의 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낭독이 힘들었던 겁니다. 어떤 분은 너무 강해서 힘을 빼드려야 했고(갱년기의 울분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대체로는 약하고 우울해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낭독이 우울하면 안 된다, 광대를 올려 밝은 소리를 내라, 글의 분위기를 낭독에서 잘 살려야 하는데 이 글이 그렇게 어둡냐 등등, 그들이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했던 지난날이 미안했습니다.
[인간 시장]을 쓰신 국민작가 김홍신 선생님의 수많은 저서 중 아주 직관적이고 인상적인 제목의 산문집이 있습니다. [겪어보면 안다].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입니다. 직접 겪어보면 다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이 들어갈수록 세상에, 사람에 너그러워지게 되나 봅니다. 내가 갱년기 증상을 ‘겪어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당신 마음이 우울하고 어둡다면 그런 낭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신다운 낭독이니 가장 좋은 낭독이다, 억지로 마음을 끌어올릴 필요 없다, 그저 목소리를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낭독이니까요.
이제는 강의 시간에 내 갱년기 운운할 계제가 못 됩니다. 지난 글에 토로한 것처럼 이 시기를 잘 흘려보내기로 결심한 후 사실상 호전되기도 했고, 강의하는 사람에겐 학습자들이 우선이니까요. 내 것이 아닌 그들의 갱년기가 더 중합니다. 이제 나의 목표는 새로워졌습니다.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힘겨운 그들이 낭독을 통해 이전보다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끔 돕는 것입니다. 실제로 좋은 사례들이 많습니다. 갱년기에 너무 무기력해서 뭐라도 해볼까 하고 낭독수업에 신청했는데, 이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며 ‘하고 싶은 것’이 생겼으니 후속 강의로 더 가르쳐 달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갱년기의 불면증을 낭독으로 극복했다는 간증은 셀 수도 없고요. 저 역시 기분이 가라앉고 아무 의욕이 없을 때 ‘매일 낭독 프로젝트’와 함께 글을 낭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워밍업이 되고 다시 가족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게 되곤 합니다.
갱년기를 하나의 발달단계로 본다면 이 시기의 발달과업은 ‘이해’와 ‘배려’인 듯합니다. 이제 다시, 나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더 깊이 배려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또한 갱년기의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엔 절대적으로 좋은 것도,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