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否定)과 수용(受容)
강한 갱년기 증상을 겪고 화들짝 놀란 뒤 몇 주가 흘렀습니다. 민망스럽게도 여기저기서 ‘나 갱년기!’라고 떠벌였으며 그것이 가족들에게는 선전포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갱년기 맞아?’라는 생각이 스멀거렸습니다. 더 이상 갑자기 덥지 않았고 별안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도 없었습니다. 무기력하거나 우울하던 것도 사라져 있었습니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증상들이 있어도 그런갑다, 하고 무시해 버렸기에 실제 증상이 있는지 여부를 감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라? 역시 인생은 이런 것이군. 말로, 글로 실컷 하소연하니 그야말로 ‘이 또한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 보십쇼. 내가 뭐랬나요? 갱년기도 흘려보내는 거라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쯤 되니 그간 징징거렸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으나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갱년기를 흘려보내기. 이것은 부정(否定)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정하고 수용한 것입니다. ‘내가 갱년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고집 피워 봐야 소용없습니다. 더 딱한 노릇입니다. 변해가고 노화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렇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이 항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무기력한 것은 갱년기이기 때문이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나 갱년기라서 이렇다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변명이며 회피입니다. 갱년기라는 예쁘지도 않은 말 뒤에 숨어서 양해를 얻고 싶은 겁니다. 이건 마치, 내 남편이 자신이 자상하지 못한 것은 경상도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편이 반려인을 잘못 만났는지, 나는 이런 말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경상도 남자라는 말 뒤에 숨으려 하지 마라. 그건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더군다나 당신은 경상도 남자도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지 않았는가.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이라고 해서 당신까지 경상도 남자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오!”
갱년기를 흘려보낸다는 것은, SO WHAT 정신입니다.
응, 나 갱년기구나.
그래서 뭐?
자신을 향해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내가 예전 같지 않지. 좀 힘들긴 한데 괜찮아. 곧 지나갈 거야. 이런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흘려보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갱년기 증상을 10년씩이나 겪을 일도, 평생 간다는 말을 할 일도 없을 겁니다. 내가 부정할 수 없이 갱년기 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통스럽게 지내기를 거절하고, 지혜롭게 이 시기를 보내기로 선택하니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고 힘든 증상들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더 겪어 봐라, 말하고픈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더 겪어 보겠습니다. 겪으면서 계속 써 보겠습니다.
친구가 물어옵니다. 좀 어떠니. 병원에는 가 봤니. 아니, 나 괜찮아. 말짱해졌어. 으하하하. 그야말로, 내가 언제 갱년기라 그랬어?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 저에게는 거의 귀인급인 지인께서 선물로 주신 지상 최고의 영양제를 추가로 섭취했더니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영양제 궁금하시면 메일로. ㅎㅎ)
그러나 가족에게는 비밀입니다. 그들에게만큼은 난 멀쩡하지 않아야 합니다. 좀 더 비밀병기로 써먹어야 하니까요. 그러니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