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감사 1

별게 다 감사

by 낭랑한 마들렌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기분 좋게 귀가하고 있었습니다. 전철역사에 있는 다2소에 들러 고양이털을 삭제할 돌돌이 등 몇 가지 물건들을 사고 버스를 탔습니다. 날은 무척 춥고 바람은 굉장하게 불어대는군요. 추운 저 밖으로 나가기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릴 곳이 다가오자 하는 수 없이 하차벨을 누릅니다.


버스가 정차하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마을버스이기도 하지만 내가 내린 정류장은 특히나 타고 내리는 사람이 아주 드문 곳입니다. 그런데 앞문으로 누군가 타려 했습니다. '여기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군.' 생각하며 교통카드를 다시 찍는데, 순간 멈칫하게 됩니다. 내 속으로 낳아 내 손으로 기른 자식은 단박에 알아봅니다. 나의 사고 많은 아니, 사랑하는 막내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시간에 학원엘 가는 것이었지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웃었지만 모자상봉에 버스 정체를 유발할 수 없으니 부지런히 내립니다. 그래도 할 말은 합니다.


아들! 우리 교대하네.
잘 다녀와~


너는 타고 나는 내리고. 아들도 나에게 웃어줍니다. 손도 들어줍니다. 정류장에 선 채로, 버스가 움직일 때까지 나는 계속 손을 흔듭니다. 언제나 하는 버릇입니다.


매일 아침 등교할 때, 나는 세 아이가 각각 집을 나설 때마다 현관까지 따라나가서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배꼽인사를 합니다. "안녕히 다녀오십쇼!" 그러고는 현관문을 열어 잡은 채로 엘리베이터가 와서 아이가 탈 때까지 계속 말합니다. 수고해. 잘 다녀와. 오늘도 잘 지내. 맛있게 먹고 와. 재미있게 하고 와. 사랑해. 뽀뽀 쪽 등등.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가끔 과해질 때는 '이제 그만 좀 들어가시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다 옆집 사람들이라도 나오면 크게 눈치를 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늘 하던 대로 나는 버스 안에 앉아 있는 막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입모양으로나마 "잘 다녀와."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이 사춘기 아들내미도 나와 꼭 같이, 웃으며 계속 손을 흔듭니다.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몇 초 동안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깃든 생각.


감사하다.


내가 힘겹게 갱년기를 지나고 있듯, 나의 세 아이들도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며 사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대상이 가족이라 해도 타인을 배려할 여유 따위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아이는 나를 향해 저리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크고 목소리도 굵어지며 아이 취급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제 곧 고등학교에 입학할 남자아이가, 엄마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얼마나 고맙던지요.


감사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이 일상 되는 것이 감사입니다. 나를 향해 손 흔드는 아이를 보며 감사가 마음속에 차오른 주말 저녁, 더 이상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음. 이 글 쓰고 있는데, 수업 끝났으니 데리러 와 달라네요. 아...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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