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더 이상 시험이 없는 때
[목민심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며 지나쳤던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들—[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제목은 익숙한데, 막상 서로 헛갈리기도 했고요. 목민심서, 흠흠신서... 그때는 이상하게도, 그 익숙함이 오히려 책을 펼칠 마음을 앗아갔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조금 더 ‘재미로’ 했어야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쓴 [마과회통]은 무엇에 관한 책인지, [흠흠신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외우는 일도 물론 의미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책들 가운데 단 한 권이라도 실제로 읽어보는 경험이 아닐까요. 학생들에게 살아 숨 쉬는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오래전 일처럼 여전히 바라게 됩니다.
오늘 읽은 [목민심서]는 어린이용입니다.
어쩌다 어린이용을 읽게 되었느냐, 안쓰럽게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독서지도 준비를 위해 읽은 책이니까요.
글을 쓴 이성률 작가님은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어린이책을 꾸준히 써온 분입니다.
이 책에서도 고서와 원저자에 대한 정보, 역사적 맥락을 놓치지 않는 전문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부에서는 ‘[목민심서]를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통해 다산 정약용의 삶과 업적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냅니다. 2부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참된 도리’를 중심으로, 방대한 원문을 핵심만 뽑아 쉬운 말로 설명해 줍니다. 어린이들에게 낯선 용어에는 꼼꼼한 각주도 달려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기억나지 않는 말들이 많아 각주까지 샅샅이 읽었습니다.
어린이책이라고 해서 가볍지 않습니다. 내용은 오히려 풍부합니다. 이런 책을 많이 읽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단단한 사고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 지식이 지혜로까지 이어지기를 조용히 바라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늘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목민심서]는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그분의 어질고 곧은 성품이 글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작가는 다산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비견할 만한 인물이라 말합니다. 예전에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을 읽고 ‘참 고상한 인물’이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도 다산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그때는 괜히 뿌듯했더랬지요.
시대는 달라졌지만, 지금의 목민관들—오늘날로 치면 시장이나 군수, 혹은 지역사회의 고위 공무원들—에게도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부디 읽고, 함께 토론하고, 곱씹으며 백성과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 주었으면 합니다.
책 속 문장 몇 가지를 나눠봅니다.
다산 선생님은 목민관으로 부임하는 올바른 자세부터 지도합니다.
이부자리와 베개, 솜옷, 그리고 책을 한 수레 싣고 가야 목민관다운 행장 꾸리기라 할 수 있다.
공무원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로 읽힙니다. 그런데 요즘의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과연 책을 읽고 있을까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듯한 인물들이 유난히 많아 보여 안타깝습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잘 살아내야 합니다. 삶으로 보여준 것만이 결국 남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누구나 그럴듯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말한 대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이라면,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주기를 바랍니다. 그게 마땅합니다.
옳지 못한 이익에 빠져서도 안 되고 권력에 아부를 해서도 안 된다. 윗사람이 독촉하더라도 옳은 일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엊그제 낮, 속보로 접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징역 23년 선고. 안타까운 세태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고전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목민관을 교체한다는 공문이 오면 즉시 떠나고, 미련을 갖지 않아야 맑은 선비라 할 수 있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물러나야 할 때는 담담히 떠나라는 말입니다. 쉽지 않기에, 이렇게까지 권면하는 것이겠지요. ‘맑은 선비’라는 표현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맑은 선비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전생에 분명 남자였던 것 같지요.
인재가 되어 천하를 잘 다스리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가족과 친척을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셋째,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다.
넷째, 어진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다.
‘천하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라 했지만,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밖에도 마음에 남는 문장들이 참 많았습니다.
목민관뿐 아니라, 리더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책입니다. 다음에는 요약본이 아닌 성인용 [목민심서]로, 제대로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고전이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왜곡 없이 잘 쓰인 것으로 어린이용이나 청소년용의 책을 읽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읽은 뒤에 나의 통찰을 가져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쉽게 시작해서 확장해 나가면 되겠습니다.
고전은 읽을수록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책장을 덮으며, 목민관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아마도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목민심서]를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