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각들
이때만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앙상하던 가지에 여린 잎이 제 모습을 드러낼 때
프리지아가 꽃집을 가득 채울 때
벚꽃이 도로 가득 꽃비를 내릴 때
장미가 자그마한 봉오리를 피어내고 꽃망울을 맺을 때
능소화가 그 쨍한 주황빛으로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알릴 때
초록빛을 띠던 나무들이 노란색과 빨간색을 입을 때
나무들에 눈꽃이 내려앉을 때
계절이 변하면서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그때가 지나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올해의 내가 볼 수 있는 이 모습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계절이 변할 때를 사랑하던 나는
절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봐야 하고 해야 하는 것들이 절기마다 생기고 있다.
입춘에는 아 추워 이게 무슨 봄이야 말하지만 땅속에는 봄이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우수에는 피부로 조금씩 봄이 느껴진다. 그러니 두릅 전, 냉이 된장찌개같이 봄나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한다.
경칩에는 점심 산책을 시작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프리지아를 퇴근길에 한 다발씩 사 주방 꽃병을 채운다.
춘분에는 봄이 오는 걸 개나리가 홀로 노란빛을 띠며 알려준다. 개나리 사진을 찍으며 이번 봄이 이렇게 오는구나 느껴줘야 한다.
청명은 벚꽃이 맘껏 피는 때다. 하루라도 놓치면 아쉬우니 점심이든 저녁이든 벚꽃이 한껏 핀 길을 매일 걷는다. 그리고 은행잎이 아주 작게 우리가 아는 그 은행잎의 모양 그대로 잎을 낸다. 보고 있으면 아유 귀여워 소리가 절로 나니 그 귀여움을 꼭 구경해야 한다.
곡우에는 비가 오고 나서 온 자연이 자기 향을 맘껏 내뿜는다. 나무가 가득한 곳에서 그 향을 가득 담아야 한다.
입하에는 거리를 걸으며 꽃과 봉오리를 구경하기 바쁘다. 온 거리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고 장미가 다음 절기에 올 거란 걸 예고하듯 그 꽃봉오리가 생긴다.
소만은 잔디에 작은 꽃들이 가득하다. 돗자리 하나 가지고 나무그늘 아래 잔디밭에 누워있어야 하는 때다. 그리고 장미가 5월에는 역시 장미지? 하며 그 예쁜 잎을 피운다.
망종에는 진짜 더운 여름이 오기 전 바깥 날씨를 맘껏 즐겨야 한다. 점심에 반짝이는 해를 느끼며 뛰기도 하고 바깥에 하루 종일 있는 페스티벌도 가고 초록여름을 마구 느껴야 한다.
하지는 뜨거운 여름의 시작. 집에서 복숭아에 스파클링 와인이나 토마토에 시원한 맥주 한잔을 퇴근 후에 즐겨야 한다. 여름의 맛을 즐길 수 있을 때다.
작은 더위라는 뜻의 소서. 이번 소서는 이건 커도 너무 큰 더위가 온 것 같았는데 땀 흘리며 하는 저녁 산책 중 가끔 보이는 능소화와 초록이 가득한 나무에 휴우 이게 여름이지 뭐 하며 찬물로 씻고 에어컨 아래서 수박을 먹어 줬다.
대서에는 더위와 폭우에 자꾸 자꾸 지친다. 그러니 나를 달랠 뭔가를 자꾸자꾸 줘야한다. 이거 먹을래? 이거 볼래? 이거 해볼래?? 나에게 자꾸 물어보고 내일을 기다릴 이유를 꽂아둔다. 아 그래도 이번 대서의 하늘은 더 파랄 수 없게 파랬다. 기억해둬야지.
다가올 절기들에도 이렇게 하나씩 기록해 볼 생각이다.
이때만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2 를 써야지. 지금을 즐겨야 하는 이유를 잔뜩 만들어놓으면 내년을 시작할 때쯤은 이게 다음을 기대할 이유가 되어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