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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시딘 Mar 08. 2020

삶인가? 아니면 연극인가?

-샬롯 살로몬 ‘Life? or Theatre?’

그날부터 였다. 나의 심장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정확히 29년전 그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낸 그날부터 였을 것이다. 낡아가는 백색의 산부인과 병실, 드문드문 페인트 자국이 떨어지기 시작한 병실의 마호가니빛 문, 그곳으로 들어온 두 여인이 흰색 누빔 강보에 싸인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의 심장은 삭아들기 시작했다.

의사는 유전질환이 꽤 늦게 발현된 편에 속한다고 했다. 판막이 조금씩 삭아들어가는 건 나의 운명이었다. 

스물 두살의 나와 딸의 운명은 그렇게 심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땐 몰랐고,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일이다.


“함께 하실 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강미자 여사님이세요.”

베드에 돌아누워있던 여자는 간호사의 말에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미라 폰 슈트크, 27세. 여’

베드 발치의 비닐에 싸인 이름표가 창백한 형광등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나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지을 수 있는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남도 끝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그녀는 꽤나 젊은 축에 속하는 환자일 것이다. 심장 한쪽 끝이 너덜거리는 느낌이었다. 통증이 일었다. 가슴으로 손을 가져가지 않기 위해 맞잡은 양 손을 더 힘껏 거머쥐었다. 우리의 심장은 함께 아프지만, 지금 그녀의 심장이 더 아플 것이다. 운명으로 이어진 관계, 그녀는 나의 딸이다. 매주 두 번 세시간, 호스피스로서 너를 만나겠지만 너의 아픈 심장을 만져주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손을 맞잡기도 너무 짧은 시간인 것이다.


연극을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무대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졸업 후 바로 극단에 들어갔고 막내로서 최선을 다해 생활했다. 배우로 역할을 맡으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무대 밖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배역을 위해 불태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몰입,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그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연극이란, 그리고 그 안의 배우란, 삶과 완전히 일치하여 연소되는 그런 것이었다. ‘자신’과 연극이 쪼개져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사랑은 순수히 나의 것이었다. 그건 그가 함께 있는 극단 내에서 완벽히 비밀스런 관계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겐 이미 삶과 연극을 공유하는 부인과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내 모든 것은 너에게 있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게 맡겨두고 버려두었다. 자신의 딸 미라까지.


미라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이 곳 호스피스 요양원에 들어오고 이 주간 그녀의 일상은 똑같았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스트레칭을 한 후,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물감과 재료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서쪽 행정동, 하얀 빈 벽에 벽화를 그리는 작은 임무를 맡았다. 서 있거나 쪼그려 앉는 일이 힘들어지면 그녀는 자신의 드로잉북에 그림을 그린다. 풍경이 다르게 느껴지는 날은 하루 종일 드로잉북에 매달릴 때도 있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 그림을 보거나 함께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말이 많지 않았지만, 스케치를 하며 감흥을 주는 풍경을 볼 때 말이 많아진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그녀의 눈이 빛나고, 종달새가 지저귀듯 특유의 톤 높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 빛나고 아린 순간을. 매끄러운 토란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을 데굴데굴 굴러 마침내 눈가에 눈물이 되어 고였다.

나는 여러 번 그 작고 아린 토란들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 참아야 했다.


“여사님이 자란 곳은 어떤 곳인가요?”

개망초가 드문드문 피어있는 언덕에서 그녀는 드로잉북에 선을 그으며 툭, 질문을 던진다. 손끝으로 풀잎을 으깨던 나는 집중한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배우였다. 이번에도 개망초보다 더 화사하게 웃을 것이다.

“서울이에요. 그냥 태어나서 계속 서울에 있었어요.”

너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다시 극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소개로 작은 무역회사에 취업한 후 작은 책상을 무대로 일과 공부에 매달렸다. 그래, 너는 아마 나의 기사를 한번쯤 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니가 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미지인터네셔널’. 그래, 아시아 최고의 여성용품 회사의 이름은 바로 너의 태명이다.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보낸 너의 이름.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랐어요. 태어난 곳은 서울이래요. 아버지는 한국계인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한국아이를 입양하셨대요. 근데, 또 입양하고 나니 그저 그랬는지 제가 문제가 있었던 건지, 하여간.”

미라는 작은 붓을 들어 초록 물감을 찍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그림을 들여다보기 위해 숙인 머리에서 갈색 머리카락이 빠져나와 갈대처럼 나부꼈다. 자꾸만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나도 모르게 손을 가져가 쓸어 귀에 꼽아주었다. 놀란 그녀가 고개를 갑자기 들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해요.”

“그렇지 않아요. 머리카락이 방해가 되었죠.”

엄마 덕택에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은 그녀가 유전병으로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여러번의 수술과 간병, 지쳐가는 그들은 점점 그녀에게 냉담해졌다.

“그분들이 차가워졌다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고요. 하여간 좋은 분들이시죠. 원하는 공부 하게 해주시고 이렇게, 치료 불가능한 지경이 되니 제 소원대로 한국으로 보내주시고.”


미라는 뚱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살랑이는 바람이 풀잎을 스치고 그녀와 나를 감쌌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드로잉북에 시선을 가져갔다.

“그림이 좋아요. 근데, 한국의 부모님은 만나보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초록물감에 흰 물감을 살짝 문질러 점을 그리듯 붓질했다.

“이런 제가 나타나면 그들은 슬프겠죠. 누구에게든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곳에 온 것으로, 그냥 만족하려고요.”


초록과 연두, 노랑과 분홍이 있는 벽화. 그녀가 그린 숲 앞에 나는 작은 새집을 달 것을 제안했다. 우리가 먹는 간식을 조금씩 새와 나눠먹자는 말에 그녀는 눈을 빛내며 기뻐하다가 다시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없어져도 먹을걸 갖다놓을까요? 아, 여사님께 부탁드리면 되겠다.”

반짝이는 눈의 그녀를 외면하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밝게 웃었다.

“그래요, 그렇게 할께요!”


우리가 가진 병은 심장판막이 녹아내리는, 모계 유전병이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는 병의 존재를 몰랐다. 발현시기와 진행속도에는 개인차가 있다고 했다. 미라의 심장병은 4살 때 발현되었다. 나는 40대 이후 병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아주 조금씩, 그러다 희망을 주듯 그 얇아진 판막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다가 녹을 듯 동공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미라의 심장은 이제 시한폭탄과 같다고 했다. 투명한 바람을 맞대고 앉은 우리는 두 개의 시한 폭탄인 셈이다. 


나는 그저, 이주간의 시간동안 그녀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그녀 옆에 앉아 함께 간식을 먹고 새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가는 날이면 먼 길을 운전하며 계속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의 만남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가끔 조여오고 느려지는 심장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


유리창 가득 초여름의 탱탱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던 그날.

우리는 나가지 못했다. 파리한 얼굴의 그녀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간밤에 그녀의 심장은 꽤 오래 멈추었다. 전조증상. 간호사는 어두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는 잠든 그녀의 옆에 앉아 사물함 위에 놓인 드로잉북을 펼쳤다. 가장 최근에 그린 그림을 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나란히 누운 두 여인. 모녀로 보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맡의 창문가에선 천사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 침대에서 하늘로 이어진 푸른 공간엔 순백의 영혼들이 천국의 문으로 줄지어 향하고 있다.

“엄마가 보고 싶은가봐요.”


미라는 힘없이 웃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한 엄마는 곧 만나겠지만. 그림 속의 그분은 만나지 못하고 가네요. 얼굴을 알아야 나중에 만나더라도 아는 척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목이 메었다. 그러나 담담하게, 냉정하게 다시 연극무대에 오른다.

“걱정말아요. 그분이 미라 씨를 알아볼 테니까요.”

안심한 표정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베게에 머리를 대고 돌아누운 그 순간, 바이탈이 요란한 경고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물러섰다. 응급벨이 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간호사는 나를 보며 착찹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없이 병실 밖으로 나온 나는 멍하니 주차장으로 걸어가 차에 올랐다. 손에 들린 미라의 드로잉북. 첫장의 그림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시동을 걸었다. 숨이 차오른다. 일단 이곳을 떠나야 했다.


초록으로 변하기 시작한 숲을 지나 국도로 접어든다. 굽이치는 길, 굽은 도로를 알리는 화살표가 마치 내가 갈 곳을 알려주는 듯 선명하다. 심장이 쪼개지는 아픔이 스며오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알아볼게. 우리의 심장이 같다는 걸 그때는 너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하다.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했다. 나의 ‘미지’. 네가 나에게 왔을 때 정말 ‘미지’의 상태인 너에게 나를 걸 수가 없었다. 살고 싶었다. 그러나 너의 잔해는, 나의 마음속에 늘 어둠이자 빛이었다.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제 네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나의 심장이 여기까지라서, 오늘까지라서 행복한 마음이다.


눈물이 멈춘다. 

가슴을 조이던 통증이 멈추고 육체는 차와 함께 그대로 튕겨 앞으로 돌진한다. 

심장과 몸을 벗어난 나는 너무 가벼웁다.

너의 손을 잡으러, 나는 이제 그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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