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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시딘 Aug 15. 2021

인어공주

저 멀리 드넓은 바다에.. 인어공주들이 살았습니다.  

     

아이는 눈을 빛내며 활짝 웃었다. 미은은 책읽는 자신의 목소리가 여전히 낯설었다. 일테면 첼로같은, 낯선 악기를 끌어안고 소리를 내기위해 애태우다가 포기해버리는 마음이랄까. 나레이션과 등장인물에 따라 변주하려고 최선을 다 해도 결국 모두가 미은 자신이었지만, 여섯 살 아이는 인물에 과감한 상상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도 아이는 진지하게 들었고, 많이 웃었다. 그날도 책을 읽어주며 거실에 앉아 있는 그런 평범한 날 중의 하루였다. 몸을 말리던 인어공주가 난파선의 왕자를 발견하는 대목이었던가.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지던 순간, 바로 그 순간. 

    

세탁기가 멈췄다.      


미은은 기다렸던 일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엄마 세탁기 좀 보고 올게.”

세탁기 앞을 서성이며 강제 배수 버튼을 누르고 수동으로 세탁기 문을 열었다. 견고하게 닫혀있던 문이 빠진 소리를 내며 부서지듯 틈을 보였다. 적은 해초처럼 바닥에 엎드린 세탁물이 다른 세계의 이물질처럼 보였다. 순간, 난파선을 바라보던 인어공주의 마음이 떠올랐다. 해변에 소풍가듯 나온 평범한 날, 그저 따끈한 햇볕이 없어 서운한 그녀는 무심히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래, 그곳에서 가끔씩 인간의 배가 난파되곤 하지. 파도의 휩쓸리는 모레처럼 배는 산산이 부서진다.       

싱크대에 설치된 세탁기에게도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전, 결혼과 함께 지금의 24평 아파트에 설치한 세탁기는 정면에서 세탁물을 넣는 드럼형이 처음인 그녀에게 그저 신기했다. 빌트인 제품이 아닌 탓에 설치기사가 이리저리 요령을 부렸지만 세탁기는 싱크대보다 손가락 한마디정도 낮았다. 어긋난 부분에 음식물이나 이물질이 끼지 않도록 은색 방염테이프를 붙였다.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엔 미리 딱 맞게 빌트인 해 넣어. 멋지고 좋은 걸로!”

식탁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은색 테이프가 눈에 거슬렸는지 남편은 밥을 먹을 때마다 그녀에게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달걀 프라이를 남편 앞으로 덜어놓으며 미소 지었다. 반복되는 말은 여름날 식탁에 두고 잊어버린 찬밥처럼 쉬어 버렸다. 남편에겐 그녀도 세탁기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걸 이젠 알고 있다. 

    

그녀는 기역자로 꺾인 씽크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빙글대며 돌아가는 세탁물을 바라보곤 했다. 처음엔 집안에서,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세탁장면이 신기했다. 회사에 다닐 땐 주말아침에 눈뜨면 빨래를 돌렸다. 토요일 오전, 남편은 늦잠을 잤다. 커피를 내리며 빨래를 넣었다. 갓 내린 커피잔을 감싸 쥐고 세탁기 앞에 쭈그리고 주저앉았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세탁기를 돌렸다. 

부엌과 베란다 창을 열면 맞바람이 치는 집 안에서 싱크대 앞은 바람의 통로가 되었다. 계절에 따라, 혹은 매일 달라지는 공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난방선의 시작점도 바로 부엌 싱크대 앞 세탁기 부근이었다. 겨울이면 다른 바닥보다 유난히 뜨끈한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곤 했다.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그 시간은 하루 중 그녀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물을 보다가 최면에 걸린 듯 나른해져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빙글거리며 돌기를 멈춘 세탁기는 의식을 놓은 환자처럼 입을 벌리고 그녀를 기다렸다. 고무장갑을 한 짝씩 손에 끼웠다. 유난히 손이 작은 미은에게 어떤 고무장갑도 헐렁했다. 형광분홍의 고무장갑을 낄 때마다 늘 타인의 외피 같다고 생각했다. 비눗물을 머금어 둔탁하고 무거운 옷들을 플라스틱 대야에 담고 손세탁 위해 베란다로 대야를 옮겼다. 책을 밀쳐둔 아이는 그새 잠이 들었다. 얇은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고무장갑을 꼈다. 남편의 셔츠를 집어 문지르자 부걱부걱 거품이 일었다. 성의 없는 세탁기 속에서 오래 묵은 때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비눗물과 옷을 빨래판에 놓고 힘껏 문질렀다.  

잠시 쪼그려 앉은 채로 거실을 바라보았다. 바로 누워 곤히 잠든 아이 너머로 입을 벌린 세탁기가 그녀를 바라본다. 이물질이 끼지 못하게 붙여둔 은색 방염테이프는 기름때에 절어 너덜거렸다. 뜯어진 틈으로 일상의 부산물들이 빠지고 끼어들었을 것이다. 몇 번 뜯어내고 붙였지만 다시 반복되었다. 닦고 치워도 때는 끼고, 빨고 또 빨아도 세탁물은 매일 쌓였다. 거품같은 일상이었다. 헹궈내고 헹궈내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거품.

아이의 입이 오물거리듯 움직였다. 아이와 남편, 그녀가 계속 일어나는 거품에 물을 붓고 헹궈낼 때 그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꾼다. 가장의 의무와 버거움에 대해 말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자신이 일을 할 테니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는 것이 어떠냐고, 진심으로 제안했다. 남편이 상한 조개처럼 입을 굳게 다문 그때부터 그녀는 매일 자신의 안에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을 들어야했다.      


왕자는 그의 연인인 이웃나라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했다.

 “이웃나라 공주는 생명의 은인이오. 아름답고 착한 그녀를 나는 정말 사랑해요. 행복하게 해 줄거에요.”  

   

이제는 외워버린 동화책의 이야기가 하나씩 떠오른다. 두 개의 바다가 만나는 어두운 해안, 머리가 짧아진 그녀의 언니들이 칼을 건네준다. 울먹이는 표정의 인어공주.       


“이 날타로운 칼날을 봐! 해가 뜨기 전에 넌 왕자의 심장에 이걸 꽃아야 해. 왕자의 뜨거운 피가 네 발을 적시면 발이 다시 하나가 되어 변할거야... 서둘러! 서둘러! 하늘의 저 빨간 기운을 봐! 몇 분 있으면 태양이 떠오르고 넌 죽게 된단 말이야.”

...

“돌아올거지?”

큰 언니의 질문에 인어공주는 돌아서서 언니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왕자가 있는 궁전으로 돌아섰다.     


사는 일은 크고 작은 질문에 답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해왔다. 그러나 결혼 후의 세계에선 질답 대신 그저 받아들어야 하는 일이 대부분임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평생 여자로 살았으니 몇 년간은 엄마나 아내로 사는 것도 괜찮을 거야.”

그녀가 그만두던 날, 마케팅 본부 이사는 인사 온 그녀를 다독이며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멋진 말이라는 듯 대견한 표정을 짓는 그가 미은은 좀 웃겼다. 그리고 속상했다. 그녀는 여자로서 회사를 다닌 것이 아니었다. 엄마나 아내의 시간.... 그렇다면 당신은 아빠와 남편의 시간으로 얼마나 살고 있는가,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엄마, 다시 책 읽어줘.”

잠에서 깬 아이는 너덜거리는 인어공주를 들고 베란다 앞에 와 섰다. 쪼그려 앉아 세탁물을 문지르느라 팔과 다리가 저려왔다. 빨리나와 읽어달란 말이야, 읽어달라고..... 잠이 덜 깬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작은 욕실의자를 가져다 아이를 빨래가 담긴 대야 앞에 앉혔다.  

“세탁기가 없었던 때는 외할머니랑 엄마는 이렇게 빨래를 했지. 비누 거품은 빨래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지.”

통에 담긴 빨래를 주무르며 아이는 신나게 비눗물을 만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거품을 손으로 휘젓던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거품이 사라지면 안 되는데.”

미은은 미끄덩해진 아이의 손을 잡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잖아. 이렇게 사라지면, 왕자님을 볼 수 없으니까.”

아이의 슬픈 얼굴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함께 읽던 책의 결말을 떠올려 보았다. 결혼식 전날 왕자를 찌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는 인어공주. 사랑의 화신이 되고 천사의 시종으로 영혼이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결말이었다. 그녀가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의 결말은 그저 왕자의 사랑을 빌어주며 거품으로 바뀌어 부부 앞에서 ‘사라져주는’ 것으로 기억했다.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해서인지, 실제 원작을 반영한 것인지 새드엔딩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의 코끝에 슬쩍 거품을 묻히며 미은은 웃었다. 

“거품이 되어 우리 몸과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천사가 되었잖아.”

“그래도 인어공주는 사라져서 왕자님도 못 보고 해변에서 따끈한 햇살도 못 쬐고..... 왜 다른 사람만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슬프잖아.” 

아이는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욕망에 대해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매일 같은 책을 읽어 주는 과정 속에서도 아이는 자라고 있었다. 부쩍 커버린 것 같은 아이의 손을 씻겨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아이는 슬슬 감기는 눈에 힘을 주다가 고꾸라지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빨래통 앞에 앉았다. 거품에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세제를 좀 더 부었다. 녹지 않은 입자들이 해초에 붙은 알처럼 올올이 흩어졌다. 살짝 후회가 되었다. 새로운 세제가 만든 커다란 거품들은 햇볕을 반사하며 모조품처럼 선명한 무지개를 머금었다. 공주는 왕자를 죽여야 했을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이웃나라 공주를 물리쳐야 했을까? 아니면 ‘고통을 감내하고 선함을 추구한 보상’으로 공기의 정령, 그러니까 불멸의 영혼을 가진 거품이 되는 것이 맞는 걸까? 

빨래통의 비눗물을 비우고 헹굼을 시작한다. 거품은 거품일 뿐이다. 싸구려 합성 세제가 제 몸을 녹여 때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거품은 제 몸을 완전히 꺼뜨리며 깨끗해진 빨래를 확인시키고 사라질 것이다. 시궁쥐가 들끓는 하수도의 어둠속으로.


인어공주는 투명하고 밝은 눈을 신의 태양을 향해 들어올렸다. 처음으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잠든 딸을 보며 미은은 딸이 원하는 곳, 선택한 걸음을 걸을 수 있길 바랐다. 그곳이 몸을 말릴 따끈한 햇살이 쬐는 해변이든, 더러운 거품이 가득한 하수구 속이든 상관없었다. 빛나는 영혼으로 당당해 질 것. 이 말은 지금의 미은, 자신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널어둔 빨래에 투명하고 빛나는 태양의 입자가 부딪혔다. 가볍고 산뜻하게 수분을 실어가고 있을 하늘 밑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인어공주의 고독한 영혼이 건조한 여름의 대기에 가득 차올랐다. 뜨겁고, 또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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