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Feb 19. 2022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과학철학자들〔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히포크라테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등〕의 전통이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 향후 2   유럽 대륙을 지배한 바람에 인류의 자연과학적 탐구는  길을 돌아왔다. 2  동안에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다.


15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던 16세기에 대항해시대가 열렸고, 이어서 과학혁명의 물결이 유럽을 뒤덮었다. 커피하우스와 살롱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서신을 통한 과학이론 토론이 활발했고, 이는 곧 학술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산을 이어받은 16~17세기의 과학혁명은, 18세기 계몽시대를 견인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여 천구의 중심을 뒤바꿔버린 해를 과학혁명의 시작이라 본다. 과학혁명은 1687년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 〔지금의 관점으로는 고전적인〕물리 법칙을 정립함으로써 종결되었는데,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는 과학혁명 시대의 중간쯤 되는 1608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608년은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된 해였다. 천문학에서 출발한 과학혁명은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대항해시대의 요구로 정확한 경도 계산이 필요했고, 해상시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구 어디서나 관찰 가능한 달표면 지도를 정확히 그려 하늘의 시계로 삼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월면도 경쟁으로 망원경 기술이 계속 발전했고, 1610년부터 관찰하기 시작한 토성의 고리에 대한 해석으로 천체의 운동에 관한 이론이 발전했다.


한편 16~17세기 유럽 대륙은 80년 전쟁〔구교의 제국 스페인 지배에 맞선 신교 네덜란드의 독립전쟁, 1566~1648〕, 30년 전쟁〔1618~1648〕 등으로 구교와 신교의 종교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세계관은 〔학문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종교적으로 이단이었다. 종교인들이 과학 이론을 책으로 펴냈고, 많은 과학자들이 종교의 영향 아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정치적인 권력의 토대가 되었던 과학혁명 시기의 과학자들은 과학적인 논쟁과 더불어 정치종교적으로도 처세를 해야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래도..” 혼자 중얼거려야 했고, 그보다 앞서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며 지동설을 입에 올린 브루노는 교황청의 판결에 따라 화형에 처해졌다.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는 과학만화가 김명호 작가님이 쓰고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반은 만화이지만 반은 줄글이어서, 만화보다는 줄글이 편한 나로서는 구성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레퍼런스를 중시하는 과학책 답게 과학혁명 당시에 출판된 〔생각보다 많은〕책들의 달표면과 토성의 고리 삽화들을 직접 가져와 당시의 세계관 논쟁과 관측 경쟁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엮었는데, 과학철학적인 질문거리도 던져주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서양미술사를 쓴 곰브리치가 얘기한 '관람자의 몫'은 과학 삽화에도 적용되는데, 망원경을 통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믿는 대로 보이는 것인데, 그들은 보이는 대로 그렸다고 믿었다(주장했다). 객관적인 감각은 허상이다.


달의 본질에 대해 모르던 시절에는 각자 믿는 대로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행성의 운동에 관한 다수의 이론이 경합하던 시절에 망원경을 통해 보았던 토성의 고리는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하지만 믿는 대로 그릴수 밖에 없었던 시대에 달표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천문학자가 함께 밤을 지새워야 했다는데, 데생보다는 카메라에 의존하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관찰과표현의과학사 #김명호 #이데아


2022.2.18. MF7

매거진의 이전글 『쇼코의 미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