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기간을 통해 나를 찾다
나는 못 생겼다. 키도 작고, 다정한 성격도 아니다. 오타쿠이기에 취향도 별나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항상 가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연애가 끊이지 않았다. 20살에 첫 연애를 시작한 이후 많은 경험을 했다. 20대의 연애는 짧았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기간도 길어져 갔다. 십 수명의 연인을 만났고 이별했다. 가장 짧은 기간은 3개월이었다. 이별의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5년 반의 긴 시간을 함께한 연인과 헤어진 시점에서 나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워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형사 재판의 판결을 앞두고 있던 것이다. (바퀴벌레 재판) 미리 헤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타의에 의해 억지로 찢어질 필요는 없을 테니까.
이별 후, 항상 그래온 것처럼 마음을 고백하는 분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잘 거절하지 않는 편이다. 외모나 조건 및 기타 여러 부분이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은 일반적인 연애 감정보다 훨씬 큰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먼저 표현해 준다면 더더욱. 그러니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거절해야 했다. 나는 형사 재판의 피의자다. 최악의 경우,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를 아프게 만들 우려가 있다면 거절해야 마땅하다. 그동안 받은 고백 중 몇 안 되는 거절의 순간이었다. (다른 거절은 동종 업계인의 고백이다. 이는 무조건 거절한다. 이유는 다들 예상하실 것 같다.)
그 이후 이상한 짓을 했다. 블로그와 SNS, 그 외에 자주 나가는 모임 등에서 한동안 솔로 생활을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다닌 것이다. 이불 킥 할만한 행동이 아니냐 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연애가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분들이 계실 텐데, 다른 놀라운 부분이 있다. 이별과 다음 연애 사이의 텀이 3개월을 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내가 먼저 고백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에 혹시 누군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면 사이가 애매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이나 조직이라면 더욱 곤란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선언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편한 상황을 만들게 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조금 민망한 편이 낫다. 난 언제 사라지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솔로 생활을 시작했다. 첫 연애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 곁에서 연인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다. 외롭거나 힘들었을까? 전혀. 오히려 좋았다. 이제야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관은 도키메키 메모리얼에서 시작되었다. (연애의 바이블) 여성의 취향은 정해진 데이터와 수치로 고정되어 있으므로 나를 바꿔서 상대에게 맞춰가는 방식이었다. 게임 캐릭터를 공략하듯이 말이다. 물론 상대가 먼저 다가와야 시작했지만, 이는 현재 내 수치에 이벤트 트리거가 걸려있는 것으로 인지했다. 이벤트의 시작일 뿐, 그 이후는 어차피 상대방에게 철저히 맞춰야 한다. 안 그러면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니까. 그러다 보니 연인이 달라지면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지고 영화 취향이나 취미도 달라졌다. 때로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고 독서에 푹 빠지게 되기도 했다. (물론 그 와중에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고정이었다. 이 두 가지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절대 사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로 상태로 지내다 보니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스스로의 취향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도 좋아하는 것, 그리고 좋아해야 했던 것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시간 관리도 달라졌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장점은 인간관계였다. 연인이 있는 동안은 아무래도 여성 분들 과의 관계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얼마나 멋진 여성 전문가들이 많은가? 대표님들이나 작가님들, 예술가들, 같은 업계의 능력자 분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변하게 된 것? 지난 십여 년간 남자들 사이에서만 바라본 것들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훨씬 더 확장된 시야를 갖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여성 분들과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를 나눈 일이 있었다. 나의 과거 연인은 스스로를 페미니즘 전사라고 칭할 정도로 극렬한 레디컬 페미니스트였기에 조금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다시 말하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연애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분들마다 페미니즘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했고, 그 안에 공통되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했다. 이후 벨 훅스를 비롯한 여러 책을 추천받아 읽으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나는 내 기준에서는 페미니스트다.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지만 뭐 각자의 기준은 다를 수 있으니까. 이처럼 인간관계에 여성 분들이 더해진 덕분에 확장된 시야와 다양성을 접했고, 어딘지 성장하는 느낌을 받으며 한동안 솔로 예찬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느 제주 소년의 일생) 장례식에는 친지들이 모두 모였고 동생도 일본에서 날아왔다. 며칠간 한 장소에 머무르다 보니 별별 화제가 입에 오르내렸고 결국 나의 연애 문제가 거론되었다. 당연히 현재는 솔로라고 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연애를 공유하지 않다 보니 모태 솔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거 오타쿠에 대한 편견 아닙니까? 아니면 게이머에 대한 편견인가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동생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너네 형에게 일본 여성 분 좀 소개해줘. 아내 친구들 괜찮은 사람 없어? 그러자 동생이 한 마디 했다. 형은 항상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금방 다시 생길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 동생에게 말하거나 소개한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그냥 나를 감싸주려고 한 건가? 아니면 진짜 알고 있는 건가? 소개해주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동생에게 진의를 물어볼 만한 용기는 없었다.
문제는 어머니였다. 내가 현재 솔로라는 것을 알자마자 적극적으로 움직이셨다. 엄마 친구 딸인데, 미국에서 음악 공부하고 왔다는데 만나 볼래? 엄마 친구가 주변에 괜찮은 애가 있다고 중매 서고 싶다는데, 한번 만나 볼래? 연예인은 어때? 이혼하긴 했는데 오래전이고 만나보니 애가 괜찮더라. 너만 괜찮으면... 계속 거부하자 어머니는 꾀를 내셨다. 감기약과 파스, 쌍화탕, 청심환 등을 사다 달라며 약국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는데 알고 보니 약사 분을 소개해 주려는 작전이셨다. 심장 발작이 와서 무조건 가까운 약국으로 들어갔는데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것 같다. 생명의 은인이라고까지 표현하셨으니까. 어머니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 어머니, 여자 입장에서 저는 좋은 상대가 아니에요. 키도 작고 못 생겼고 돈도 없잖아요.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아낀다 던가. 그 말은 어머니가 받아들이시지 않았다. 니가 어디가 어때서!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날렸다. 저 개인 회생 들어가잖아요. 모아둔 돈도 없고 빚만 있어요! 재판 결과에 따라 전과자가 되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 인생까지 망칠 수는 없잖아요?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시전 하셨다. 다행히 그날 이후, 누군가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버킷 리스트를 점검하던 중 연인이 없는 지금만 도전할 수 있는 항목이 있음을 발견했다. “소개팅해보기”였다. 연애는 끊임없이 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소개팅을 시켜주지 않았다. 첫 회사에서 이와 엮인 일도 있었기에 이는 나의 숙원이 되어 있었다. 좋아! 소개팅에 도전해 보자! 만약 잘 되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자. 연애 생각이 없는데 소개팅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소개팅을 부탁한 50명 모두에게 거절당했다.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소개팅이냐. 날 소개해주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무엇보다 누군가의 소개는 외모와 조건이 기본은 돼야 하니까.
솔로 생활은 1년으로 마무리했다. 재판도 종료되었고 나는 사회에 남았으니까. 덧붙여 말하자면 소개팅 버킷 리스트도 달성했다. (블라인드 버킷 러브) 그 결과 연애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달라졌다. ‘20살 이후로 연애를 3개월 이상 쉰 적이 없었다.’에서 ‘20살 이후로 연애를 딱 1년 쉬었다.’로. 부정 표현에서 긍정 표현으로 바뀐 것처럼 나에게는 특별한 변화를 준 1년이었던 것 같다. 연애관도 달라졌다. 무조건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형태로. 그런 사람이 만약 없다면? 그럼 솔로 생활을 즐기면 되는 거지. 장점도 많더라고!
40대가 되면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연애 중이다. 1년간의 솔로 생활이 나에게 남긴 것은 공허함이 아니라 단단한 중심이었다.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연인이 나를 돌아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수동적인 연애만 했으니까. 이제는 누군가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나를 잃어버리는 연애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함께 걷는 연애를 하고 있다. 솔로 생활을 경험하기 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역시 가끔은 쉬어 가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