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엔딩 이후의 스테이지

나는 노마드가 아니다

by 마이즈

“게임을 개발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 인가요?”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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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모르는 사람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게임의 제목을 언급하면서 덕분에 자신이 힘든 상황을 극복했다며 감사를 꼭 전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개발에 참여한 게임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를 종종 받는다. 때로는 댓글로, 때로는 쪽지로. 혹은 DM으로 오기도 한다. 과거의 노력들이 예기치 않은 결실로 나에게 돌아온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 덕분이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나는 이 들을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게임 개발자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 제작자들, 나아가 창작자들은 같은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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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게임 개발 세미나에서 마주친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볼 때, 덕분에 게임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며 감사한다는 말을 하신 분이 계셨다. 세미나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그렇고 전시회나 게임 숍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버스나 전철 안에서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이렇게 기술하면 자주 있는 일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실은 평생 했던 경험을 다 합쳐도 십 수회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게임을 또 만들어 주세요.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저희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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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되고 회사를 나오게 될 때, 문득 그들을 떠올렸다. 나의 영향으로 게임 개발의 길에 들어선 분들. 그들은 후회하지 않을까? 여전히 감사할까? 어쩌면 내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부정적일 수도 있는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던 것. 게임 개발자의 수명이 얼마나 짧은 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배드 엔딩인 셈이다. 40대가 된 시점에서 이미 과거 인맥의 90%는 업계를 떠났다. 요식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카페나 편의점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업계의 어두운 전설인 치킨집은 그나마 적었다. 하지만 그렇게 새 출발 한 분들 중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평생 게임만 만들던 사람들이 다른 업종의 프로들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나마 업계에 남은 사람들도 수명이 간당 간당했고 대부분 불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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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는 아직 한참 돈을 벌어야 할 시기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존을 위한 선택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사내 정치에 전념해서 임원이 되거나 버티는 길. 언뜻 보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이 루트로 가는 지인들은 계속 정신과를 다녀야만 했다. 그 자리에 서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으니까. 그 끝에 스스로 내려놓는 분들도 있었다. 다른 루트는 창업이었다. 앞서 말한 다른 업종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게임 개발사였다. 그리고 당연한 듯 대부분 실패했다. 게임을 개발하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나 역시 같았다. 함부로 도전했다가 큰 타격을 받았지. 대한민국은 실패한 사업가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렇게 무너진 분들이 많았다. 마지막 루트는 교수로 가는 길이었다. 과거와 달리 학생들이 똑똑해졌다. 따라서 게임 학과 교수의 실무 경력을 체크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게임 학과에는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가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다. 이런 상황이기에 게임을 만들던 사람들이 학위를 따서 교수가 되는 길은 어찌 보면 가장 안정적인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 루트는 시간과 비용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 과정을 버티는 사람이 적었고, 무엇보다 업계 특성상 학사 학위를 갖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애초에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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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길 이외에 다른 방향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후배들을 위한 책임이라는 생각이었다. 한때 이름을 날린 선배님들은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신 지 찾아보았지만, 새로운 루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게임 개발자의 미래가 너무 뻔하다면 누가 이 길을 걷겠는가? 과거의 선배들이 제시하지 못했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해야만 했다. 아무도 못한다면 내가 해야 한다. 나의 영향으로, 혹은 내 탓으로, 게임 개발자가 된 분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이기를 포기했다. 직업인으로 길을 개척하자. 나의 등을 보고 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모두가 배드 엔딩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구조라면, 다음 스테이지를 만들자. 엔딩에 머무르지 않도록. 이 또한 게임 개발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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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게이미피케이션 키워드를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했다. 때로는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자문과 컨설팅, 멘토링도 진행했다. 칼럼을 쓰기도 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보드 게임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직업으로 분류하면 벌써 수십 개가 된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직장에서 나와야 하는 시기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미래는 아닌 것 같았다. 나이가 든 탓일까? 종종 존경한다는 간지러운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아직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직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끌어들인 후배들에게 미래를 제시할 수 없으니까. 그것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을 끊임없이 도전적으로 해아만 한다. 한 우물을 깊게 판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얕고 넓게 다양한 일을 해온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절하게 바둥거릴 뿐인데, 어째서인지 다들 이런 모습을 부러워한다. 회사를 고정적으로 다니지 않아서?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것처럼 보여서? 직장인 보다 벌이가 좋아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노마드의 한 형태로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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