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에서 제로로

하지만 경험만큼은 플러스

by 마이즈

1990년대의 어느 새벽. 한강 다리에서 서 있는 중학생이 있었다. 불법 애니메이션 클럽에서 일을 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오타쿠는 불법입니까?) 오락실에 잠깐 들른 것이 화근이었다. 세계 대회에 출전한 유명한 게이머를 만나며 차비까지 다 털린 것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그와 대전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동전까지 모두 사용했다. (하이스코어 보이) 일터는 종로였고 집은 안양이었다. 걸어서 다리를 건널 때는 이미 어두운 새벽 시간이었다. 터덜 터덜 걷다가 멈춰 서서 한강을 바라봤다. 양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돈에 원한이 있는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이곳에서 했던 힘든 선택들을 나에게 고하라! 그대들의 힘을 빌려다오! 나와 함께 돈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복수하자! 하지만 원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초능력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2병이 가득한 오타쿠는 내 안에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고 믿고 싶었다.

돈이라는 개체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상황이 나빠진 이후였다. 부유하던 어린 시절에는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경험 탓에 평생 부유하게 산 사람들의 금전 감각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 돈 때문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마왕은 어머니의 목숨마저 돈을 위한 쇼라고 표현했다. (마왕과 어머니) 아버지는 돈을 못 벌게 되자 무능력자로 몰려 쫓겨나게 되었다.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어머니는 종교에 빠졌다. 삼촌들의 관계도 할아버지의 재산을 중심으로 파탄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 돈에 집착했다. (어머니라는 업) 이런 어린 시절을 겪게 되면 어쩌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돈이 지긋지긋했다. 동생과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지만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돈은 딱 쓸 만큼만 있으면 된다. 더 많으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다.

집행 유예 종료 일은 조용했다. 법원이나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나중에 사건 조회를 해보니 끝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였지? 아, 납치와 협박을 했다 던가? 고작 돈 때문에? (바퀴벌레 재판)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났다.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혼자 독차지하려고 자신들을 속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부자가 되었다는 등 헛소문이 돌았다. 그럴 리가. 모든 재산을 압류당했다. 집도 잃었고 통장을 만들 수도 없는 몸이다. (버티기)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의 괴 문서였다. 그 문서에서는 내가 돈에 미쳐서 동료들을 괴롭히고 이용하는 사람으로 나와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믿고 마녀사냥을 했다. (아홉 번의 실수) 다들 돈에 민감하다. 그러니 헛소문에도 쉽게 휘말리겠지. 집행 유예가 끝난다고 해도 빨간 줄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나는 전과자가 되었다. 이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회생 기간 중에 한 번씩 빚을 갚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회생에 들어가면 그중 일정 비율만 받게 된다. 피해를 보는 셈이다. 물론, 이자 만으로 원금보다는 더 많이 가져갔으니 완전히 손해는 아닐 것이다. 채권은 여러 번 옮겨 다녔고 점점 더 험한 곳으로 내려갔다. 사채 단계를 넘어간 이후부터 협박 성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회생 중에는 추심을 못하게 되어 있지만 아마 상태 확인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거래한 것 같다. 그들끼리 불량 채권을 가지고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일까? 회생 중 임을 알리고 사건 번호를 전달하면 그제야 연락이 오지 않았다. 추심을 받았다고 신고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도 피해자일 수 있으니 그렇게 까지 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국가를 통해 빚을 탕감받은 입장이기에 항상 부채감이 있었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연락이 올 때마다 철렁했다. 힘든 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며 점점 무덤덤해졌다.

돈이라는 것이 그렇다. 꽤 많이 모였다 싶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큰 금액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 때는 동생의 유학을 지원하면서 어머니에게 중형차를 사드렸고 경기도에 아파트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억 원의 빚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에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무 적을 때는 불편하겠지. 하지만 많다고 해서 딱히 좋은 점도 없다. 오히려 문제의 소지만 생긴다.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빼앗길 수도 있다. 이런 경험 끝에 죽음으로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돈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했다. 세상을 조금 더 살아온 지금은 더 그렇다.

수원 지방 법원. 이곳을 다니며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안으로 들어가서 준비해 간 서류를 제출했다. 등기로 보내도 된다고 했지만 직접 가고 싶었다. 5년간의 납입 종료가 되는 시점이었다. 법원을 향해 가는 동안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반성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고, 잊고 흘려보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지난 7년간, 나는 힘들었던 걸까? 아마 마음이 무거웠을 게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언젠가부터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큰 일을 당하고 나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닫아버리는 것이다. 안내를 받아 면책 신청서를 썼다. 이제 최종 판결만 나오면 끝날 거라며 3개월쯤 걸린다고 한다. 오늘 바로 끝을 내고 새 출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담고 있어야 하는구나. 여전히 무겁게 느껴졌다.

회생 종료까지 6개월이 남은 시점. 나의 사건을 진행한 법무 법인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따로 얻은 수입은 없으시죠? 가족 통장으로 돌려받은 것도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회생 기간에 다른 일을 하고, 이를 신고하지 않아 적발된 사례가 생겼어요. 하필이면 선생님 사건을 관할하는 법원 에서요. 체크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지난 7년 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요. 혹시 있다면 지금이라도 알려 주세요. 자진 신고 하면 돈은 더 내야 하지만 회생이 취소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다행히 신고하지 않은 수입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 들어오는 애드 포스트 수입 등 자잘한 수입이 있었다. 생활비가 부족할 때 지금은 헤어진 옛 연인이나 친구 토이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었다. 계좌로 들어온 내역은 가급적이면 모두 증빙해야 한단다. 하지만 이별한 연인에게 연락할 수는 없지 않나? 혹시 문제가 되면 그때 처리해도 될까요? 결국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몇 주가 지나고 최종 판결이 나왔다. 종국. 5년 간의 개인 회생을 포함해서 7년 간의 신용불량자 생활이 마감되었다. 이제 은행 계좌도 만들 수 있고 신용 카드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벅찬 마음이었지만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나를 한심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친구와 친한 지인 분들에게는 그동안 끼친 걱정 때문에 연락하기가 송구했다. 꾹꾹 누르고 있다가 그날 저녁 독서 모임에서 결국 터져 나왔다. 근황 이야기를 하던 중에 축하받을 일이 있다는 말을 꺼내버린 것이다. 만난 지 두 달 밖에 안된 분들이었지만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며칠 뒤, 계좌로 150만 원이 들어왔다. 추가 납입 금에 대한 환급이었다. 그것이 나의 전 재산이었다. 최저 생계비 이외에는 전부 납입해야만 했으니까. 돈을 모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150만이라는 숫자가 찍혀있는 이 통장은 어제까지 숫자 0이 찍혀있었다. 큰 금액은 아니라도 특별했다. 7년 만에 처음으로 갖게 된 '빠져나가지 않을' 돈이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계좌의 숫자도 의미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한번 마이너스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제로로 돌아온 것이 더욱 의미 있었다. 찍혀 있는 숫자가 15만이든, 150 만이든, 150 억이든 상관없다. 금액보다 가치 있는 것은 경험이라고 믿으니까. 큰 빚을 지고 결국 제로로 돌아오는 7년간의 바둥거림. 이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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