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거절의 이유

돈 보다 중요한 것들

by 마이즈

항상 나를 무능하다고 하는 어머니. (어머니라는 업) 그리고 이별하면서 ‘노력해도 어차피 안될 것’이라고 말했던 연인.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 그들에 대한 반발심이었을까? 얼마까지 벌 수 있을지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당시 월 소득 최고 기록은 700만 원 정도였다. 사업이 망하고 사채를 쓰던 시기, 한 달에 이자만 600만 원 이상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적절한 방법을 쓰기도 했고 웃음을 팔기도 했다. (내려가는 삶의 경사면) 그때부터 벌써 5년이나 지났다. 얼마를 벌 수 있을까? 일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받았다. 물론 불법적인 일이나 나를 타락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조금씩 오르던 월 소득은 어느새 2,000만 원을 넘겼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 어느 날 녹초가 된 몸을 뉘이는 순간 현타가 왔다. 고작 돈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 반발심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가 즐거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돈의 가치는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일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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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게임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이 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러자 금액을 높여서 다시 제안해 주셨다. 적어도 나에게는 역효과였다.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중 다른 이야기를 하는 곳이 있었다. 의외로 큰 회사였다. 당연히 거절했는데, 단순히 금액을 높여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인맥이 생기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나중에 다른 형태로 연결될 수도 있으니까. 회사에서 바라는 것은 신규 팀을 하나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역할은 디렉터였다. 조건에 대해서 묻길래 돈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냥 다른 디렉터 받는 만큼만 주시면 됩니다. 그 대신 한 가지만 꼭 약속해 주세요. 제가 담당하는 프로젝트는 드롭되지 않는 것으로. 반드시 출시하는 것으로 약속해 주세요. 개발 비를 오버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일정도 반드시 지킬 수 있습니다. 개발 완료 후 회사에서 판단해 보시고 별로라면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당연히 될 리가 없었다.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큰 회사였고 각 개발실의 형평성은 지켜야 할 테니까. 그때부터 디렉터 제안이 들어오면 무조건 이 조건부터 말했다. 드롭하지 않는 것. 대부분 곤란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대부분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렇지 않은 회사가 있었다는 말이다. 총 세 군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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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이미 한참 개발 중인 게임이었다. 언론에도 알려졌기에 출시는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드롭이 없다는 조건에는 부합했다. 하지만 이미 뛰어난 디렉터가 있었고 수십 명의 팀원이 열심히 개발을 하고 있었기에 왜 이런 제안이 들어오는지 궁금했다. 회사가 아닌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했다. 이유는 사내 정치에 대한 문제였다. 현재 디렉터를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렉터가 공석이 되면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나를 팀장으로 앉혀두고 디렉터를 잘라내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이에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두라고 했다. 디렉터로 올렸을 때 반발이 없도록. 사내 정치에 얽히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조직이라면 언젠가 나 역시 꼬리 자르기를 당하겠지? 목적이 목적인 만큼 제시한 금액은 상당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이보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거절할 수 있었다. 마음고생이든 몸 고생이든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은 하지 말자. 지난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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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제안은 봄 AD가 다니는 회사였다. (마법의 돌고래는 꿈을 꾼다) 이미 기사도 나갔고 홍보도 되어 있으므로 게임은 출시해야 했다. 조건 클리어. 첫 번째 회사와 다른 것은 디렉터 자리가 어떤 일로 인해 공석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서브 컬처와 오타쿠를 잘 이해하고 봄 AD와 합이 잘 맞는 사람. 남은 기간 안에 빠르게 개발을 치고 나갈 수 있는 사람. 이를 위해 야근이나 철야를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 다른 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에도 기꺼이 일할 수 있는 사람. 심지어 여러 번 프로젝트를 완수했던 경험도 갖고 있었다. 봄 AD가 보기에는 내가 최적이라며 적극적으로 회사에 추천해 주었다. 이번만큼은 흔들렸다. 내가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개발 팀에는 새로운 디렉터가 절실했다. 게다가 그 회사에는 제자도 다니고 있었다. 이번에는 수락할 예정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거절당했다. 우리 예상으로는 개발 경험은 많지만, 마지막 서비스 경험이 오래되었다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 서비스로부터 이미 5년 이상 지났고, 그동안은 신규 개발과 콘솔 게임만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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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제안은 IP 게임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대표님이 갑자기 보자고 하셔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빈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상황을 전달받았다. 이번에도 게임은 꼭 출시되어야 했다. IP 홀더와의 문제도 있었고 투자 문제, 회사 상황도 그러했다. 현재의 콘셉트와 상황을 검토했는데, IP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고개 숙이고 부탁해서라도 꼭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3개월, 6개월짜리 일정을 시작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한 달만 일찍 알았더라도 다른 일을 받지 않았을 터였다. 날짜를 체크해 보니 비어 있는 시간은 주말을 포함해도 한 달에 6일 밖에는 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회사에도 민폐일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라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완곡하게 거절해야만 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연락을 주신 것이다. 그 IP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드물어요. 하지만 마이즈 님은 아주 좋아하시고 게임 개발 경험도 많으시잖아요.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실수였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 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내가 일을 줄인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라면 매일 밤을 새우더라도 행복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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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연락을 드리기 한 시간 전, 문득 생각나서 친구인 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쩌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버럭 하며 혼내기 시작한 것이다. 너 그 프로젝트하면 몸 다 망가져. 만약 다른 지인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하라고 했을 거야. 하지만 넌 안돼. 내가 널 모르냐? 같이 일해봐서 알잖아. 넌 절대 대충 하지 않을 거야. 잠부터 또 줄이겠지? 좋아하는 일이면 더 그래. 그러면서 지금 하는 일에도 지장이 가지 않게 하려고 무리하겠지. 진심으로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그만둬! 전화를 끊고 공원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필이면 다른 직원들과 함께 회의실에 모여서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셨다. 심지어 스피커 폰으로 같이 듣고 계시다고... 미안했다. 말하기 더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했다. 한 달만 더 빨랐어도... 그리고 다음 주, 피로가 쌓여 앓아누웠다. 토이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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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조직에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다. 몇 년이 더 지나버린다면 프리랜서로, 노마드로, 회사를 떠난 삶을 사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울 야근도, 철야도 나에게는 그리운 추억이다. 기꺼이 내 시간을 포기할 만큼 게임 개발은 행복한 일이니까. 물론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기는 하다. 프로젝트가 생기면 또 몇 달간 열심히 가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보드 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대본을 쓰기도 한다. 프로젝트의 자문이나 컨설팅, 멘토링도 진행한다. 영상 촬영이나 자격시험 문제 출제, 심사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아직은 무언가 집중해서 파고들만한 일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미래를 위해 지금은 투자해야 할 때다. 진심보다 현실을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거절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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