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퍼즐 버블

by 마이즈

어린이 집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아이가 돌아봤을 때 엄마가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더라. 추천받아 보게 된 육아 교육 예능에 나온 내용이었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손을 내린다. 내 옆에 다른 엄마들도 같은 모습이다. 모두 같은 예능을 보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이제 다 같이 근처 카페로 이동한다. 엄마들의 삶이란 마치 누가 정해준 것처럼 똑같다. 시골에 살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나오는 이야기도 매번 비슷하다. 공통 관심사가 육아이기 때문인지 그와 관련된 다양한 것들의 추천을 주고받는다. 이 영양제 먹고 우리 아이가 걷기 시작했잖아! 여기 학습지가 유아들도 집중해서 하게 해 주더라! 이거 꼭 해봐! 이거 보여줘! 이걸 시켜봐! 아이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최근에 가본 맛집에 대한 추천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매번 드라마와 예능 이야기로 빠진다. 사람의 숫자만큼 다른 작품을 추천받는다. 그중에 정말 나와 맞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 휴대폰에 담긴 AI가 나의 취향과 상황까지 반영해서 최종 큐레이션을 해줄 것이다.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의 체온과 심박수까지 반영해서 나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까지 계산해서 말이다. 이를 알고 있기에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AI가 조금 더 명확하게 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다른 엄마들도 비슷한 것 같다.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지만, 각자의 취향을 입력시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경험은 AI가 조금 더 나에게 잘 맞는 추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입력일 뿐이다. 아이를 대할 때도 항상 휴대폰을 켜두고 우리의 대화와 행동을 인식하도록 한다. AI는 나이와 감성, 기질에 가장 잘 맞는 케어 방법을 알려 준다. 우리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서는 나의 휴대폰이 우리 아이를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해야만 한다.

한참 대화 중에 카페에서 나왔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와서 머리가 아팠다. 오늘 이야기한 드라마가 몇 개였더라. 내용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잠시 바람을 쐬고 있자니 휴대폰에 알림이 왔다. 자리를 뜨지 마십시오. 조금 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직 하원 시간까지 많이 남아있으며 유용한 정보가 나오는 자리입니다. 나의 상태를 인지한 AI의 메시지였다. 어쩐지 짜증이 나서 휴대폰을 끄고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 내비게이션 AI가 드라이브 코스를 추천해 준다. 스트레스가 감지됩니다. 추천 코스를 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세요. 동시에 감미로운 음악이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충동적으로 내비게이션도 꺼버렸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갑갑하고 짜증이 나는 걸까?

휴대폰 AI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온전히 나 스스로 하는 드라이브. 무슨 용기였는지 처음 가보는 길로 차를 몰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싶었다. 어느새 차는 논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좁아진 길이 무서웠다. 논 길 옆으로 바퀴라도 빠지면 어쩌지? 역시 내비게이션을 볼 걸 그랬나? 불안해하던 중 신기한 건물에 도착했다. 논길 한가운데 있는 이질적인 건물. 이게 뭐지?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비현실적인 모습이 어쩐지 끌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왁자지껄 했다. 서로 웃으며 대화를 하는 분도 있었고 고함을 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이런 장소를 뭐라더라? 어디에선가 봤는데... 기계 앞에 앉아 화면에 열중하는 분들을 보며 오래전에 사라진 오락실이라는 장소임을 어렴풋이 기억해 냈다. 어떤 화면 앞에서는 할머니와 아이가 함께 막대 사탕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기계 앞에는 한 아이가 구경을 하다가 뜬금없이 힘차게 박수를 치기도 했다. 핸들이 달린 의자에 앉아 화면에 집중하는 중년의 남자도 눈에 띄었다.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주머니에서 꺼진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AI가 학습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원 버튼에 손을 올리는 순간, 실내 한편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네모난 발판 위에서 두 명의 여학생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앞으로 다가갔다. 꺼진 휴대폰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기묘한 장소를 돌아보며 화면을 하나하나 구경했다. 나도 뭔가를 해보고 싶다. 저 사람들처럼 살아있는 표정을 짓고 싶다. 하지만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걸까? 기계가 너무 많았서 고민이 됐다. 처음 하는 사람이 할만한 것을 누군가 추천해 주면 좋겠다. 그렇게 둘러보던 중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도와달라는 표시로 손을 내밀었지만, 무시당했다. 민망한 마음에 몸을 돌렸다. 그래. 매번 추천하는 것만 해왔는데, 이번만큼은 직접 골라보자. 어차피 다 모르는 것이니 실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둘러보던 중, 귀여운 공룡이 하늘을 향해 색색이 방울을 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퍼즐 버블? 거품 퍼즐이라는 뜻인가? 제목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이 모든 행동을 스스로 선택해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졌다. 막대 사탕을 움직이니 방울을 쏘는 기계가 움직인다. 버튼을 누르면 방울이 발사되는데, 같은 색이 모이면 터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너무 귀엽 잖아? 몇 번 방울을 쏘다 보니 스테이지가 넘어갔다. 내가 해낸 거야? 성취감에 전율이 느껴졌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꽤 잘하는 것 아닐까? 이 게임은 최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 유일하게 거슬리는 한 가지가 있었다. 기계 끝에 달려있는 점선이었다. 이 방향으로 쏘라고 추천하는 걸까? 이 화면 속 공룡들도 나에게 선택지만을 주는 것인가? 이상한 반발심이 생겼다.

며칠 뒤 다시 이 오락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였다. 마음껏 돌아봐. 너에게는 어떤 게임이 재미있어 보이니?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해보고 싶은 것을 골라 보렴. 무엇을 하든 엄마가 곁에서 지켜볼게. 그 누구도, 무엇도 추천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여기저기 달리던 뛰어다니던 아이는 퍼즐 버블 앞에 멈춰 섰다. 엄마랑 보는 눈이 어쩜 이리 똑같니. 나도 이 게임을 골랐었는데. 한번 해 볼래? 기계에 동전을 넣고 아이의 손에 막대 사탕을 쥐어 주었다.


땡그랑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동전을 하나 더 넣었다. 어? 화면이 갈라지며 동시에 게임이 시작된다. 이거. 같이 할 수 있는 거였어?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이 순간은 오롯이 나와 아이 둘만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만졌다. 혹시 켜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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