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스트라이커즈 1945

by 마이즈

요즘 직원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당연히 일은 잘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본인이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부서로 넘기거나 심지어 외주를 쓰자는 말이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하기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비효율적 임에도 직접 한다면, 익숙한 일이 다른 사람보다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아닐까? 성장할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귀찮아하는 신입들이 안타깝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꼰대 소리나 듣게 될 테니까. 그렇게 꾹꾹 눌러온 마음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상부에서 새로운 솔루션을 사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최근에 개발된 기술이기에 경험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솔루션이라니. 엄청난 기회 아닌가? 심지어 복잡하지 않아 며칠만 공부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내가 하겠다고 나섰겠지만, 이번만큼은 팀원들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속 마음은 숨긴 채 이 기술을 익혔을 때의 장점을 말했다. 다 너희를 위한 거야.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경험자를 찾아보겠다는 말뿐이었다. 그 누구도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말이 튀어나갔다. 평생 할 수 있는 것만 할래? 노력 좀 해라! 그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젠장. 뒤에서 또 욕하겠구나.

며칠이 지났다.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팀원들이 회식을 하자고 한다. 먼저 요청을 해오다니 어쩐지 섬뜩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팀원들의 차를 따라 도착한 곳은 논길 한가운데 있는 오락실이었다. 왜 이런 곳에 데려온 것이지? 지난번 솔루션 회의 이후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불편해서요. 기분 전환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모셔왔습니다. 팀장님의 어린 시절에 있던 장소라면서요? 인터넷에서 요즘 화제 더라고요. 팀원들이 내 생각을 해준 걸까? 감동했다. 팀원들과 함께 오락실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별천지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오락실에 가본 적이 없다. 내내 공부만 했기 때문에 이런 곳에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말을 듣곤 했다. 나에게 오락실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장소였다. 하지만 나를 위해 데려와 준 팀원들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지 않나. 열심히 좋아하는 척을 했다. 팀원 하나가 게임기에 동전을 넣는다. 이거 중고 노트북에 있던 건데 오락실 게임이었나 봐요. 스트라이커즈 1945. 비행기를 고르고 게임을 시작한다. 화면 위에서 적군의 비행기가 나와 총알을 쏜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주인공 비행기가 터져 버렸다. 다른 팀원들도 몇 번 도전해 보지만 얼마 못 가서 실패한다. 보기보다 힘드네. 팀장님이 실력 한번 보여주세요. 어릴 때 많이 해보셨죠? 이제 와서 안 해봤다고 말하기는 머쓱한 마음에 기계 앞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조금 전 팀원들이 하는 모습을 봤으니 나는 조금 더 잘할 거야.

잔뜩 긴장한 채 게임을 진행했다. 여기를 지나가면 오른쪽 위에서 적 비행기가 튀어나올 것이다. 팀원들 중 몇 사람이 그 비행기에게 격추당했다. 이 부분을 멋지게 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어?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알면서도 격추당했다. 조급해진다. 나를 위해 이런 곳을 찾아 데려와 주었는데,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오락실이라는 곳에 처음 와본다는 사실을, 게임을 처음 해본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면 또다시 뒷 말의 소재가 되겠지.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손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비행기를 보낸다. 결국 허무하게 격추당했다. 기대감에 차 있던 팀원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팀원 하나가 말을 건넨다. 잘 못하는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요. 하하 그렇지? 내가 참 오랜만에 하니 잘 안되네. 그래도 옛날 생각나고 좋다. 야.

몇 시간 뒤, 직원들을 보내고 다시 오락실로 돌아왔다. 아마 내가 거짓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오락실도 생전 처음 온다는 사실을. 조금 전 함께 몰려 있던 게임기 앞으로 갔다. 동전을 넣었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차근차근 가자. 적은 신경 쓰지 말자. 일단 오래 버티는 것에만 집중해 보자. 죽을 때마다 동전을 계속 넣는다. 게임을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더 나아간다. 피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서 그제야 적을 쏘기 시작한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더해 나간다. 결국 1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 이제 나는 게임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못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 노력의 가치는 충분하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게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락실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팀원들은 나를 위한 행동이 오히려 자존감을 깎아내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하면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연습을 했다는 것도 알리지 않는다. 오락실에 가자는 말 또한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도, 자랑할 필요도 없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어제보다 게임을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퇴근길에 오락실에 들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이제는 2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다. 한번 시작한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다들 왜 모르는 걸까? 반복을 통해 실력을 조금씩 높여가고 결국 극복해 내는 순간, 한 단계 더 성장한다는 것을. 여전히 서툰 조작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나는 이 게임을 완수하게 되겠지. 그다음에는 또 다른 게임을 시작할 것이다. 이 오락실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으니까.


“잘 못하더라도 끝까지 하시네요. 억지로.”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한 마디를 건넨다. 언젠가 들었던 말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온 날 들었던 말이었던가? 그 생각에 빠져 집중력을 잃었다. 나의 비행기가 격추된다. 하… 말 한마디에 집중력을 잃다니. 아직 부족하다. 아무래도 집중력 훈련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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