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하는 아이

서커스 찰리

by 마이즈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누나는 천재다. 평소에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동전을 넣어준다. 공짜를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 그렇게 한 번이라도 게임을 한 사람은 단골이 된다. 이런 식이면 쉽게 부자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누나는 돈을 버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러는 걸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어려서 모르는 걸까? 초등학교에 갈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나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도 오락실 안을 누비고 다니며 다른 사람이 하는 게임을 구경했다. 친구들은 시시하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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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락실에 있는 게임들은 매일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모두 똑같이 시작하지만 누가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 할 때도 처음 할 때와 두 번째 할 때 내용이 달라진다. 어쩔 때는 주인공이 최고의 군인이 되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세계를 구하기는커녕 걷는 것도 비틀비틀 거린다. 때로는 공주를 구출하는 용사가 되기도 하고 공주를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한 사람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유도 다 다르다. 절벽에 떨어져서, 까마귀한테 물려서, 좀비에게 맞아서 팬티 바람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눈덩이를 굴려 나쁜 놈들을 터뜨리는 멋진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 오락실은 수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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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서커스 찰리라는 게임이다. 다른 게임은 동전을 넣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지만 이 게임은 구경하는 사람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도 게임 속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 찰리라는 아이는 대단하다. 사자 등에 타고 불붙은 고리를 뛰어넘는다. 사자는 무섭지 않을까? 불붙은 고리를 지날 때면 열기가 후끈 느껴질 것 같다. 살짝만 닿아도 엄청 뜨거울 텐데. 그다음에는 외줄 타기를 하며 원숭이를 뛰어넘는다. 여기까지 성공하면 다음은 텀블링이고, 그다음은 공 굴리기다. 찰리는 진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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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넣은 할아버지는 찰리가 된다. 성공하는 찰리가 되기도 하고 실패하는 찰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런 건 싫다. 찰리가 아닌 내가 직접 공연하고 싶다. 하지만 진짜 내가 사자를 탈 수 있을까? 불이 붙은 고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집에서 몰래 해본 적이 있다. 훌라후프를 던져서 통과해보기도 하고 줄을 걸어놓고 그 위에 올라서 보기도 했다. 당연히 높이 걸진 않았다. 나는 찰리처럼 용감하지 않으니까. 모두 실패했지만, 유일하게 공 타기는 할 만했다. 물론 찰리처럼 거대한 공을 굴리지는 않았다. 구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냥 학교에 있는 배구공 위에 올라섰다. 균형을 잡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굴리는 것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직접 따라 해보니 찰리가 얼마나 대단한 아이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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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구경하는 사람이 어떻게 게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냐고? 사실 이것도 찰리의 배려 덕분이다. 찰리는 용감할 뿐 아니라 착하기까지 하다. 하나의 묘기가 끝나면 찰리는 단상에 올라가서 화면을 향해 인사한다. 그러면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린다. 바로 이 순간이다! 열심히 박수를 치면 나도 게임 속의 박수치는 사람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딱 한번 찰리가 윙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찰리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서커스 찰리를 하면 따라가서 구경한다. 그리고 묘기가 끝날 때마다 힘차게 박수를 친다. 오늘도 나는 너를 응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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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랑


비어있는 게임기 앞에 서 있으면 누나는 100원짜리 동전을 기계 위에 올려 둔다. 똑똑한 누나인데, 내 마음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찰리가 되고 싶지 않다. 박수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누나가 간절히 원한다면 찰리가 되어줄 수도 있다. 용감하고 멋지고 재미있고 친절하고 착한 찰리. 만약 누나가 동전을 넣어준다면 나도 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한 번은 해줄 수 있는데, 나도 찰리가 될 수 있는데, 되고 싶지는 않지만 되어 볼 수는 있을 텐데. 누나는 동전을 넣어주지 않는다. 어떤 손님들에게는 동전을 넣어 주던데, 나한테는 왜 그러는 걸까? 누나는 매번 동전을 게임기 위에 올려둘 뿐이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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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이 오락실이었기에 오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누나가 동전을 놓 이후로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생겨났다. 몇 번은 동전을 직접 넣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두근거렸다. 동전을 넣는 순간 내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찰리와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찰리를 만나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매일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던 내가 게임을 시작하면 할아버지들이 구경하러 모여드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나 때문에 찰리가 박수를 받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찰리도 내가 자신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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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도 괜찮아.”


불편한 마음을 눈치챈 걸까? 누나가 다가와서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100원짜리 하나를 기계 위에 올려두었다. 아…! 그런 건가? 게임을 시키고 싶으면 동전을 넣었겠지. 그저 올려 두기만 한 것은 다른 의미인 것이다. 역시 누나는 천재다. 나는 언젠가 찰리가 될 수 있을까? 아하지만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 찰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찰리를 응원하는 자리에 있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내가 어려서 모르는 거겠지? 초등학교에 갈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나도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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