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의 소녀

팩맨

by 마이즈

논길 한가운데 있는 외딴 건물. 한 남자가 들어선다. 어린 소녀가 그의 손을 잡고 있다. 소녀는 남자가 누구인지, 자신을 왜 여기로 데려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왔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눈앞에 닥친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뿐이다. 건물 안에는 기묘한 기계들이 빛을 내고 있다. 기계마다 빨간색 막대 사탕이 달려있다. 남자가 손을 놓자 소녀는 건물 안을 둘러본다. 다양한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남자는 입구에 선 채로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구경하던 소녀의 눈에 띈 것은 복잡한 미로였다. 유령이 돌아다니는 미로. 소녀의 시선이 미로를 따라 움직인다.

땡그랑


“한번 해보렴.”


남자의 설명을 들으며 소녀가 게임을 시작한다. 팩맨. 미로를 돌아다니며 유령을 피한다. 그러면서 미로 안에 있는 하얀 점들을 모두 먹으면 된다. 열심히 해보지만 어렵다. 화면에 Game Over라는 메시지가 뜬다. 남자는 동전을 소녀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동전을 다시 돌려준다. 남자가 말한다.


“갖고 싶은 거니?”

소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있는 기계들은 그냥 줄 수는 없어.”

소녀는 여전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남자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저 게임은 너의 것이 될 거야.”


소녀가 다시 화면을 바라본다. 노란색의 팩맨이 유령을 피하며 미로 속 하얀 점들을 먹고 있다. 어쩐지 알 것 같다. 유령은 피해야 하는 것. 하얀 점은 없애야 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돌아다니는 미로는 어쩌면..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알게 될 테니까.”


소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남자는 움직인다. 동전 교환소라고 쓰여진 구석에 있는 작은 방. 남자는 소녀가 스스로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 방 안에는 침구와 책상, 그리고 작은 창문이 있다. 그 너머로 기계가 가득한 실내가 보인다. 창문 아래로는 두 개의 통이 있다.


“저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돈을 가져오면 동전으로 바꿔 주렴. 세상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돼. 천 원을 가져오면 백 원 동전 열개로. 만원을 가져오면 백 원 동전 백개로.”


남자가 창문 아래 통을 가리킨다. 왼쪽 통은 비어 있지만 오른쪽 통에는 동전이 가득하다. 돈은 왼쪽 통에 넣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의 이어지는 말에 소녀가 고개를 든다.

“만약 돈이 아닌 것을 가져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 여기는 동전을 바꾸는 곳인데, 돈이 아닌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까? 동전을 바꾸려면 지폐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직 어린 자신도 아는 내용이다. 그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인다.


“그 마음의 크기를 네가 가늠해서 바꿔 주렴. 하지만 제한은 필요하니까.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마음일 때를 10개로 정하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며칠간, 소녀는 충실히 일했다. 동전 보관소 안에 머무르며 창문 너머로 건네는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했다. 어느 날은 지폐 대신 빈 병을 내미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소녀는 100원을 건넸다. 어느 날은 벚꽃 잎 하나를 가져온 아이가 있었다. 소녀는 300원을 건넸다. 어느 날은 비싸 보이는 조각 상을 내미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소녀는 받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하얀 점을 먹는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팩맨 게임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질 무렵 다시 남자가 돌아왔다.

“팩맨은 열심히 지켜봤니? 저 안에 큰 점이 있어. 저건 뭘까?”

큰 점을 먹으면 유령을 이길 수 있어요.

“이제 너에게 큰 점을 줄 거야.”

남자는 소녀의 손에 100원짜리 동전을 쥐어 준다.

“하루에 100원만.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주는 거야.”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요? 그게 누군데요?

“사람을 잘 관찰해 보렴. 그럼 알게 될 거야. “

물어보면 안돼요?

“말은 관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단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며칠간, 소녀는 하루에 한 사람에게 100원을 건넸다. 어떤 이는 주머니에 넣은 채 나가 버리기도 했고, 어떤 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돈을 거부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아이는 100원을 넣어 주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했다. 이 아이의 하얀 점은 사라진 걸까?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조금씩 이해가 되는 듯했다. 소녀는 100원짜리 동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큰 점이 필요한 사람.”

소녀는 사람을 바라본다. 시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장 필요한 순간에 단 한 판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동전을 건네준다. 유령이 가까이에 있는 순간이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유령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면 의미 없는 큰 점이 될 수도 있다. 소녀는 오늘도 오락실의 문을 닫고 팩맨의 화면을 바라본다. 미로에 가득 찬 하얀 점이 이곳에 들르는 손님들의 마음들처럼 느껴졌다.

이전 09화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