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찰리
방학이면 구미에 있는 외가 집에 놀러 갔다. 외 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우리를 언제나 반겨 주셨다. 두 분을 만나는 일은 좋았지만, 시골이면서 공장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놀만한 것들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구미에 내려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재믹스였다. 할아버지는 기꺼이 안방 TV를 내어 주셨고 덕분에 동생과 나는 게임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가져간 팩 중에 서커스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노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는데, 서커스는 가장 보여드리고 싶은 게임이었다. 무서운 사자 등에 타고 불타는 링을 뛰어넘거나 외줄을 타며 원숭이를 피하며 뿌듯해했다.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인데, 내가 얼마나 용감한지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우리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새 졸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시무룩해졌다. 화면 속의 피에로가 나와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묘기를 부린다면 할아버지는 절대 잠들지 않을 텐데.
그날부터 동생과 둘 만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우리에게는 사자도 없고 불타는 링도 없다. 외줄 타기도 불가능하고 달려드는 원숭이도 없다. 그렇다고 말을 탈 수도, 공중 그네를 탈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3 스테이지의 공 굴리기 뿐이었다. 동생과 함께 농구공, 배구공 위에 올라서기를 연습했다. 공장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운동 겸 사용하는 공을 몰래 사용했다. 수없이 넘어지다 보니 어찌어찌 공 위에 서는 것까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공을 굴리며 움직여야 하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공과 공 사이를 점프해서 넘어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 집에서 게임만 하던 아이들이 공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좋았나 보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위한 배구공을 사 들고 오셨으니까.
그 이후에도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공 굴리기는 평생 보여드리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먼저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리 알렸다면 평생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될 뻔했다. 우리가 몰래 연습하고 있던 것은 당연히 모르셨겠지? 그나저나 서커스 게임 속에 나오는 아이는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길래 저리도 쉽게 공을 굴리는 걸까?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역시 쉽게 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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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5까지
서커스 찰리. 1984. 코나미
재믹스 판은 그냥 ‘서커스’라는 제목으로 나왔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원제는 서커스 찰리였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찰리였지요. 아케이드 판에 있는 트램펄린 스테이지가 삭제되면서 가정용은 총 5가지 종목만을 즐길 수 있지요.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1 스테이지인 사자 타고 화염 링을 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3 스테이지인 공 굴리기를 가장 좋아했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의 추억 속에 남은 게임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