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인형
게임을 할 때면 대부분 동생이 함께 있었다. 가끔은 어른들이 지켜보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처럼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처음 재믹스를 시작할 때에도 아버지와 함께 있었으니까.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하고 싶은 게임이 생겼다. 양배추 인형이라는 게임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인형을 만드는 화면이 나온다. 머리 중에 하나를 고르고 의상 중에 하나를 고르는 단순한 2단계 조합이었지만,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플레이한다는 개념은 당시로서 획기적이었다. 그중 어린 나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조합이 있었다. 우연한 발견이었다. 처음에는 인형 만들기가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맞춰놓고 게임을 했다. 그러던 중 어떤 특정 조합의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 두근거림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동생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부끄러웠던 걸까? 그래서 누군가와 양배추 인형 게임을 할 때면 일부러 맘에 들지 않는 조합을 했다. 그래야 떨지 않고 게임을 잘할 수 있었으니까. 난도가 어려운 작품이었기에 수많은 양배추 인형을 죽게 만들었다. 그 경험을 하면서 혼자만의 사명감에 불탔다. 양배추 인형이 죽지 않도록 잘하게 돼야겠어! 열심히 연습해야지! 그리고 혼자 게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 인형과 오래오래 같이 놀 거야!
문득 떠올려보면, 이것이 첫사랑이었나 싶기도 하다. 인간이 아닌 게임 속 캐릭터 조합에 두근거리다니. 어쩌면 이때부터 오타쿠가 될 자질을 갖고 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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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5까지
양배추 인형. 1984. 코나미.
코나미의 아케이드 게임에 당시 유행하던 양배추 인형의 캐릭터 IP를 붙여서 만들어진 게임. 최초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게임으로 머리, 몸통, 이름까지 수정이 가능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진행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네요. 여러모로 혁신적인 게임이었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