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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처음으로 사업에 도전하다.

by 마이즈 Dec 28. 2024

20대 초반, 용산 게임 총판의 직원으로 일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게임 관련 소식을 누구보다도 빨리 듣게 된다는 점. 게임 잡지 기자들도 우리 매장에서 기사 거리를 얻어가고는 했다. 두 번째는 각종 게임 관련 하드웨어 들을 저렴하고 빠르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를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없을지 고민했다. 갑자기 왜 사업이냐고? 당시 주변 친구들과 후배들은 게임을 불법 복사 판매함으로써 학생 치고는 큰돈을 만지고 있었고, 나를 끊임없이 유혹했다. 총판에서 일한다는 점은 그들에게도 군침 넘어가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복사를 하려면 원본이 필요한데, 총판 직원이라면 얼마든지 빌려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불법은 싫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게임의 산업과 문화를 망치는 길임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매장의 직원이었기에 직접 복사 칩을 달거나 게임기를 불법 개조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불편한 마음 탓에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 시도했던 일은 게임방 관련이었다. PC방이나 플스방을 새로 창업하는 분들에게 의뢰를 받아 저렴하게 하드 웨어를 세팅해 주는 일이었다. 폐업한 매장의 중고 매물이 잔뜩 들어오면 따로 보관하고 있다가 새로 창업하는 매장에 저렴하게 판매했고, 그 차액을 벌었다. 시작은 중고 거래를 중개하는 부동산 같은 형태였다. 중고 기기를 구매할 만한 자금이 없었으니까. 사업이 발전하며 하드웨어 이외에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 같은 게임 CD도 함께 거래했다. 이 또한 불법일 수도 있겠지만, PC방이나 플스방이 많아지면 게임 문화가 더욱 발전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고 핑계를 대보련다. 문제는 심하게 어설펐다는 점이다. 20대 초반의 첫 사업이니 그럴만했다. 폐업이 몰리면서 창고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시기도 있었고, 반대로 창업이 몰리면서 중고만으로는 물량이 부족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업을 통해 해결해야 했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사업자를 신뢰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초기에 수천만 원을 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매출보다 비용이 커졌고, 몇 백만 원 정도만 남긴 수준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 와중에 불법 복사 장사를 하는 지인들은 1억을 넘게 벌었다는 소리까지 들렸다. 젠장. 왜 정의는 항상 패배하는가.

첫 사업을 통해 배운 점이 있었다. 사업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실패로 이어진다. 대학에서 이노베이션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사업을 하려면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교수님은 중소 기업청에서 진행하는 4박 5일간의 창업 캠프를 추천해 주셨다. 마침 겨울 방학 기간이었고, 지난 사업에서 번 돈이 있으니 한 달 정도는 일을 쉬어도 가족들 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21살의 나는 중소기업청의 창업 캠프에 들어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합숙 방식이었고 한 방에 4명이 배정되었다. 2층 침대 2개만 놓여있는 좁은 방이었다. 우리 방 멤버 중 한 분은 마네킹 사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기존 마네킹은 표정이 없으니 다양한 표정과 포즈의 마네킹을 만들어서 납품하겠다고. 다른 한 분은 바나나 맛 계란이나 딸기 맛 계란을 만드는 분이셨다. 시식을 해보고 신기해서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봤더니 기업 비밀이란다. 아저씨, 아직 기업 아니잖아요... 나머지 한 분은 목소리와 덩치가 큰 사람이었는데, 입만 열면 야한 이야기를 했다. 소개팅 회사를 준비 중이라며 유일한 20대인 나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었는데, 느낌만 보면 소개팅 회사가 아닌 불법적인 업소를 준비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한 번은 밤중에 자기랑 몰래 나가서 여자를 만나고 오자는 말까지 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옆방에는 세련된 느낌의 아저씨가 있었는데, 비둘기 농장을 한다고 했다. 88 올림픽 때 비둘기 날리는 것 봤지? 비둘기는 귀소 본능이 있거든. 각종 지역 이벤트에서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대여해 주는 사업을 할 생각이야! 길거리에서 비둘기를 볼 때마다 그 아저씨가 생각난다. 어쩌면 아저씨가 날려 보낸 비둘기들이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에 눌러앉은 것은 아닐까?

다들 하려는 일이 명확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막상 무슨 사업을 할지 생각도 안 해본 채 무작정 들어온 것이다. 참여 신청서에는 막연하게 ‘게임 사업’이라고만 써두었는데 혼자 개발사를 차릴 수도 없었기에 대책이 없었다. 연수 기간 내내 고민하고 상담을 받으며 내린 결론은 IP사업이었다. 요즘 시대에 IP라고 하면 인터넷 프로토콜 (Internet Protocol)이나 지적 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를 생각하겠지만, 당시에 말하는 IP사업은 정보 판매업 (Information Provider)였다. 같은 용어인데 왜 이리 차이가 나는지 궁금하겠지? 시대의 변화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부족해서 사업화가 애매한 상황이었고, 인터넷은 세상에 없었으니까. 용산 게임 총판에서 일하고 있기에 잡지보다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개당 10원, 100원에 판매하려는 전략이었다. 최소한 잡지 기자들은 구매할 거라고 생각했고 운이 좋으면 하드코어 게이머들도 관심 정보는 구매하지 않을까?

창업 캠프 종료와 동시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PC 통신망에 게임 정보 페이지를 개설했다. [소문]과 [정보] 등으로 분류해서 게시글을 올렸지만, 초기 월 소득은 만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고객들은 정보 페이지에 접속하기 위해 전화 요금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정보에 대한 비용까지 추가로 내면서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할 방안은 월정액 형태의 PC 통신에 입점하는 것이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 4군데 모두에 사업 제안을 작성해 전달했다. 이 시점까지는 계속 적자였다. 정보를 업로드할 때에도 전화비가 들었으니까. 한 달 전화비가 100만 원, 200만 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은 이미 까먹었고, 생활비에 사업 유지비까지 필요했기에 아르바이트를 더 늘려야 했다.

이쯤이면 무언가 큰 이벤트가 벌어지며 해피 엔딩이 될 것 같겠지. 일반적인 영화나 만화 스토리라면 고생 끝에 큰 성공을 했을 것이다. 그게 클리셰니까.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이었다. 인터넷 종량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유료로 서비스될 거라던 인터넷이 무료로 풀린 것이다.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돈을 내고 정보를 살 필요가 없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것이 정보였으니까. 월 소득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이걸 더 쥐고 있어 봐야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게임 업계에는 최후의 한방이 통해서 회사가 기사 회생한 사례들이 있다. 파이널 판타지 역시 그 대표적인 게임이다. 제목이 파이널 판타지인 것도 '마지막 환상'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 마지막 시도에서 대박이 나며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제 'Final'은 아니지 않나? 제목 바꾸세요. 스쿠에니 님들. 아무튼 최후의 희망이 될지 발악으로 그칠지 모르겠지만, 대학을 다니며 틈틈이 만든 1인 개발 게임을 우리 페이지에 올렸다. 사업을 접는다는 긴 글과 함께. 가격은 3,000원으로 책정했다. 비록 정보 게시글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재미있게 해주지 않을까?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단 한 사람도 다운로드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만든 첫 게임. 장르는 육성 연애 시뮬레이션이었다.

20대 초반. 내 삶에서 가장 크게 반짝이던 대학 생활의 한 켠. 중학 시절부터 이어온 아르바이트에 지친 나는 사업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복사 CD 판매라는 쉬운 길이 있음에도 끝까지 정당한 방법을 고수했기에 게임인으로써의 자부심을 갖는 기억이다.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당연히 성공이 따라올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나이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과 경험이 아니었을까? 만약, 인터넷이 무료로 풀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일상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종종 그때를 회상한다. 인터넷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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