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했다. 연예인을 만나면 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걸까? 사인을 받고 소장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도 직업인일 뿐인데,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팬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연예인이라는 것만으로 특별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도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노동자가 아닌가? 우리와 다른 직업을 가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종종 연예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때로는 함께 일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친구 아들, 어머니의 친구 딸이라며 소개받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특별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연예인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지 모르겠다
인텔에서 한번, 탄흔의 회사에서 한번. 두번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다.
5살_____
어른 들은 신기했다. 나에게 행동을 지시하고 후다닥 뛰어간다. 그리고 멀리서 사진을 찍는다. 어느 은행에서는 비누 방울을 불어주며 손바닥으로 받아 보라고 했다. 바보인가? 닿으면 터져 버릴 텐데 그것도 모르다니! 한 번은 잔디밭에서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와 돗자리 위에 앉아 마주 보며 웃으라고 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소풍 나왔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미쳤나? 우리 엄마는 저 멀리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또 다른 잔디밭에서는 컴퓨터라는 커다란 상자를 가져와서 손을 얹고 웃으라고 했다. 그랬다. 5살의 나는 아기 모델이었다. 그리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아마 많은 연예인들과 사진을 찍었으리라.
유치원에 가기 전에는 아역 모델로 활동했다.
6살_____
처음에는 민들레 유치원을 다녔다. 어느 날 어른들이 오더니 몇 명을 원장실로 불렀다.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될 거야.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었지만,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구인 진남이가 함께여서 안심했다. 다음 주부터 우리가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은 KBS 방송국이었다. TV 유치원 하나 둘 셋. 엄마와 기사 아저씨는 매일 아침 나를 방송국에 태워 주셔야 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우리가 수업을 하는 동안 수많은 어른들이 커다란 카메라로 촬영한다는 점이었다. 하나 둘 셋에는 하나 언니라는 아이돌 같은 선생님이 한 명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녀를 ‘희라 누나’라고 불렀다. 성은 ‘하’씨였다.
TV유치원 하나둘셋. 희라 누나와 별셋 아저씨가 메인이던 시절.
대기실에 있으면 연예인들이 와서 사탕을 주며 귀여워했다. 가수들과 개그맨들, 배우들도 종종 들러 힐링받고 가는 듯했다. 그중 가장 신기했던 사람은 심형래 형이었다. TV에서는 영락없는 바보였는데, 대기실에서는 말끔하고 멋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속의 모습과 실제 모습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체로 개그맨들이 그랬다. ‘짤랑짤랑 짤랑짤랑 으쓱 으쓱~’으로 시작하는 하나 둘 셋 체조가 있었다. 매번 다른 유치원을 섭외해서 진행하는 코너였기에 고정 출연자인 우리가 출연할 일은 없었다. 딱 한번, 학생 수가 부족해서 체조에 나간 일이 있었는데, 다음날 가수 누나가 대기실에 찾아와서 ‘너 어제 체조에도 나오더라?’라고 했다. 어른들도 하나 둘 셋을 보는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다.
하룡서당으로 바보 연기를 하던 심형래 형. 나중에 우뢰매를 통해 나만 알던 멋진 모습(?)을 모두가 알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은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컵에 담는 릴레이 시합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젓가락 연습을 해왔는지 잘 해내는데, 내 차례에서 상대 팀에게 역전당했다. 배운 대로 젓가락 질을 하니 도저히 콩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는 건 싫어! 전국적인 망신이잖아!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젓가락 사이에 끼워 넣는 이상한 방법을 사용했다. 엄청나게 필사적이었다. 그 이후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바른 젓가락질은 하지 못한다. 여전히 젓가락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있다. 뭐 어때. 콩을 집을 수만 있으면 되는 거지!
하나둘셋 촬영 시절의 나
한 달에 한 번은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셨다. 어린 마음에 오늘이 출연료가 들어오는 날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멀리 갈 수는 없어서 방송국 지하 문방구를 가야 했는데, 장난감 종류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살만한 건 조이드라는 공룡 로봇뿐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수집할 수 있었다. 조이드에 대한 나름의 상식과 교양은 이때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 둘 셋 2년 차가 되던 날, 친구들이 출연료가 오를 거라며 축하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다들 돈에 집착하는구나. 어쩌면 이제부터는 좀 더 큰 장난감을 사주 시는 건 아닐까 싶어 내심 기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은 대형 조이드를 사주셨다. 마음속으로 다음 달에 살 큰 놈을 점찍었지만, 다음 달부터는 다시 예전과 같은 사이즈만 고르게 하셨다. 내 출연료인데! 이것이 기획사의 횡포인가!
태엽으로 구동하는 조이드 미니를 매달 하나씩 샀다.
7살_____
TV 유치원을 곧 졸업해야 하기 때문에 엄마는 분주했다. 나를 연예인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것일까? TV 단막극에 아역 배우로 두어 번 출연시키기도 했다. 대사는 세 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촬영하던 순간은 기억이 나지만 대사와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다. 하지만, 나의 연기는 영 아니었나 보다. “최애의 아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어린아이도 재능이 있으면 나름 빛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최애의 아이'를 보면 아역 배우도 처음부터 빛이 나던데... 나는 아니었나보다.
연기가 안돼서 그다음으로 노래를 선택한 것일까? 언젠가부터 노래 과외를 받게 되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노래를 가르쳐 주셨는데, 어디 대학의 교수님이라고 하셨다. 엄청난 비밀을 밝히자면 아빠와 할아버지는 모두 음치이다. 엄마는 나를 유전적 음치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노력한 것이다. 노래 과외 덕분인지 나름 잘 부르게 되었고, 엄마는 곧바로 나를 앨범 작업에 끼워 넣으셨다. 하나 둘 셋에서 친해진 희라 누나와 3인조 가수였던 별 셋 아저씨. 그리고 친구들 몇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녹음한 것이다.
희라 누나와 별 셋. 그리고 하나둘셋 친구들.
앨범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KBS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갔다. 몇 번인가 방송에 나가게 되고, 어린이를 위한 동요 모음집에 메인 보컬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나의 일이 많아지며 언젠가부터 엄마는 운전을 배웠고, 기사 아저씨 없이 둘이서만 다니게 되었다. 엄마는 이동 중에 항상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게 시키셨다. 동요가 아닌 가곡을 주로 부르게 하셨는데, 이유가 있었을까? 의도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몇 개의 동요 앨범 작업을 했다.
8살_____
갑자기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사실 마왕과 아버지는 나를 사업가로 키우기를 바라셨다. 아직 한글도 잘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종종 미팅 자리에 데려가기도 하셨으니까. 어쩌면 어른들이 바라는 육성 방향의 차이가 있던 것은 아닐까? 방송계에 집착한 것은 엄마뿐이었을지 모른다. 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촬영도, 녹음도, 방송국에 갈 일도 생기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육성 회장이라는 직책으로 학교에 큰 기부금을 내고 영향력을 발휘하시기 시작했다.
육성 회장이 된 어머니는 학교와 학교 주변 가게들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나의 도둑 놀이를 못본척 눈감아 주셨지.
20살_____
대학에 들어가 보니 같은 학과에 연예인이 하나 있었다. 아이돌 보이 그룹의 멤버였는데, 자기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재미있어서 친해졌다.
“너는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니가 뭐가 특별하냐? 인기 끌려고 발버둥 치는 게 불쌍하기만 하구만.”
아침마다 메이크업을 하고 키 높이 신발을 신는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그런 시선 탓일까? 나에게는 꾸미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였고, 심지어 사우나에 같이 가기도 했다. 기획사에서 지정한 머리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반항 심에 셀프 염색을 하기도 했다. 이를 도와주다가 남은 염색약으로 내 머리에 브릿지를 넣었다. 인생 첫 염색이었다. 친구가 잘되기를 바랐지만 H.O.T라는 엄청난 실력자들에게 밀려 그룹은 결국 해체되었다. 몇 번의 복귀를 했지만, 세상은 무관심했다. 연예인들끼리 모이는 회식 자리에서도 무시당하고 심지어 유명 배우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이 친구를 보며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불합리를 느꼈다. 그동안의 노력이 어떻든 결국 대중의 선택을 받고 인기가 유지되어야만 살 수 있는 직업이니까.
친구의 그룹은 HOT와 거의 동시에 데뷔했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X살_____
성인이 된 이후, 갑자기 어머니가 연예인 자녀를 가진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매번 비교를 시전 하셨다. 엄마 친구 아들 H 알지? 이번에 콘서트 해서 자기 엄마 차 바꿔줬다더라. M은 이번에 순례 법회 가는데 자기 얼굴이 딱 박힌 캔 커피를 모두에게 돌리더라. 이번에 CF 들어왔데. H가 자기 엄마한테 아파트 사준다고 집 보러 다니던데, 너는 언제 사 줄래? J라는 여배우 알지? 엄마 친구 딸인데, 정말 착하고 예뻐. 만나 볼래? 한번 이혼하긴 했지만, 걔 잘못은 아니더라. 이런 제안은 어처구니가 없어 화를 내기도 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통해 들어가려 했던 연예계에 여전히 환상을 갖고 계신 걸까? 정확히는 그중에서 성공한 연예인들에 대한, 그들을 자식으로 둔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겠지만.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미운 우리 새끼’의 애청자이시다.
말 그대로 '엄마 친구 아들'. 어머니는 나를 김민종과 자주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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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방송국 생활을 하고 연예인들을 접했기 때문일까? 사라진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던 친구의 고생을 곁에서 지켜본 탓일까? 어머니의 비교 어택에 대한 스트레스 탓일까? 나에게 연예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 수많은 직업인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안에서도 발버둥 치고 노력하며 올라서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 일반적인 직업과 다른 점은 대중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있다는 것. 따라서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큰 실망을 안길 수도 있는 것이겠지. 어느 쪽이든 본인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함께 할 거라고 생각하기에 종종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결국 연예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삶이 특별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한쪽 면일뿐이다. 그들을 그저 동경하기보다는 존중함으로써 나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더 좋은 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