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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우

친구와의 30년 된 약속

by 마이즈 Jan 13. 2025

“언젠가 우리 함께 게임을 만들자! 반드시! 약속이야!”


게임에 푹 빠져 있던 중학교 시절. 뜨거운 약속을 나눈 이가 있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던 조군. 그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유일한 어린 시절의 친구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그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고? 뻔하지 않나. 우리는 아케이드 키드니까.

예술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어느 오락실. 갈 때마다 보이는 죽돌이가 있었다. 키도 크고 곱상하게 생긴 남자아이였는데, 게임을 잘하지는 못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나였기에 잘생긴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매번 대전을 걸었다. 그 일이 반복되어 얼굴을 익혀가던 어느 날, 녀석이 역전 오락실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가볍게 이겨주었다. 잠시 후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그가 가게로 들어왔다. 뭐야, 복수하러 온 건가? 주먹에 힘을 잔뜩 쥐고 긴장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저 게임을 하러 온 것뿐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내가 일하던 곳은 게임숍. 모객을 위해 무료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두었는데 그걸 하러 온 모양이었다. 게임기 앞에 줄 서 있던 녀석은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너는? 이렇게 우연이 겹치며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훈훈한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게임을 하러 들른 녀석의 집이 반 지하 단칸 방임을 알게 된 후 경계심이 풀렸다. 좋은 부모와 환경 밑에서 편안하게 사는 멋진 놈들은 나와 맞지 않는다. 다른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중2병이 한참인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이 친구의 장점은 학교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당시 학폭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비참한 모습을 모른다는 부분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만의 비밀 장소인 헌책방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녀석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함께 오락실을 다녔다. 처음에는 매번 지기만 했던 녀석의 실력은, 나와 대전을 하며 일취월장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를 넘어섰다. 이것이 재능인가. 이제 되었다. 하산하거라.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가 처음 나왔을 때, 주 캐릭터로 나는 춘리를 골랐고, 녀석은 로즈를 골랐다. 왜 춘리냐고? 본래 좋아하던 캐릭터가 거의 다 삭제되었으니까. 제로에는 달심도, 블랑카도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 정주행을 하려면 시리즈의 모든 작품에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주인공은 제외하고. 조 군은 항상 신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기했다. 일상의 경험에 있어 우리는 반대였다.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그는 안정을 추구했으니까.

당시에는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자주 만났을까? 심지어 다른 학교였는데... 그야 당연하지. 예고 앞 오락실에 가면 항상 조 군이 있었고, 그는 내가 일하는 가게를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함께 게임 대회를 나가기도 하고 신작 게임 발표 행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단짝이 되었다. 고등학교 역시 서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 성적으로 녀석의 지원 학교는 무리였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오락실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치고받는 대전을 했다.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날, 작별 인사를 하며 그날도 격투 게임을 했다.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나자. 그때는 꼭 같이 게임을 만드는 거야.

조 군과 연락이 끊긴 지 십여 년이 지났다. 나는 게임 기획자가 되었다. 탄흔의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사귀던 연인도 게임 업계 사람이었는데, 그녀가 이직한 새 회사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자기네 회사 프로그래머가 무척 훈남인데, 매너도 좋고 친절하다고 했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평소와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야?’

‘이름? 조 군이라고 해.”


뭐? 설마 내가 아는 그 조군인 걸까?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연인의 퇴근 시각에 맞춰 그녀의 회사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 녀석과 재회했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의 친구. 서로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게임 업계에 오면 언젠가는 서로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 것이 운명의 파트너인가! 맹우여! 우리는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가 마치 거짓말 같겠지? 나 역시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기획자, 녀석은 프로그래머였다. 진짜 우리 꿈이 이루어질지도 몰라!

이후, 나는 구름 속의 회사로 이직했다. 팀장이 되었고 개발 팀에 추가 구인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프로그래머가 부족했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조 군은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의 결말은 좋지 않았고, 나는 녀석을 남겨둔 채 쓸쓸히 떠나야만 했다. 내가 없는 구름 속에서 조 군은 우리가 시작한 게임을 끝까지 마무리했다. 테니스에서 슈팅 게임이 된 개굴 소대의 이야기를. 미안하고 고마웠다.

[구름속으로 개굴] 중에서...

이후 검은 왕궁에 다닐 때에도, 가정형 회사를 다닐 때에도 조 군을 찾았지만, 그는 매번 거절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두 회사 모두 결말이 좋지는 않았으니까. 급여가 밀리던 어느 날, 조 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게임 업계에서 가장 큰 대기업인 N사에 합격했다고 한다. 내가 꿈에 그리던 그 회사에? 역시 이 친구는 대단하다. 격투 게임도 결국 나를 넘어서더니, 게임 업계에서도 아득히 먼 곳으로 가버리는구나. 어쩔 수 없지. 내가 부족한 탓인 걸. 같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부족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역시 그와는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조 군과는 이후 두 군데의 회사에서 함께하게 되었다. 그는 매번 나를 추월해 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켰다. 안정을 추구하는 녀석과 모험을 추구하는 나. 만날 때마다 대전을 했던 우리. 나는 여전히 녀석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 싶고, 중학교 시절 우리의 로망을 이루고 싶다. 그도 같은 마음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자네도 이 글을 읽으려나? 우리 둘,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꼭 함께 게임을 만들자. 30년 전 오락실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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