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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슬립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잠과의 사투

by 마이즈 Jan 09. 2025

안녕하세요. 이야기할 주제를 생각해오라고 하셨었죠? 매번 수면 시간에 대해 잔소리를 하시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오늘은 잠과의 기나긴 사투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괜찮겠지요? 사투라는 단어에 반응하시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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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적으로 느낀 것은 유치원 때부터 였습니다. 아버지가 재믹스라는 게임기를 사주셨는데, 어른들은 주말에만 게임을 허락해 주셨지요. 잠자는 척하며 며칠간 부모님을 관찰했습니다. 새벽 2시 정도면 확실히 잠드시는 것 같더군요. 가정부 누나는 5시 정도에 일어나니 저에게는 3시간이 있었습니다. 10시쯤 잠자리에 드는 척을 하고 가만히 누워있다가 2시에 조용히 거실로 나왔습니다. TV에 게임기를 연결하고 소리를 줄인 채 게임을 했지요. 그렇게 매일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몰겜을 했습니다. 왜 5시가 아니라 4시냐고요? 오전 8시에는 방송국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7시에는 깨웠거든요. 3시간은 자야 다음 날 촬영에 무리가 없더라고요.

밤중에 몰래하던 킹스밸리밤중에 몰래하던 킹스밸리

아시다시피 중학생이 되면서 집이 어려워지고 아버지가 떠났습니다. 제가 빚도 갚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는데,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단기 알바를 세탕 네탕씩 뛰어야 했고 당연히 잠을 줄여야만 했습니다. 자주 일했던 곳은 밤 12시가 넘어서 뒷문만 열고 영업하는 불법 오락실이었어요. 남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 저는 게임과 함께 있었던 셈이지요. 담배 연기 자욱한 곳이었지만, 다들 저를 예뻐해주었습니다. 종종 밤을 완전히 지새우기도 했고, 보통 2~3시간 자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난 것은 불법 애니메이션 일이었는데, 그 이야기는 전에 했지요?

불법오락실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할 예정불법오락실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할 예정

고등학생이 되면서 같은 일을 해도 급여가 어느 정도 들어왔고, 나름 요령도 생겼습니다. 여유가 있는 삼촌들도 조금씩 도와주셨지요. 일을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잠을 더 잘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위해 살기로 정했거든요.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무조건 게임을 하거나, 보드 게임을 만드는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학교가 조금 멀어서 6시반에는 나가야 했기 때문에 다시 3시간만 자게 된 것이었지요.

세가새턴용 블루시드. 밤중에 주로 했다.세가새턴용 블루시드. 밤중에 주로 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공부에 시간 할애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장학금을 놓치는 순간,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었으니까요. 낮에는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제가 만든 동아리 활동이나 사업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공부할 시간은 새벽 뿐이었어요. 대학생은 오전 등교가 늦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취침 시각을 새벽 4시반~5시 정도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한 덕분에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평화로운 대학 생활' 중에서...'평화로운 대학 생활' 중에서...

군 복무 중 교육청 정보화 부서 쪽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도 급여는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군인이었으니까요. 차비도 빠듯했어요. 하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지요. 결국 급여가 통장에 찍히지 않는, 현금을 받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주로 일용직이었죠. 노가다라고 말하는 그런 것들이요. 페인트 칠도 하고 외벽 청소도 했는데, 이건 뭐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이 시기에 잠과 싸운 이유가 뭐냐고요? 뜬금없지만 춤을 추기 시작했거든요. 커버 댄스 공연 팀이었는데요, 정기적인 급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연을 할 때마다 현금으로 지급되었어요. 문제는 연습 시간 이었어요. 한 밤중에 도서관 공원에서 밤새 춤 연습을 하고 편의점 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때웠지요. 역시 두어시간 정도 밖에 못잤어요.

'음악과 무대' 중에서...'음악과 무대' 중에서...

대학에 복학한 뒤, 게임 업계로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있었지만 왠지 자신이 없었어요. 게임에 대한 인사이트도 자꾸 부족하게만 느껴졌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1개씩 게임을 클리어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어요. 역시 낮에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매일 밤 12시 정각부터 게임을 시작했죠. 주변에서 보면 그냥 게임하고 노느라 잠을 안잔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역시 3시간 정도 잤네요.

1주일에 한개를 해야하는데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 같은 게임이 걸리연 시간이 항상 빠듯했다.1주일에 한개를 해야하는데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 같은 게임이 걸리연 시간이 항상 빠듯했다.

회사에 취업하고 나서는 더 힘들어졌어요. 왜냐하면 야근과 철야가 기본인 시대였거든요. 거의 매일 회사에서 밤을 보내야 했어요. 일하는 것은 좋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게임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해가는데 이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야근과 철야 사이에 하루에 최소 한시간 이상은 무조건 게임 시간을 끼워 넣었어요. 게임을 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멀미에 토하면 했던 FPS들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멀미에 토하면 했던 FPS들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스스로의 실력 부족을 느꼈어요. 어떻게든 해야 했지요. 이대로면 게임 업계에서 도태되고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어요. 퇴근 길에 24시간 하는 카페에 들렀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무조건 새벽 3시까지 그 곳에 머물다가 집에 가기로 했어요. 노트북과 게임기를 꺼내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주로 기술 서적을 가져가서 공부하는 일이 많았지요. 3시에 집에 가면 6시까지 자고 7시에는 다시 출근 했어요.

새벽 공부... 그 덕에 카페 알바생과 썸(?)도...새벽 공부... 그 덕에 카페 알바생과 썸(?)도...

그 뒤에는 어땠냐고요? 대기업을 다닐 때에도 오래 잘 수가 없었어요. 동시에 어학 공부와 다른 것도 해야 했거든요.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더 그랬죠. 주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물어보세요. 누구 하나 푹 자는 사람이 없을 걸요? 저도 매번 그랬어요. 어떻게 잠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잠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야만 했어요. 그게 습관이 된 것인지 지금도 잠을 많이 자면 죄책감이 들고 도태되는 느낌이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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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상담한 다른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묻기도 하시더군요. 있기야 하지요. 잠자다가 어머니가 납치되는 상황에 깨어나기도 했고, 제가 잠자리에 들어간 사이에 자살 기도를 하시기도 했으니까요. 마왕과 어머니라는 글에 써두었어요. 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못 자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잠이라는 존재를 적으로 인지하고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마음이 크거든요.

'마왕과 어머니' 중에서...'마왕과 어머니' 중에서...

쇼트 슬리퍼로 오해 받으면 괜히 억울하더라고요. 필사적으로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그걸 단순히 체질로 생각하며 부럽다고 말하거든요. 저도 잠을 적게 자는 체질이면 좋겠네요. 강철의 연금술사 알아요? 거기에 나오는 동생 알폰스요.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존재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불쌍하다는 식으로 안타깝게 연출되는 장면이지만 저는 부럽더라고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알폰스 엘릭알폰스 엘릭

이렇게 저는 평생 잠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에게는 피곤하게 보이는 자세일 수도 있지만, 한번 시작한 싸움은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발버둥 치면서 남들보다 한두시간이라도 더 의미 있게 할애할 수 있다면, 저도 쓸만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늘 남보다 부족하고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들어 보시니 어떤 가요? 문제가 있을까요? 네? 오히려 건강하다고요? 그렇게 말해 주시는 분은 여태 한 분도 없었어요. 다들 건강 걱정을 하시거든요. 흥미롭습니다. 역시 융 학파는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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