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반작용

정의로움 탓에 빌런이 된 친구 이야기.

by 마이즈

대학에 막 입학한 신입생 시절. 간신히 추가 합격으로 들어온 나는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공부의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평화로운 대학생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목표겠지. 따라서 1학년 수석 입학자가 누구인지를 찾았다. 누군지 몰라도 너는 이제 내 타깃이 되는 거야. 불쌍한 녀석. 그렇게 찾아낸 수석 입학자는 180이 훌쩍 넘는 큰 키에 안경을 쓰고 머리를 빡빡 깎은 모습이었다. 어라? 어쩐지 친숙한데? 이 모습을 어디에서 봤더라. 아! 야스!

일본 만화 ‘나나’는 야자와 아이의 작품으로 우연히 같은 이름의 동갑내기인 고마츠 나나와 오사키 나나 두 사람이 한 집에 살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화의 중심인물 중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대머리 남성이 있는데, 그의 이름이 야스였다. 수석 입학자가 그와 비슷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저 녀석을 꺾어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의를 불태우며 거리를 두었다. 우리 관계의 변화가 온 것은 기말고사였다.


“지금 이게 뭡니까! 컨닝 경연 대회입니까!”

나의 발언은 동기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되었고 교수님들에게도 골칫거리였다. 내가 교수가 되어보니 얼마나 곤란하셨을지 공감이 된다. 이 일로 학과 동기들에게서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레벨 1이 있었으니까. (안녕, 레벨1) 우리 학과의 모두가 컨닝 타입인 것은 아니었다. 단 두 사람은 나의 의견에 동조했다. 한 녀석은 타고난 성실함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친구였는데,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가서 지금은 상당한 직책까지 올라갔다. 또 하나가 야스였다. 역시 수석 입학자. 그때부터 갑작스레 친구가 되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과 내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야스는 생긴 것과 달리 겁이 많았다. 내 자취방에서 영제로 -붉은 나비-라는 호러 게임을 시켜주었는데, 게임 중에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며 방 밖으로 뛰어나가기까지 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웬만한 게임 스트리머의 리액션보다 컸다. 혹시나 기절할 까봐 그 이후로 호러 게임은 절대로 시켜주지 않았다. 종종 내 방에 와서 자기도 하고 내가 갈 곳이 없을 때는 녀석의 하숙집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 밤 중에 괴담 이야기를 하면 덜덜 떨며 더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놀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같이 길을 걷다가 빙의된 척하기도 했다. 그렇게 괴롭히는 데도 친하게 지내 주다니 역시 좋은 놈이다.

야스는 야한 것을 좋아했다. 카마수트라와 소녀경 같은 고전을 달달 외웠다. 종종 새로 얻게 된 성 지식을 흥미롭게 말했다. 그럴 때면 그는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연인이 생기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 같은 사람도 연애를 계속하는데,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머리도 좋은 이 친구는 왜 인기가 없는 걸까? 혹시 여자 앞에서도 야한 이야기를 하냐고 물었더니 미쳤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번은 너무 경험해보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원나잇 상대를 찾아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왠지 무서워져서 도망쳤다고 했다. 참 야스 답다.


야스의 결혼식이 있던 날, 오랜만에 동창이 모였다. 그리고 몇 명이 뒤에서 수근거렸다. 그렇게 여자를 밝히더니 막상 결혼은 그리 예쁘지 않은 신부와 한다는 소리였다. 너희는 야스를 잘 모르니까. 그놈이 밝히는 것은 외모가 아니거든. 신부와 만난 장소는 도서관이라고 했다. 대학 시절 내내 솔로였는데, 처음 사귄 사람과 바로 결혼까지 골인한 것이다. 이런 부분도 참 자기만의 중심을 끝내 지키는 녀석 답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가난했지만, 야스의 결혼식 축의금만은 조금이라도 더 넣고 싶었다. 가지고 있던 천 원짜리까지 탈탈 털었다. 나중에 열어보고 웃었으려나.

야스는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수석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받아야 했으니까. 1학년 1학기 때에는 경쟁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음부터는 내가 질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 같이 있었고 녀석이 공부하는 수준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나를 원망하거나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야스의 어머님을 뵐 일이 있었는데,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다 드러나더라. 역시 넌 좋은 놈이야.


누구보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야스는 멋진 놈이고 항상 정의롭게 노력했으니까.


예상대로 그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심지어 우리 전공 분야였다. 진짜 올곧은 녀석이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너무 정의롭기 때문이었다. 상사가 누군가를 속이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등 정당함에서 벗어나는 케이스를 그는 견디지 못했다. 그는 정의로운 대신 융통성이 부족했다. 결국 상사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팩트만 보면 그의 행동에 잘못은 없었다. 하지만 조직에서 이런 강직한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야스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두 번째 회사도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이었고, 세 번째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매번 같은 형태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졸업 후에도 종종 만났는데, 같은 조언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성격 좀 죽여. 그리고 가끔은 눈 감고 넘어가기도 해라. 아니, 그냥 아예 보지 마. 귀 닫고 눈을 닫아야 할 때도 있어. 네 가족들 생각도 해야지. 알았어. 이제는 그래야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또 일 낼 거지? 제발 그러지 마라. 하지만 녀석은 끝까지 정의의 수호자였다. 결국 그는 점점 작은 회사로 이직해야만 했고 결국 택배 상하차와 건설 현장 일용직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야스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사회의 정의와 정당함, 그리고 사람들의 도덕심 향상을 위한 사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자칫하면 사이비 종교처럼 빠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그날 이후 야스와의 연락이 끊겼다. 걱정되어 아내 분에게 연락을 했지만 친정에 들어가셨다는 말에 더 이상 자세한 사정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제발 내가 상상하는 그것만은 아니기를. 녀석이 여기에서 더 추락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지만, 그 직후 나 역시 사업에 문제가 생기며 야스의 문제는 서서히 나에게서도 멀어져 갔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당함은 무엇인가? 규칙과 규범은? 도덕은?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할 시기가 온다. 그것은 정의를 회피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의 정의를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믿는다. 나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 나의 정의일 수도 있고, 우리 프로젝트를 보존하는 것이 나의 정의일 수도 있다.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올곧은 내 친구 야스. 그가 생각한 정의가 타인들의 정의와 상반될 때 그는 결국 조직의 빌런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지만, 자신과 같은 정의를 비전으로 갖는 딱 맞는 조직에 그가 안착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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