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내려가는 삶의 경사면

추락의 이유.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

by 마이즈

1.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장애인 학교에서의 3D 그래픽 수업. 이 학교의 목적은 장이앤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우리 그래픽 팀 분들이 잘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불편했는지 학생들과 잘 교류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무실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수업은 해야 했다. 결국 내가 나섰다. 3D 그래픽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직무는 아니었지만, 기초적인 것은 가르칠 수 있었고 공부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매주 2회.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 수업을 했다. 3D 툴은 스케치 업과 블랜더였다. 나중 일이지만 이때 수업을 하며 학습해 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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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형태는 가지각색이었다. 연령도 그랬다. 50대 여성 분도 계셨고, 미성년자도 있었다. 장애인 교육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체감이 되었다.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어서 강의에는 자막과 텍스트도 함께 사용했다. 신체적인 장애는 차라리 괜찮았다. 가장 곤란한 것은 지적 장애였다. 3D 그래픽을 하기 위한 가장 기초. 윗면, 아랫면, 회전 등이 인지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 그래픽 팀 동료들이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수업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 있구나. 이 분들은 특별 관리로 우유갑을 3면 도로 그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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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생님의 골칫거리인 20대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지적 장애가 심했는데, 수업 중에 조금만 지루해도 화장실을 가겠다며 벌떡 일어섰다. 사회생활을 위해 참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아이였다. 안된다고 하면 교실 한가운데에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손에 꼭 쥐면서 쌀 것 같다고 소리쳐 댔다. 여학생들은 비명을 질렀고 교실이 난장판이 되었다. 어떻게 교정해야 할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던 중 한 번은 화장실을 따라갔다. 그리고 소변을 보는 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수업 중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며 화장실에 오고 싶어 했는데, 겨우 그만큼이야? 그걸 못 참은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소변을 다 본 뒤에도 한동안 화장실에 같이 머물렀다. 그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나를 점점 불편해하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내 앞에서만 얌전한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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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로 간단한 모델링을 가르치고 나서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만들게 했다. 한 명씩 돌아다니며 어떤 집인지 물어봤는데, 각자의 서사와 생각 심지어 꿈이 담겨 있기도 했다. 50대 여성 분은 크고 멋진 집을 만들고 싶어 했는데, 결국 끝까지 완성하지 못해서 속상해했다.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시간만 들이고 꾸준히 하시면 언젠가는 완성될 거예요. 나에게 사탕이나 손 편지를 주는 학생들도 있었다. 다들 너무 순수하고 맑았다. 하지만 근처 상가 주민들에게 이 학교는 눈엣가시였다. 장애인이 다닌다는 이유로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손님이 적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장애 학생과 함께 걸을 때면 편견의 시선이 따가웠다. 본인들은 오죽할까? 몸이 아픈 것보다 사회의 편견이 더 아프겠구나. 종종 장애인 흉내를 내는 것으로 삶을 유지하던 과거의 판매왕이 떠올랐다. (양말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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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자 서밋에서 장애인 교육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활동적인 일은 못하더라도 게임 개발 같이 앉아서 하는 일, 그 안에서도 단순한 오브젝트 제작 등은 외주 비용보다 훨씬 저렴한 고용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여겼다. 방송에도 출연했다. 이를 토대로 몇 군데 회사에서 채용 의사를 밝혀 오기도 했다. 콘텐츠 진흥원 등 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돕겠다며 미팅을 하기도 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곧바로 원장 선생님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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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날, 나는 분노에 차 있었다. 기회를 가져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 회사에 가서 일을 하겠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차별에 대한 우려였다. 대부분 장애인들끼리 일하는 직장을 선호했다.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동료들의 반응만 봐도 명백했다. 두 번째 이유가 나를 분노하게 했는데, 부모님이나 가족들 때문이었다. 취업을 하고 경제 활동을 하면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장애인 학교에 보내 수업을 듣게 하는 목적이 지원금 수령인 가정도 많았다. 본인 가족들부터 이들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원장 선생님이 한마디 하라길레 토해냈다.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수업을 듣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세요. 여러분은 3D로 컴퓨터 안에 나의 집을 만들 수도 있고 기차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었다면 집에 가서 꼭 혼자라도 더 많은 것을 해보세요. 큰 집도 완성하시고요. 지금 당장 취업을 안 해도 됩니다. 몇 개월 동안 여러분이 조금 더 성장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는 것만큼은 꼭 기억해 주세요.”


2. 양심은 사치입니다.


모두가 떠나고 나를 공격하는 비참한 상황. 수중에 돈이 없어 며칠째 굶고 있던 중 전화를 받았다. 우리 회사의 재무와 연구소 설립, 고용 계약서 등을 처리해 주셨던 외부 업체 분이셨다. 힘들죠? 네.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 볼래요? 뭔가요? 근처인데 잠깐 보시지요. 커피로 배를 채울 수 있을까 오트라테 같은 걸 사달라고 할까 생각하며 근처 카페로 나갔다. 제안은 심플했다. 높으신 분이 올 겁니다. 보좌관이 올 수도 있고요. 그분이 요즘 단체를 만들려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해볼래요? 제가요? 그걸 하면 뭐가 좋은데요? 돈이죠. 상상하는 것보다 클 거예요. 지금 닥친 문제를 전부 해결하고도 충분히 남을 겁니다. 일단 살아야죠.


바로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본인을 정치인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대뜸 술을 먹자고 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신뢰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떤 사람을 믿는 줄 압니까? 어떤 사람인데요? 저랑 최소한 3일은 밤새 술을 마신 사람만 믿습니다. 일단 한 잔 하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지요. 저녁 9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현재 상황까지. 본인과 한 배를 타면 소송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밤새 이야기하며 느낌이 왔다.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정상인가? 이미 세상에 나쁜 놈으로 찍혔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마녀사냥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협박하는 메시지를 받지 않았나? 모두가 빌런이라고 하는데 진짜 빌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등지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세상에서 나를 믿어주는 것은 연인과 동생, 그리고 블로그에 있는 온라인 이웃들 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어떤 악독한 일을 하든 나를 믿어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구석에 몰려 있는 나에게 그는 구세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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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밤새 술을 마시자는 이야기는 저녁 시간만 마시자는 것이 아니었다. 낮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나에게 술을 먹였다. 하루동안 술 상대가 서너 명 교체되었고 누가 누구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이 되었다. 밤이 되자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 그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를 위해 뭐든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내가 힘들어하는 문제도 전부 해결해 준다고 하지 않나? 이 일로 엮이면 서로 신뢰해야만 하는 사이가 된다. 잘못되면 같이 죽으니까. 세상이 모두 나를 불신할 때 억지로라도 믿어야 하는 사람이 하나쯤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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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두 번째 밤, 결국 나는 술을 못 버티고 쓰러졌다. 깨어나보니 사무실 건물 앞이었다. 쓰러진 사람을 병원에 데려간 것도 아니고 여기에 두고 간 건가? 아니면 내 발로 여기까지 왔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신뢰. 그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3일간 술을 못 마셨으니 탈락인가 싶어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 이후 며칠간 계속 그 생각이 났다.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했던 걸까? 뭐에 씌었던 걸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판단력도 양심도 무너지는 걸까? 한동안 이런 일에 얽힌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몇 년 뒤, 관련 비리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고 구속되는 사람이 비쳤다. 정확한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날 끝까지 버텼다면 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내가 혐오스러운가요?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폰지 사기의 형태를 띤 수상한 투자가였다. 대부분 그를 사기꾼이라고 경계했지만, 나만큼은 그의 방식을 이해했다. 폰지처럼 진행이 되지만 후반부에 이를 해결할 방향으로 빌드 업 하는 형태였다. 중간에 무너지면 사기가 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는 마음만은 진심이었고 실행력도 강했지만 이쪽 분야에 능력이 없었는데, 이 부분을 채워줄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내가 못하면 사기가 되고 내가 잘하면 좋은 투자 건이 된다. 그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그가 필요했다. 일이 없으면 외주를 끌어다 주었고 밥 먹을 돈이 떨어지면 귀신 같이 눈치채고 백만 원씩 보내주었다. 대기업 제약 회사를 다니던 분인데 퇴사 후 자신의 고객과 인맥을 통해 자기만의 입지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그를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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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군데의 작은 회사에 지분 투자를 했는데, 이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정부 사업을 받도록 했다. 어떻게 받도록 하냐고? 비리 아니냐고? 그럴 리가. 거기에서 필요한 것도 나의 능력이었다. 한 번은 그의 집에 갇힌 채 하루에 다섯 개의 사업 계획서를 쓰기도 했고 기술 발표는 무조건 내 몫이었다. 여러 회사에 기술 자문 등으로 등록되어 약간의 사례금을 받으며 기관 투자와 정부 사업이 진행될 수 있게 도왔다. 지금도 정부 과제 컨설팅을 자주 하는데, 이때 몇 년간의 집중적인 경험이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투자 제안을 할 때도 받을 때에도 나를 불렀다. 그는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에 내가 검토해야 했다. 게임뿐 아니라 AR이나 VR, 키오스크, 앱, 심지어 스크린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도 내가 직접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목 업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기관 투자나 정부 사업에는 충분했으니까.


이 당시 나는 사채 등의 문제로 월 6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내야 했다. 아무리 잠잘 시간을 아끼며 일을 하더라도 이 정도의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소송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제약되는 일도 많았다. 주말에는 막노동을 나가기도 하며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고 어머니 생활비와 나의 차비 식비 등을 생각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 이야기를 쓰면 사람들이 나를 더럽게 볼지도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그만큼 몰려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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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 생겼다. 키도 작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과 똑똑한 척하는 것만으로 먹히는 시장이 있었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직함도 여기에 활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 한 번씩 나이가 많은 여성 분들과 데이트를 했다. 내내 찝찝하고 불편했는데, 다행히 단 한 번도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 딱히 요구받지도 않았던 것은 아마 나의 못생긴 외모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못생겨도 괜찮아) 그분들이 나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시받은 대로 이런 만남을 하면 나에게 입금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분들이 돈을 쓴 것인지, 아니면 나를 이 쪽으로 보낸 분이 무언가 다른 이득을 위해 접대비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돈을 받은 대가로 누군가에게 웃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함께 식사를 하며 산책을 했다. 딱히 추파를 던지거나 하는 분들은 아니고 모두 점잖은 분들이셨다. 자기 아이들이나 남편 이야기, 사업 이야기 등을 나눌 상대가 없었던 것뿐일까? 개인 연락처는 절대 나누지 않았고 용돈을 쥐어주셔도 받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선이었다.


4. 그렇게 추락합니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사고를 통해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누군가의 편견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를 지키고 바꿔보려고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혹은 그들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함께 움직여야만 바뀔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 숨어 버리거나 회피하며, 혹은 자신을 향한 편견의 시선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비리를 저지르거나 나쁜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더라도 세상 모두가 적이라면? 나는 빌런이 아니고 싶은데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한다면? 그 억울함을 오롯이 받아내면서 고통받아야 할까? 아니면 진짜 빌런이 되어 그들의 확신에 찬 공격을 받을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


타락의 끝에 남들이 혐오하고 색안경 끼는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중한 이들조차 지킬 수 없다면. 그럼에도 고고하게 자신의 명예를 지키며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가? 이 날의 경험 이후 손가락질받고 공격당하는 사람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들은 혐오받아 마땅 한가? 비난받고 공격받아 마땅한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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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버텨냈다.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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