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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즈 Nov 28. 2024

양말 사세요...

직업에 귀천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은 직업은 아르바이트를 포함하면 50가지가 넘는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남들이 아무리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라도 사명감과 전문성이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직업이 있다. 한동안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았던 어느 겨울.  그 시절의 경험을 남겨두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구미로 쫓기듯 이사를 가게 된 20대 초반. 어떤 일을 계기로 나 홀로 대구로 건너가 노숙을 시작했다. 동생은 군대에 갔고,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공장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을 피해 도망친 것이었을까?


추운 겨울, 노숙자에게 명당은 지하철 역 화장실이었다. 유일하게 밤새 열려 있는 따뜻한 장소였으니까. 그곳에서 우연히 근처 슈퍼마켓의 딸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빵과 과자를 가져와준 덕분에 굶지 않을 수 있었다. 2주 정도 되었을 때 그녀가 말했다. 계속 이렇게 살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제대로 된 일을 찾아보자고. 그러면서 벼룩시장 신문을 건넸다. 요즘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 구인 공고는 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펜을 들고 일자리를 체크했다.

 가장 자신 있는 일은 PC방 야간 근무였다. 따뜻하고 잠을 잘 수도 있을뿐더러 경력도 충분했다. 나름 대형 PC방 매니저까지 해봤으니까. 하지만 찾아가는 족족 거절당했다. 노숙 생활을 하며 더러워진 행색 탓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모든 PC방 구인 공고에 엑스 표를 그리고 나니 왠지 오기가 생겼다. 다른 공고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을 주기만 한다면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갈 마음이었다. 그렇게 찾던 공고에서 ‘숙식 제공’이라는 단어를 발견했고,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한빛 기획’.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당시 한빛 소프트가 한국 게임 업계의 퍼블리싱 큰 손으로 활약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가 아닐까 하는 작은 기대감이 생겼다. 간단히 면접을 보고 즉시 채용이 결정되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나를 뒤에 있는 창고로 데리고 가서 설명했다. 여기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팔면 되는 간단한 일입니다. 방문 판매 같은 거예요. 창고에는 양말이나 화장품, 심지어 컵이나 접시까지 다양한 물건이 쌓여 있었다.


“처음 하실 때에는 보통 양말부터 시작합니다.”

“양말이요? 왜죠?”

“제일 저렴하거든요. 한 켤레에 1000원에 매입하시면 됩니다.”

“매입이라고요?”

“처음이니 10만 원부터 시작할까요?”


설명을 듣고 보니 이러했다. 양말을 1000원에 가져가서 판매하고 남은 금액을 갖는 방식이었다. 양말은 보통 한 켤레에 만원에 판매한다고 했다. 10배의 수익.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하루에 수십만 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하지만 나에게 10만 원이라는 거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엄연한 노숙자였으니까. 여기까지 나를 도와준 슈퍼마켓 아가씨가 흔쾌히 10만 원을 빌려주었다.

그날부터 사무실 2층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숙소는 매우 심플한 구조였다. 그냥 2층 전체가 텅 비어 있을 뿐. 책상도 의자도 없는 빈 공간이었으니까. 다만 구석에 이불이 잔뜩 쌓여 있었다. 누구든 이불을 가져와서 아무 데나 펴고 누우면 자기 자리가 되는 방식이다. 난방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뭉쳐서 자리를 깔았다. 나 역시 그랬다. 20명이 넘는 남자들이 이 공간에서 머물렀고 다들 제대로 씻지 못해서 냄새가 지독했다. 전철역 화장실이 그리웠다.

 양말은 혼자 나가서 파는 것이 아니었다. 오전이 되면 봉고차가 여러 번 운행하는데, 어떤 차를 타는지도 운이었다. 각각의 차는 대구 전역을 돌면서 지역마다 한 명씩 내려준다. 내린 시각부터 정확히 5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로 다시 태우러 오는 방식이다. 다들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 내리고 싶어 했다. 회사 주변으로 모든 사람들이 판매를 시작하면 서로 경쟁하게 되므로 이런 시스템을 만든 것 같았다.

 양말은 팔리지 않았다. 10만 원을 빌렸는데, 막상 번 돈은 만원은커녕 천원도 못 되는 상황이었다. 처음 며칠간 단 하나도 팔지 못했고 어느 슈퍼 마켓에서는 소금 뿌리기를 당하기도 했다. 만화나 영화에만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이걸 직접 겪게 되다니. 문제는 샤워를 못한다는 점이었다. 한동안 소금이 옷 속에서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양말을 처음 사주신 분은 어느 약사 분이었다. 약국에 들어가서 양말 하나 사시라고 했더니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고는 3만 원을 꺼내 주셨다. 양말 세 켤레를 드리려고 했지만 끝까지 받지 않으셨다. 판매가 아닌 적선받은 기분이라 좋으면서도 찝찝했다.

 한 번은 논밭이 가득한 시골 마을에 내리게 되었다. 이런 데서 어떻게 팔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조금 걷다 보니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1층에는 과일과 비료 등을 파는 가게와 슈퍼 마켓이 있었고, 2층은 다방과 노래방이 있었다. 오늘도 빈 손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여기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2층으로 올라갔다. 노래방은 닫혀 있었다. 아무래도 저녁에 여는 것 같았다. 맞은편에 있는 다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 넷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양말 사세요. 그 말을 하자마자 그들 중 하나가 내 손을 잡고 테이블로 데려갔다. 네 명의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좋기는커녕 민망하고 도망치고 싶은 상황이었다. 한 겨울인데도 옷을 걸친다 만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다방 안은 후덥지근했다. 난방비가 아깝지도 않은가? 결론만 말하자면 그날은 가지고 나간 양말을 처음으로 다 팔았다. 무려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번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치욕을 참아야만 했다. 선을 넘는 과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순진한 20대 청년의 시점에서는 비참한 기분이 드는 시간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슈퍼마켓 딸에게 빌린 10만 원은 갚을 수 있었다.

 다방 사건 이후로도 여전히 양말 재고는 잔뜩 남아 있었다. 물건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형님들은 더 비싼 물건도 잘 처리했으니까. 가장 비싼 제품은 무슨 건강식품이었는데, 구매 가격만 한 통에 10만 원이었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화장품이나 접시를 대량으로 판매해서 큰돈을 만지는 형님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단계 사업의 시작 단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주변에 그렇게 잘 버는 사람들을 직접 보게 되니 내가 능력이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에게 마지막이 된 어느 날, 봉고차에 어떤 형님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회사의 전설이었다. 항상 매출 1위를 기록한다는 동경의 대상. 그분이 내 옆으로 오더니 툭 치면서 말했다. 너 대학생이라며? 파는 건 잘 못한다던데 오늘 나랑 같이 가볼래? 다른 형님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며 엄청난 행운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한 명씩 내리는 것이 원칙이긴 했지만, 특별히 우리는 두 명이 팀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양말인 것을 부끄러워하자 원래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이것이 전설의 판매원인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다음 가게에서는 네가 해보는 거다?”


형님은 자신 있게 말하며 눈앞에 있는 약국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마침 내가 처음 판매에 성공한 가게도 약국이었기에 이 상황이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제2의 판매왕이 될지도 모른다. 벅찬 마음으로 약국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형님의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고개도, 허리도 꺾였다. 당당하던 걸음은 기괴한 비틀거림으로 변했다.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렸고 입에서 침이 떨어질랑 말랑했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아마 아픈 동생이 어쩌고 했던 것 같다. 약국을 나오고 나서 왈칵 눈물이 났다. 왠지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에 다니던 헌책방 주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장애를 당당하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상황을 저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조금 전까지 멋져 보이던 형님이 혐오스러워졌다. 놀랍게도 그 약국 주인아저씨는 양말을 구매했다. 무려 한 켤레에 3만 원이라는 값을 지불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가게에서는 나에게 장애인 흉내를 내보라고 하기에 완강히 거부했다. 이후 봉고가 돌아올 때까지 5시간 동안, 나는 양말을 팔지 않았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숙소를 빠져나왔다. 남은 양말은 숙소에 쌓아둔 채. 한 겨울의 추운 새벽 공기가 나를 깨워주었다. 짧은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았다. 마치 기묘한 꿈을 꾼 것처럼. 여기는 나의 세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구미행 첫 차표를 구매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직업에도 귀천은 없다. 하지만 그 직업이 누군가를 폄하하거나 거짓을 행하는 것이라면, 직업윤리가 일반적인 도덕관념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거부하고 싶다. 내가 해본 수십 개의 일 중에서 유일하게 수치스러웠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을 테고 그 안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 이 시기의 경험을 떠올릴 때면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일, 나의 직업에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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