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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즈 Nov 23. 2024

[3] 카메라 시점이 꼬였을 때

콘솔 게임의 로망이 있던 세 번째 회사와의 짧은 인연

회사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쓰고 있다. 첫 번째, 피쳐폰 개발 회사에서의 김 부장님 이야기. 두 번째, 온라인 게임 회사에서 30살이 되던 순간의 이야기. 세 번째 회사를 앞두고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에피소드가 없기도 했고 너무 짧게 다닌 회사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막상 쓰더라도 재미는 없을 것 같았다. 쓸까 말까 고민하며 노트북으로 화상 미팅에 접속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모 기관 프로젝트의 멘토링을 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나는 멘붕에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기획 멘토로 등록되었다고 들었는데, 멘티 전원이 프로그래머였고, 기술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게다가 게임 개발에서 쓰이지 않는 툴이나 기술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몇몇 질문은 솔직히 모른다고 말하고 넘겼다. 틀린 답변으로 얼버무렸다가 그들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중 누군가가 질문했다. "1인칭 뷰로 개발하다가 3인칭으로 전환했는데, 카메라가 꼬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질문을 받는 순간, 그 순간이 떠올랐다.

“와 나도 이런 게임 만들고 싶다.”


콘솔로 나온 3D 슈팅 게임을 플레이할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었다. 네트워크라는 제약에서 자유롭기에 더욱 화려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퇴사 시기에 당시 한국 게임 업계는 온라인 슈팅 게임 열풍이 불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많은 곳에서 탐내는 인력이었다.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기획자에 스크립트도 가능하고 밸런스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베이스는 시나리오였다. 온라인 슈팅 게임을 시작부터 사용화까지 경험했다는 점도 큰 강점이었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부터 헤드 헌터들을 통해 여기저기서 제안이 들어왔다. 몇 번은 대기업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첫 회사에서 모바일, 두 번째 회사에서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콘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콘솔 게임으로 꿈을 꿔왔으니 당연히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 콘솔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몇 없었고, 면접까지는 갔지만 결국 탈락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에 의외의 인물에게서 연락이 왔다. 첫 회사에서 성공작이었던 연애 시뮬레이션. 그 게임을 서비스했던 퍼블리싱 업체의 담당 팀장 A님이셨다. 집 앞 공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를 차릴 생각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콘솔 게임을 해보려고요.”


어? 이런 우연이? 마치 세상이 나를 향해 움직여주는 것 같았다. A님은 PSP라는 휴대용 게임기에 들어가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는 콘솔 게임을 만들어본 경험자도 적지만, 휴대용 게임기 개발자는 더욱 희귀하다. 그래서 모바일과 온라인 두 가지 모두의 개발 경험을 갖춘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같이 하자는 말에 바로 수락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며칠 뒤 방문하게 된 회사 사무실은 매우 작았다. 원룸 같은 공간에 책상은 단 세 개뿐. 하나는 회사 대표인 A님의 책상. 또 하나는 내가 사용할 책상. 다른 하나는 누구 책상이냐고 묻자 디자이너의 책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라? 프로그래머는요? A님 혹시 직접 코딩하시려고요?”

“저는 못해요. 그런데 마이즈 씨가 프로그램 가능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누가 그래요?”

“김 부장님이.”


순간, 고민이 되었다. 콘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맞긴 한데… 기획과 프로그램을 전부 혼자 해야 하는 건가? 심지어 연봉도 많이 낮춰야 했다. 스타트업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낮게 시작하지만, 일본 대기업에게서 투자를 받게 약속되어 있으니 그때 높여준다고 하셨다.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본 A님은 또다시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졌다.


“그래서 말인데, 게임 아카데미에 가서 PSP 개발 교육 좀 받아요.”

“어? 그거 아무나 받을 수 있어요? 가격도 비싸다던데?”

“우리 PSP 게임 만들건대, 당연히 배워야지. 회사 돈으로 시켜 줄게.”

그렇게 나는 기획자 겸 프로그래머로 세 번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아침에는 회사가 아닌 학원으로 출근했고, 학원 수업이 끝나면 사무실에 잠깐 들러서 복습을 하고 가끔은 대표님과 저녁 식사를 했다. 학원에서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묘하게 기획자가 끼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동기들도 강사님들도 모르는 부분을 잘 챙겨 주셔서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당시에 가르쳐주신 털보 강사님은 서두에 내가 감탄했던 3D 슈팅 게임의 개발자이셨다. 아무튼, 혼자 복습하는 도중에 이전 회사에서 개발하던 1인칭 슈팅 게임을 3인칭으로 바꾸는 시도를 해보았다. 카메라가 이상하게 꼬이고 충돌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문제가 생긴 프로젝트를 들고 가서 강사님에게 질문했다. “1인칭 뷰로 개발한 프로젝트를 3인칭으로 전환했는데, 카메라가 꼬이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그 질문에서 시작한 답변은 일반적인 기술 이야기를 넘어 PSP의 구조적 한계에 메모리 이야기까지 번졌다.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PSP 개발 교육을 수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님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 일본과 이야기되던 투자가 결렬되었음을 알리셨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들어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A님은 미안해하셨지만, 사실은 내가 더 미안했다. 결국 회사 돈으로 개발 교육을 받았으니 나 혼자만 많은 것을 얻어가는 셈이었다. 돈을 안 받아도 괜찮으니 개발을 해보자는 말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콘솔 게임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전 회사에서 무급으로 일하며 겪은 경험을 한번 더 반복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A님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분에게는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다. 이렇게 콘솔 게임 개발의 꿈은 멀어졌다.

“애초에 1인칭 뷰로 개발할 때 생각을 잘못하신 것 같습니다. 1인칭 뷰와 3인칭 뷰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만약 시점을 전환하는 시스템을 생각하신다면 또 다른 구조로 구성해야 합니다. 카메라를 억지로 잡아당길 때 꼬이는 문제는 제 예상에는 아마…”



내가 하는 답변은 털보 강사님의 것과는 달랐다. 시대가 지났고, 개발 툴도 달라졌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회사 경험이 없었다면 내가 시스템 기획자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프로그램을 짜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디렉터가 될 수 있었을까? 결국 모든 순간은 현재에 도달하는 계단의 한 칸이 아닐까? 사무실보다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회사였지만, 나를 또 한 번 성장시켜 준 고마운 곳이었다. 요즘도 종종 만나는 A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마이즈 씨는 대체 언제 터지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어쩌면 영원히 안 터지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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