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즈 Nov 21. 2024

록맨과 공략왕

힘든 순간에 좌절하지 않는 이유

열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친구의 집에 모였다. 커다란 거실 TV에 빨간 게임기 한 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화면을 보며 앉아있었고 그 앞에 친구의 어머니가 깎아주신 과일이 놓여 있었다. 게임기에 네모난 팩을 꽂고 전원을 넣었다. 친구가 뒤로 빠짐과 동시에 내가 TV 앞으로 나아갔다. 바닥에 앉아 게임 컨트롤러를 손에 쥐었다. 땀이 흥건했다. 뒤에서 아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응원을 했다. 친구의 어머니도 뒤에 서서 지켜보고 계셨다. 이 거실 안의 모든 사람이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게임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시작은 학교에서였다. 게임 이야기를 하던 중 파란색 소년 로봇이 나쁜 로봇들과 싸우는 신작 이야기가 나왔다. 너무 어려운 게임이라는 말에 나를 두고 아이들끼리 설전이 벌어졌다. 내가 반에서 게임을 가장 잘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쟤는 깰 수 있어!”

“아니, 아무리 잘해도 그 게임만큼은 힘들걸?”


아이들은 두 패로 나뉘어 투닥거렸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깰 자신은 없었다. 게임 매장에서 한 판 해봤는데, 파란 로봇 게임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게임이었다. 나의 의사는 묻지 않은채, 친구들은 내기를 걸었다. 내가 깰수 있을지 없을지. 게임을 한번도 해본적 없다는 거짓말에 친구는 팩을 빌려 주기로 했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처음 하는 게임을 깰 수는 없겠지!라고 하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엄청 잘난척을 했다. 이 게임은 캡콤의 명작, 록맨 1편 이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록맨. 나는 친구들 앞에서 록맨이 되었다.

게임팩을 받아들고 집에 가서 밤새 연습 했다. 당연히 친구들에게는 비밀이었다. 밤이면 자는 척을 하다가 새벽 녘에 슬쩍 게임기를 들고 TV 앞으로 갔다. 창 밖으로 해가 떠오르면 다시 조용히 게임기를 들고 방에 가서 잠을 잤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한 두시간만 자면서 연습 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었다. 처음에는 두어명이었던 내기 인원이 점점 늘어났다. 초등학생들인데 심지어 돈까지 걸었다. 내 배당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앞에도 말했듯이 나에게도 이 게임은 도박이었다. 당시에는 저장은 커녕 패스워드의 개념도 없었다. 죽으면 처음부터였다. 따라서 친구들과의 내기 역시 한번에 끝까지 깨느냐 못깨느냐였다. 집에서 연습하면서 한번 다 깨기는 했지만, 자칫 한번만 실수해도 이 내기는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놈이랑 싸울 무렵에는 손에 땀이 흥건했다.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질까봐 계속 옷에 손을 문질렀던 기억이 난다.

초반에는 응원한답시고 친구들이 뒤에서 시끄럽게 굴었지만, 스테이지가 진행될 수록 조용해졌다. 이래서는 죽어도 누굴 탓할 수 없다. 니가 시끄럽게 해서 죽었잖아! 같은 변명이 막혀버린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점프해서 가시 밭 길을 지나갈 때는 마음 속으로 빌었다. 제발 한 마디라도 해! 이 많은 아이들이 조용히 집중해서인지 친구 어머니 마저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록맨 그 자체였다. 내 손 끝의 감각에 세계 평화가 달려있었다.

록버스터의 마지막 한 발이 닥터 와이리에게 명중하는 순간,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다.

신중하게 진행하다보니 어느덧 3시간이 다 되어갔다. 화면 속 록맨은 닥터 와이리와 마지막 결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 순간 만큼은 못 깰거라고 걸었던 아이들마저  편이었다. 내기에 좀 지면 어떠랴, 용돈 좀 뺏기면 어떠랴, 그보다 닥터 와이리의 세계 정복 야망이 좌절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순간 우리는 모두 한 마음이었다. 록버스터의 마지막 한발이 닥터 와이리에게 명중하는 순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튕겨져 나간 닥터 와이리는 꾸벅꾸벅 엎드려 빌었고 나는 긴장이 풀려 반쯤 무너졌다. 그 날 이후 한동안 나는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다. 이 날의 록맨 플레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무용담처럼 전해졌고, 덕분에 다른 중학교의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다. 모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었다. 어려운 게임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은 나를 찾았고, 나는 수많은 세계를 구해내는데 일조했다.

나중에 록맨2도 공략쇼(?)를 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록맨3는 못깨는 친구들이 없어서 그 이후로는 안했지만.

친구들이 들고오는 어려운 게임의 범주는 다양했다. 컨트롤이 어려운 형태도 있었고, 패턴을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어떻게든 공략하려고 노력했다. 그 것이 친구들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마계촌이라는 게임을 가져왔을 때에는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해야했다. 영웅이 되는 것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보다 게임을 더 잘하는 친구가 나타나면 공략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산 속으로 은거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찾아오겠지? 이 게임이 너무 어려워요. 하면서.

마계촌을 깨달라며 들고올 때는 진심으로 미치는 줄 알았다. 이걸 어떻게 깨라고?!

문제는 RPG가 등장하면서 부터였다. 게임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컨트롤도 패턴도 아닌 일본어였다. 아니, 아무리 어떻게하는지 모르겠다고 해도 게임 속 일본어를 물어보는게 말이 되는가? 친구들에게는 말이 되는 상황이었나보다. 결국 나는 일본어 사전을 샀다. 그리고 친구들이 세계를 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카타카나를 간신히 읽는 수준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결이 가능했다.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했던 첫 게임은 평범한 JRPG가 아닌 세인트세이야 였다.

당시의 게이머들은 신기했다. 게임 속에서 한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세계를 구하려면 그 세계의 언어를 알아야만 했다.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데, 그 시대의 아이들은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그 많은 게임들을 했던 걸까? 게임이 진행되지 않으면 무슨 대사인지도 모르면서 모든 캐릭터에게 말을 걸었고 상점에서 파는 모든 아이템을 구매했다. 그러다보면 또 게임이 진행되고는 했다. 한단계 한단계 진행되어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화제거리였다. 쟤한테 말걸고 저기를 조사하면 비밀통로가 열려! 무슨 내용인지는 나도 몰라~

나의 인생게임 드래곤퀘스트5 역시 배운 적도 없는 일본어로 플레이 했었다.

이렇게 게임을 하던 습관 때문일까? 삶에서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좌절하기 보다 극복하려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겪은 게임의 강력한 효용이다. 반면, 요즘은 스스로 극복하기 보다 해법을 찾고 배우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쉽게 공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성향도 변하게 된 것 아닐까? 어느 쪽이든 어렵더라도 극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게임을 통해 학습되는 것 같다. 나는 게이머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게이머다. 따라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나갈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전 10화 등단을 축하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