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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즈 Nov 19. 2024

등단을 축하합니다?

등단 팔이에 잠시 설레었던 어느 날.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다. 열대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 보지만, 그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탓이다. 그날도 어떻게든 자려고 버티다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스팸 메일을 지우는 것은 기상 루틴이었기 때문에 아무 감흥 없이 메일함에 들어갔다. 하나 둘 셋넷… 밤 사이에 16통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한 번에 지우기 위해 메일 앞에 체크 박스를 하나하나 터치했다. 매일 하던 단순 반복 작업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등단을 축하합니다.’

등단? 뭐지 싶어서 메일을 열었다. 서두에는 신인상 당선을 축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무슨 신인상? 생각을 더듬었다. 그리고 보니 최근 두 달간 대 여섯 군데 공모전에 출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운영하는 자기 계발 모임에서는 매달 액션 플랜이라는 것을 한다. 스스로 규칙을 정해서 행동하는 것인데, 내가 정한 최근 액션 플랜 중 하나가 ‘공모전 출품하기’였다. 확인을 위해 새 창을 열고 공고 페이지를 열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출품 조건 : 인터넷을 포함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직접 작성한 글.]


빠르게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비공개로 바꿨다. 공모전에 출품하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업로드해 둔 글이었다. 어차피 당선될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다시 창을 전환해서 메일을 마저 읽었다. 등단자에 대한 혜택 사항이 나열되어 있었다. 상을 받게 되고 무슨 행사에 초청이 되고, 문예지에 작품 수록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등단 소감과 사진을 며칠까지 보내달라. 신인상 당선작이 실린 책은 언제 출간 예정이라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뭐지? 정말인가? 이게 된다고?

'선생님은 등단 작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 전, 게임 시나리오 수업 시간에 학생 하나가 질문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답했다. 문학 쪽으로 본다면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 시나리오와는 결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등단 작가라면 오히려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글을 쓰기 더 힘들 수도 있다. 웹소설 작가가 게임 시나리오를 쓰기 힘든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지도 모른다. 만약 순문학 형태의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면 당분간 그만두는 것이 좋다. 학생은 마상을 입었다고 답했다. 몇 년 동안 등단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현타가 온다고 했다. 역시 그만두는 게 좋겠죠? 그 말에 답변이 조심스러워졌다. 나도 등단을 해본 적이 없으니 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일단 게임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동안은 문학 스타일의 글쓰기는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학생이 몇 달만 더 늦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내 답변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등단을 경험해 본 입장이라고 하면 나의 답변이 조금 더 신뢰가 생겼을 테니까. 작가라고 나를 소개하자 언제 등단했냐고 물었던 어느 교수도 떠올랐다. 관악산 등산을 하던 중이었지. 등단 작가가 아니라고 하니 그럼 진짜 작가는 아니네요?라는 말을 했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웃어넘겼던 상황이었다. 이제는 그런 분들에게도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잠시 기쁨의 여운을 즐기다가 들뜬 마음으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하던 그녀가 질문했다.

“돈 내는 거 아니야?”


조금 전까지 들떠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며 다시 메일을 열었다. 마지막에 두 줄이 더 있었다. 30만 원을 다음 계좌로 입금해 주세요. 그 아래로 금액 사용처가 적혀 있었는데, 내 글이 실린 문예지 20권을 구매하는 가격이라고 한다. 뭐, 등단한다면 주변에 책을 돌리기 위해 그 정도는 살 것 같으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검색해 보니 책의 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일부 문예지가 등단 장사를 한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도 떠올랐다. 등단 비용, 등단 장사, 등단 사기 등. 키워드를 바꿔가며 검색을 했다. 보통은 80만 원 정도. 비싼 곳은 200만 원까지도 요구한단다. 그렇다면 30만 원이라는 금액은 사기가 아닌 걸까? 혼란스러웠다. 나의 글을 인정받은 것이 맞다면 감사의 의미로 돈 몇 십만 원 정도 쓰는 것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장사를 위해서 기준 미달의 글을 돈으로 등단시키는 것이라면 작가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이 아닌가. 이번에는 해당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님들을 찾아보았다. 시인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검색에 걸리는 분이 없었다. 만약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님이 몇 분 계셨더라면 달랐을까? 그렇게 역사가 오래된 문예지인데, 이렇게까지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인 걸까? 마음이 반쯤 떠났지만, 그럼에도 미련이 남았다. 다른 등단 장사처럼 100만 원 200만 원도 아니고 고작 30만 원이잖아. 등단한다면 어차피 구매할 책 값보다도 저렴하잖아. 아무나 상을 주는 것은 아닐 거야. 그래도 공모전인데 글을 제출한 사람이 나 하나뿐일 리는 없잖아. 모든 지원자에게 상을 주고 지면을 내어주고 등단시킨다고? 그건 불가능한 게 당연하잖아.

“그럼 이제 다른 공모전은 못 내겠네?”


여자 친구의 목소리는 나의 의식을 현실로 거칠게 끌고 들어왔다. 공모전 중 상당수는 등단 작가의 출품을 제한한다. 당연하다. 그건 공정하지 못하니까. 따라서 등단을 한다면 공모전을 통한 새로운 기회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원하는가? 게다가 등단은 평생 단 한 번만 하는 것인데, 이렇게 고민하면서 선택하는 것이 맞는 걸까?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짜증이 났다. 일단 생각을 멈추고 몇몇 지인에게 상담 메시지를 보내 두었다. 이미 마음은 정했지만, 치우치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나 그냥 안 하려고.”


그날 저녁, 여자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안 하는 게 낫다. 결과가 나쁘다면 역시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스스로를 탓할 것이다. 반대로 결과가 좋더라도 찝찝함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기 때문에 걱정을 놓지 못하게 된다. 깔끔하게, 누가 보더라도 명확한 곳에서 나도 기분 좋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는 제대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마음을 정하고 나서 다시 내가 쓴 글을 읽어보니 엉망이었다. 이런 글로 신인상에 등단이라고? 미래에 이불 킥할 거리가 생길 뻔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등단이라는 단어는 나의 목표나 삶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미래 계획에 한 가지 가능성으로 끼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맞이하고 싶으니까. 고민 없이 선택하고 싶으니까. 뿌듯한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하는 미래의 나를 떠올려본다.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있겠지?


"등단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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