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거운 요리생활: 쉽고 특별한 군것질 초콜릿 크런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가 이 새로운 음료(초콜릿)를 받아들인 반면, 영국은 그런 열망에서 뒤처졌습니다. 1579년에 영국 해적들이 스페인에서 온 코코아 콩을 압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카카오 콩을 양의 똥이라고 생각하고 그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자메이카와 카카오 농장을 빼앗은 1655년이 되어서야 초콜릿을 마시는 습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영국인들은 초콜릿을 물이나 우유, 설탕, 달걀노른자 혹은 브랜디나 sack(셰리의 일종)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또한 컵이 아닌 작은 접시에 마셨습니다. 그 당시의 다른 인기 음료였던 차처럼요.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동력을 이용했습니다. 질병과 지역 주민에 대한 학대는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7세기말까지 아메리카 원주민의 10%만이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해결책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를 수입하여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이 '삼방 무역' 시스템의 일환으로 카리브해와 아메리카로 운송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 화물은 판매되고 카카오 콩과 면화와 같은 원자재와 교환되었으며, 이 원자재는 유럽으로 다시 운송되어 해당 산업에서 초콜릿과 직물로 가공되었습니다.
원래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 발견된 크리올로 품종보다 품질은 낮지만 생산성이 더 높은 카카오 콩인 포라스테로 카카오가 에콰도르에서 발견되면서 초콜릿 생산 방식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노예화된 노동력과 더 높은 수확량 덕분에 초콜릿을 더 비용적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설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세기 초에 포르투갈은 포라스 테로 가지를 아프리카 식민지로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에 카카오 농장은 나이지리아, 골드 코스트, 코트디부아르에 널리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세계 카카오콩의 대부분이 아메리카 대륙의 강제 노동의 대부분이 공급된 아프리카 국가에서 재배된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Fry & Sons는 수년 동안 노동자들이 견뎌낸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의하여 포르투갈 서아프리카 농장에서 생산된 카카오콩을 보이콧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