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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드맥스 Sep 21. 2024

초콜릿 크런치 스퀘어

- 즐거운 요리생활: 쉽고 특별한 군것질 초콜릿 크런치

완성분량     약 16조각 (18cm 트레이)

준비시간     20분

기다리는 시간    냉장고에서 2시간 정도

재료    버터 110g/ 골든시럽 1 tbsp/ 핫초코 파우더 20ml (코코아 파우더로 대체 가능)/ 다이제스티브 비스킷 16개 (226g) / 쿠킹 초콜릿 170g (무가당 초콜릿)


계량용어: 큰술=테이블스푼 (15ml)/ 작은술=티스푼 (5ml)


1    다이제스티브 비스킷을 지퍼백에 넣고 공기를 뺀 후 밀봉하여 롤링핀이나 병으로 부스러기를 만들어 준다. 너무 고운 가루로 만들 필요는 없고 살짝 식감이 있는 정도로 부순다.


2    버터를 소스팬에 넣고 가장 약한 불에서 녹이고 불을 끈 후, 핫초코 파우더와 골든시럽을 추가하여 잘 섞는다.


3    소스팬에 비스킷 부스러기를 추가하여 모두 완전히 섞는다.


4    약 3cm 깊이의 18cm 사각형 트레이에 베이킹 페이퍼를 옆면까지 올라오게 깔아주고 비스킷 부스러기를 넣는다. 비스킷 부스러기를 균등하게 펴고 숟가락 뒷면을 이용하여 꾹꾹 눌러 단단한 베이스를 만들어 준다. (모서리나 가장자리 부분도 신경 써서 잘 눌러 준다.)


5    소스펜에 요리용 초콜릿을 잘게 부숴 넣고 가장 약한 불에서 잘 저어 주며 녹인다.


6    비스킷 베이스 위에 요리용 초콜릿을 붓고, 윗면을 스파출라로 평평하게 정리한다.


7    초콜릿이 식으면 냉장고에 넣고 베이스가 굳을 때까지 2시간 정도 기다린다. 딱딱해지면 긴 칼을 써서 약 3cm 사이즈로 자른다.





골든시럽이 없다면, 버터를 녹일 때 황설탕 40g을 추가하는 것으로 대체해도 괜찮다. 요리용 초콜릿을 녹일 땐 작게 쪼개서 천천히 녹여줘야 초콜릿 덩어리가 생기지 않는다. 나는 두 배 분량의 재료로 다크 초콜릿과 밀크 초콜릿을 반씩 넣고 20x30 cm 사이즈 오븐 트레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베이스를 단단히 굳힌 후에는 큰 칼로 비스킷 부분까지 부서지지 않게 조심해서 잘라야 한다. 보관할 때는 사용했던 베이킹 페이퍼를 컨테이너 크기에 맞춰 잘라서 한 줄에 한 장씩 깔아주면 꺼내 먹을 때 달라붙지 않아 좋다.


우리 집은 주로 초콜릿 크런치 스퀘어를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든다. 겨울이니까 냉장고에 넣을 필요 없이 실온에 하루 저녁 굳혀서 크리스마스에 후식으로 먹는다. 아무래도 초콜릿은 냉장고에 들어가면 텍스쳐가 변하니까 실온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하지만 더운 여름에 만든다면 냉장고가 해결책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년에 초콜릿 크런치를 만들고 예쁘게 포장해서 사촌집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져갔었는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 맛이 없을 수도, 만들기를 실패할 수도 없는 레시피여서 정성이 들어간 선물로 준비하기 좋다. 부담 없이 도전해 보시길 추천한다.


초콜릿 크런치 스퀘어는 전통적인 음식이 아니어서 딱히 그 자체의 역사가 없다. 그 이름 역시 나의 초코쟁이 동거인이 어릴 적에 할머니와 함께 베이킹을 하며 같이 만든 이름들 중 하나라고 한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어 우리 집에선 크리스마스에 먹는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국에선, 아이들이 4번째 생일을 맞은 후인 9월부터 풀타임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남편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취학 전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냈다. 할아버지와는 주로 DIY나 가드닝을 했고, 할머니와는 베이킹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가 할머니에게 배웠던 것처럼 할머니의 레시피들로 나에게 베이킹을 가르쳐주고 있다. 앨범 속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뭔가를 하고 있는 행복한 꼬마버전의 남편이 사진으로 많이 남아있다. 조부모님과의 추억이 많은 그는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다.




초콜릿의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콜릿을 처음 마신 시기는 불분명 하지만 메소 아메리카 사람들이 카카오 씨앗 주변의 펄프를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성 음료를 마셨다는 증거가 있다. 그때 카카오는 신의 선물로 여겨졌고 돈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례나 약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카카오 콩이 그렇게나 탐내던 금이 아니라 지역 통화라는 사실을 콜럼버스가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실망스러웠을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훗날 유럽인들은 이 콩이 얼마나 귀중하고 맛있는 열매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샘 빌튼은 '초콜릿의 역사'라는 아티클에서 초콜릿과 관련된 문화나 역사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가 이 새로운 음료(초콜릿)를 받아들인 반면, 영국은 그런 열망에서 뒤처졌습니다. 1579년에 영국 해적들이 스페인에서 온 코코아 콩을 압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카카오 콩을 양의 똥이라고 생각하고 그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습니다. 영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자메이카와 카카오 농장을 빼앗은 1655년이 되어서야 초콜릿을 마시는 습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영국인들은 초콜릿을 물이나 우유, 설탕, 달걀노른자 혹은 브랜디나 sack(셰리의 일종)을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또한 컵이 아닌 작은 접시에 마셨습니다. 그 당시의 다른 인기 음료였던 차처럼요.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동력을 이용했습니다. 질병과 지역 주민에 대한 학대는 원주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7세기말까지 아메리카 원주민의 10%만이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해결책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를 수입하여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이 '삼방 무역' 시스템의 일환으로 카리브해와 아메리카로 운송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 화물은 판매되고 카카오 콩과 면화와 같은 원자재와 교환되었으며, 이 원자재는 유럽으로 다시 운송되어 해당 산업에서 초콜릿과 직물로 가공되었습니다.

원래 멕시코와 과테말라에서 발견된 크리올로 품종보다 품질은 낮지만 생산성이 더 높은 카카오 콩인 포라스테로 카카오가 에콰도르에서 발견되면서 초콜릿 생산 방식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노예화된 노동력과 더 높은 수확량 덕분에 초콜릿을 더 비용적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설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세기 초에 포르투갈은 포라스 테로 가지를 아프리카 식민지로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에 카카오 농장은 나이지리아, 골드 코스트, 코트디부아르에 널리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세계 카카오콩의 대부분이 아메리카 대륙의 강제 노동의 대부분이 공급된 아프리카 국가에서 재배된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Fry & Sons는 수년 동안 노동자들이 견뎌낸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의하여 포르투갈 서아프리카 농장에서 생산된 카카오콩을 보이콧했습니다.


출처: 샘 빌튼-초콜릿의 역사, Wikipedia-History of chocolate




 레시피들은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영어로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영국 음식에 관심이 있는 분, 한국어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잉글리시 스피커라면 목차를 확인하시고 원하는 버전을 읽어주세요.


My recipes are published in both Korean and English. Korean speakers who are interested in British food or writing in English, or English speakers who are interested in the Korean language, please check the contents list and choose the version you pre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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