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렸다. 여름비는 무더위를 식혀주기는 하지만, 비 내린 뒤 집안 구석구석 배어드는 습기와 꿉꿉한 냄새를 생각하면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그래도 이 비를 낭만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바로 창문을 열어놓고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을 듣는 것. 혼자 집에 있을 때 갑자기 비가 내리면 나는 창문을 열고 이 노래를 틀어 본다. 그리고 조용히 나뭇잎을 적시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https://youtu.be/cOq-vCErjIU?si=Xcf3QKYzjE1Tfcsr
이문세의 노래 중 많은 곡들은 가을 혹은 겨울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비 오는 여름날을 떠올리는 건, 아마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 때문일 것이다. 극 중 서민정 선생이 빈 교실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다. 세찬 빗줄기 너머에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 그녀의 모습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아마 친한 친구의 전 남편과 연인이 되어 겪게 되는 가슴 아픈 고민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간 피할 수 없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겠지만, 쏟아지는 비의 장막이 그것들을 잠시나마 몰아내 준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에서 '사랑이 지나가면'은 마치 삽입곡이 아니라 장면의 일부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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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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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서민정과 최민용은 사랑하지만 결국 이별을 택한다. 그리고 서민정은 다른 학교로 떠난다. 시간이 흘러 비 오는 어느 날, 그녀는 수업을 하다 창 밖에 우산을 들고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최민용을 발견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사랑은 지나갔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그 이야기와 노래.
그래서 비 오는 날 창문을 열고 이 노래를 가만히 틀어 놓으면 내가 마치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그리고 그리워해 본 적 없는 이를 그리워해 보고 싶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정말 비의 장막은, 내게서 고민들을 잠시나마 씻어내 준다. 낭만만이 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