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Try to remember
9월 1일이다.
광복절과 처서를 지나며 곧 가을이 오겠구나, 여러 번 되뇌었다. 하지만 땀이 뚝뚝 떨어지는 더위가 이어지면서, 아직 여름이 다하지 않았음을 여러 번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9월이니까, 이제는 더워도 '더운 가을'인 것이지 아직 여름이 가지 않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김신지 작가님의 에세이 「제철 행복」에서는 절기별로 달라지는 소소한 일상 풍경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각 절기마다 하고 싶은 소중한 일들을 소개한다.
나는 그분처럼 세세하게 절기로 나누지는 못해도, 9월이 되면 꼭 가을맞이를 하듯 하는 일들이 몇 개 있다. 그것 중 하나가 가을 음악을 듣는 것. 올해 가을을 여는 곡은 여명이 부른 Try to remember이다.
https://youtu.be/uOvXDWBzGPg?si=XIBqcf-pXJJSiImq
음악이 가진 힘이란 참 신비하다. 음악은 살결에 닿는 공기를 금세 달라지게 만든다. Try to remember가 시작되면, 전주는 금세 따사로운 햇살 아래 황금벼가 익어 가는 너른 논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 한가운데 서 있으면 내 어깨를 가만히 감싸는 연인의 손길처럼 여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나 이 곡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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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러브 어페어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참 애절한 사랑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사랑을 계절로 비유하면 마치 여름과 겨울 같다. 뜨겁게 사랑하고, 차가운 시련을 겪고, 또다시 서로의 사랑을 뜨겁게 확인하는 그런 사랑.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연인, 그리고 부부가 되어 함께 하는 평생의 시간 중 여름과 겨울은 그리 길지 않다. 대부분 미지근하든지 서늘하든지, 특별히 계절감을 느낄 수 없는 날들의 지속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마음을 델 염려도 없고 차가운 시련도 없는 사랑이란. 며칠 전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나란히 누워 사소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한참을 보냈다. 목적도 없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서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이라니. 피곤해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다니. 새삼 이 사랑에 감사함을 느꼈다.
사랑한 지 10년이 되어 가는 우리는 지금 가을에 있다. 눈을 감고 Try to remember를 들으면 느껴지는, 어깨를 감싸는 연인의 손길. 그 손길에 뒤를 돌아보면 사랑하는 나의 남편이 가을 햇살처럼 웃으며 서 있다. 수수한 풍경, 바람이 지나가는 수수한 소리, 따뜻함. 이 계절에 평생을 살고 싶다. Try to remember가 주는 느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