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나는 사라지고

Françoise Hardy - L'amour dun garçon

by 갈매나무





친구와 버킷리스트를 공유한 적이 있다. 친구는 영화 한 편을 골라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3일을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매력적인 버킷리스트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꼭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그것은 언젠가 해 보고 싶은 일로만 남아 있다. 말투부터 표정, 옷차림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 나로 하루를 살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대안은 있다. 음악을 듣는 것.



우리의 모습, 그러니까 한국인의 전형과 전혀 다른 모습을 상상하면 프랑스 사람들이 떠오른다. 프랑스 사람과 대화를 해 본 적은 한 번밖에 없어서 잘 모르지만, 아무튼 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눈빛, 표정, 자유분방함과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까지.



내게 있어 프랑스의 가수인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의 목소리는 그 이질감의 집약체와도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히 서정적인 것 이상으로 쓸쓸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지만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난 그 느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목소리에 빠져들 뿐.




https://youtu.be/aDM2BRlGk14?si=yfdJfmRPD31ZpuTN




L'amour dun garçon(한 소년의 사랑)의 노래에는 그 느낌이 잘 살아 있다.



곡이 시작되면 세상 모든 색은 저마다의 선명함을 잃고 잿빛으로 남는다. 낙엽이 바람에 굴러가는 쌀쌀한 가을날, 한 여인이 길을 걷고 있다. 여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목적지 없이 그저 걷던 여인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벤치에 걸터앉는다. 머릿속에는 지난날들이 뒤엉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여인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동자가 깊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는 바람이 불어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이내 담배를 눌러 끄고 여인은 벤치를 뜬다. 노래가 끝나가면, 여인도 잿빛 배경이 되어 사라진다.



여인을 떠올리듯 나를 생각해 본다. 여인과 달리 나는 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뭐가 그렇게 급한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지인들이 종종거리는 발소리로 날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난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에 의해서 그런 모습인 게 아니고, 그것이 천성이라면 천성일 것이니 이 모습을 굳이 바꾸기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속도에 숨이 찰 때면 잠시 쉬어갈 시간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면 이 노래를 듣는다. 그러면 잠시나마 빠르게 걷는 내 모습은 사라지고 나는 그 여인이 되어 목적 없이 천천히 길을 걷는다. 것으로 족하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