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막 특경부 공식 커플(6)

불의 나비 37화

by 매화연

진우가 침대에 앉아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벗은 옷은 침대에 무심히 던져두고 살며시 지은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보았다.


근육이 선명히 보이는 몸. 왼쪽 어깨부터 시작해서 팔의 상처까지에 좀 너덜너덜해진 붕대가 대충 감싸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은 뚜렷한 복근으로 향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누나 혹시……?”


진우는 부끄럽다는 듯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당황함에 그만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뭐, 뭐래!”


“나 아직 말 다 안 했는데.”


능청스러운 웃음과 함께 진우의 장난은 막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누나? 이번에 처음 본 것도 아니면서.”


“저번에도 붕대 갈아준다고 잠시 본 거잖아!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듣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내 반응에 재밌다는 듯 진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좀!”


나는 진우의 오른쪽 어깨를 툭 때렸다.


“아야.”


“서진우 너 진짜……!”


“하하하, 알았어. 그만할게.”


내 어깨를 살짝 톡 치며 진우가 말했다. 스쳐 지나간 찰나의 손길에 또다시 머리가 웅 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느낌이지…….


애써 울림을 무시한 채 진우의 몸에 원래 감겨 있던 붕대를 살살 풀었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진우의 체온과 함께 아직도 선명한 상처가 서서히 드러났다. 다행히도 속성의 힘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아직도 상처가 다 안 나았네.”


진우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상처를 확인했다. 많이 아물긴 했으나 꿰면 상처가 여전히 선명하였다.


“이 정도면 뭐 거의 다 나은 거지.”


“다 낮긴 무슨. 실밥도 안 풀었으면서. 해 속성 치료 한 번이면 안 꿰매고 바로 나았을 텐데.”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상처에 가슴 한 곳이 욱신거렸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아, 귀찮아~”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 친구 아니랄까 봐 이도헌이랑 아주 똑같네, 똑같아.”


귀찮다는 둥 속성은 제거돼서 괜찮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진우는 끝내 더 이상의 해 속성 치료를 하지 않았다. 엄마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해 속성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진우가 자기 몸 좀 더 잘 살폈으면 좋겠다고.


해 속성의 치료를 받으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부작용이 아예 없으나 사람에 따라 작은 부작용부터 꽤 큰 부작용까지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다.


진우의 경우 상처의 크기와 속성의 힘이 커서 한 번에 치료를 끝내면 혹여나 진우 몸에 무리가 가 부작용이 생길 조금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안전하게 한 번은 속성 제거 치료, 한 번은 상처 치료, 총 두 번에 걸쳐서 치료를 진행한다 하셨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엄마한테 한 번에 다 치료해 달라고 할 걸 그랬어.


“그리고 이담이 이모 현 의학 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상처나 병은 절대 해 속성 사용 안 하시잖아. 속성으로 인한 상처랑 정말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병만 환자분 취침할 때 몰래 해 속성으로 치료하시고.”


“너는 속성으로 인한 상처였잖아.”


“속성 다 제거됐으니 그냥 상처니까~”


속성으로 인해 생긴 상처면 속성 제거 후 남은 일반 상처까지 치료해 주신다는 걸 잘 알면서.


“이러다 흉 지겠다.”


“흉 좀 지지, 뭐.”


“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맨날 나만 속상하지, 나만. 다들 자기 몸 좀 소중히 다루는 법도 알아야 할 텐데.


“흉터 따위 누나가 나중에 해 속성으로 지워주면 되잖아. 안 그래?”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옆으로 기울이는 진우가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조금은 허무맹랑한 말에 잠시 진우를 응시하다 결국 피식,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래, 내가 해 속성으로 네 흉터 먼저 치료해 줄게!”


어쩌면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순간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겁도 없이 훗날을 기약했다.


기존의 붕대를 대충 정리해 잠시 옆에 두고 조심스럽게 다시 새로운 붕대를 감아주었다. 상처에 새로운 붕대가 닿자 겨우 잠재웠던 통증이 일어난 듯 진우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아파?”


“아, 아니. 괜찮아.”


나와 눈을 맞추며 진우가 웃었다. 또 저 웃음……. 나는 진우의 눈을 피하며 빠르게 붕대를 감았다.


“다 됐어. 아직 상처 안 나았으니까 어깨 많이 사용하지 말고. 되도록 오른팔 자체를 안 쓰는 게 좋아. 상처가 더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치료를 끝마치고 붕대를 정리해서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리던 때였다. 그만 헛디딘 발에 몸이 휘청거리고 말았다.


“누나!”


나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 쿵, 작게 소리가 들린 뒤 질끈 감고 있던 슬며시 눈을 떴다.


“괜찮아?”


눈을 크게 연신 깜박이다 문득 정신이 들어왔다. 오른손은 내 머리에, 왼쪽 팔꿈치는 바닥에 댄 채 진우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이거, 어째 진우가 날 덮친 듯한 자세가 되었는데. 얘는 인지를 못 하고 있는 건가.


가까운 거리에서 적나라하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서로의 숨소리와 요동치는 심장 박동 소리가 섞였다. 순식간에 더워지는 주위의 공기가 간지럽고 조금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르면서도 무심결에 생각난 그때의 기억에 그만 자연스레 나오는 웃음을 그대로 내보내고 말았다.


“누나?”


걱정이 서려 있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진우가 지금 상황을 뒤늦게서야 파악했는지 그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며 다급하게 일어나려고 하는 진우의 볼을 두 손으로 잡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그때 생각난다. 네가 나한테 고백했던 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양 볼이 늘어난 상태로 그 말을 들은 진우는 나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손을 놓으며 이어 말했다.


“그때가 삼 년 전이었나? 본부에 우리 둘만 남아 있었을 때. 그날도 오늘처럼 난 넘어졌고 네가 머리를 받쳐둔 덕에 안 다쳤었지. 그래놓고 얼굴 잔뜩 빨개져서 나한테 하는 말이 좋아해, 였지?”


삼 년 전 진우의 모습과 지금 진우의 모습이 얼핏 겹쳐 보였다.


지금의 진우는 삼 년 전, 그때의 기억보다 훨씬 늠름해져 있었고, 앳되었던 티가 하나도 남지 않은 채 모습도, 행동도 확실히 어른스러워졌다.


“응, 그리고 처참히 차였지.”


진우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씁쓸히 웃었다.


“너 안 차였거든.”


나는 그날의 기억을 천천히 재생하였다.


내가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서 반했다고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계속 피하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진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뭐, 눈 못 마주치는 건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네.


“누나.”


깊은 눈동자가 그제야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헷갈리게 하지 마. 여지도 주지 말고. 괜히 오해하잖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진우가 쓸쓸히 말을 전하였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한 나머지 그때에는 생각해 보겠다며 진우의 고백을 미루고 외면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삼 년이나 걸렸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날들 동안 진우는 이미 마음 정리를 다 했을 테지. 당연히 염치없는 감정이다. 그렇게 무시해놓고 인제 와서 이런다니, 내가 생각해도 몰상식하고 무례한 짓이었다. 그렇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난 진우를,


“좋아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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