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막 특경부 공식 커플(完)
불의 나비 38화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주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뻔뻔하다는 거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뚝.
따스한 무언가가 내 볼에 떨어졌다. 힘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물방울에 당황하며 진우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왜 울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진우의 멍해진 두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 울지 마, 응? 내가 잘못했어. 누나가 미안해.”
더듬어 나오는 말이 겨우 문장을 이루어내었고 동시에 손을 뻗어 진우의 눈가를 조심스레 쓸었다.
“……좋아해.”
또다시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진우가 입을 열었다.
“좋아해, 누나. 내가 많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라는 단어를 연신 나열하는 진우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아려오는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대처할 수 없었다.
“미안해. 너무 늦게 말해줘서.”
손으로 진우의 볼을 살며시 감싸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 온기의 발상지는 맞닿은 볼이 아닌 진우의 미소였다.
언제나 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너의 웃음이 파도가 되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바다를 다시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꽃이 서서히 개화하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야, 서진우. 여기 있…….”
진우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나는 서둘러 바닥에 앉았다. 그러자 온통 흑색의 특경부 제복을 반듯하게 입고 있는 도헌의 모습이 보였다.
도헌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
실군단에 대한 중요한 보고서를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도저히 업무가 진행이 안 되어 보고서를 가지러 잠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 퇴근할 때 집에서 업무 보겠다고 가지고 가 놓고선 깜박하고 다시 들고 오지도 않고…… 하아, 요새 너무 정신이 없나.
집 앞에 도착해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고 현관문을 열자 현관에 크기가 꽤나 작은 신발 한 켤레가 있었다. 여자 신발인가? 근데, 우리 집에 여자 신발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함을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가니 식탁에 큰 종이가방과 먹다 남은 캔커피가 올려져 있었다. 종이 가방을 확인해 보니 안에 여러 가지 반찬들이 들어있었다. 엄마의 반찬이었다.
분명 집에 들어올 때쯤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를 듣고 진우가 거실에 나와 있어야 되는데, 어째선지 집안이 아무도 없는 마냥 조용했다. 어디 나가기라도 한 건가.
나는 진우를 찾으러 진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서진우?”
진우는 방에 없었다.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드레스룸에도 없었고 집 안 곳곳을 누벼봐도 그 어디에서도 진우를 찾을 수 없었다. 문득 혹시 내 방에 들어갔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실히 나갈 때 방문을 닫고 나갔던 것 같은데, 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는 데다 불도 켜져 있었다.
의아함을 품은 채 문을 벌컥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야 서진우, 여기 있…….”
안으로 들어가자 상의를 벗고 누군가를 덮치고 있는 듯한 모습인 진우의 등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저 자식은…… 기분 나쁘게 내 방에서 상의 탈의한 채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목소리에 진우는 급히 일어나 당황하며 나를 보았다. 무슨 일인지 진우의 눈시울 주위가 붉어져 있었다.
의연히 밑으로 내려간 시선이 진우와 똑같이 얼굴이 빨개져 있는 선아 누나에 덜컥 걸렸다.
순간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진짜로 정지된 건가?
“어, 저, 이도헌 그게…….”
도대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누나는 엄마 반찬을 가져다주려고 우리 집에 왔는데 온 김에 네 붕대를 갈아주다 누나가 발을 헛디뎌서…….”
일단 진우와 누나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내가 잘 이해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한데.
“아니, 애초에 왜 내 방에서 붕대를 갈고 있었던 건데?”
“네 방에 붕대가 있으니까…….”
나는 한숨을 깊게 쉬며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너 눈가는 왜 이렇게 빨개. 울기라도 했냐?”
“우, 울기는 누가 울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진우는 붉어져 있는 눈가를 애써 숨기려 고개를 옆으로 획 돌렸다.
“……사귀는 거지, 둘이?”
둘만의 세상 속 간지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며 부끄러워하는 두 사람……, 무조건 백 퍼센트지. 몹시도 심히 정말 짜증 나지만 눈치를 안 챌 래야 안 챌 수가 없었다.
내 말에 두 사람은 놀라며 서로 눈치만 봤다. 그리고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지는군.
“그래……, 알겠어.”
“괜찮은 거야……?”
진우가 나에게 시르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둘이 연애를 하든 말든 솔직히 내 알 바 아니다. 진우가 나쁜놈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고 오랫동안 누나를 좋아해 왔다는 것도 이미 알던 사실이었으니까. 한 번 고백했다 차였던 것도,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냥…… 둘이 그렇게 있었던 게 좀…… 하아.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예쁜 사랑…… 하든가 말든가.”
나는 그렇게 보고서를 챙겨 이미 핑크빛으로 물들어버린 집을 어서 빠져나와 다시 회사로 향했다.
두 사람이 연애하는 것을 본부에서 전혀 티 내지 않기에 아마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첫 커플이라는 곡해를 만들어서는 안 되겠지.
“야, 박인혁. 그거 아냐?”
인혁이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아니라 저기 저 두 사람이 특경부의 첫 커플이라는 거.”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가 고갯짓으로 가리키는 진우와 선아 누나에게로 주목되었다. 짧은 정적, 그 뒤로 곧장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음을 발생시키는 인혁과 쌍둥이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두 사람에게 다가가 와다다다다 쏟아내는 말로 두 사람을 쏘아붙였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지만, 뭐, 신경 쓸 필요 있나.
“오빠는 어떻게 알았어?”
인화가 내 곁으로 와 말했다.
“어쩌다 보니. 굳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야.”
나는 짧게 한숨을 쉰 뒤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인화의 말랑한 선홍빛 볼을 한 번 콕 찔렀다. 살며시 웃는 인화의 손을 살짝 만지작거리다 깍지를 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활기찬 인혁과 쌍둥이, 가까이 오는 인혁을 밀쳐 내는 진우, 그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선아 누나, 본부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띠는 이준 형, 시끌벅적한 소리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연희,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인화까지.
오늘도 본부는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