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1)

불의 나비 39화

by 매화연

이른 새벽빛을 머금은 햇살이 창문의 유리를 적셔 의연히 아침을 알렸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옷장에서 흐트러짐 하나 없는 정장을 오랜만에 꺼내 입고 넥타이를 반듯하게 맸다. 왁스로 앞머리의 반을 넘겨 머리를 정리하며 책상 위 보관함에 고고히 놓여져 있는 손목시계에 시선을 두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손목시계였다.


이곳저곳 몇십 군데를 비교해 가며 고심 끝에 겨우 선정하신 업체에 직접 디자인하신 도안을 맡겨 내 이름의 이니셜까지 새겨 넣은 시계. 스무 번째 생일날 받은 생일선물이다. 비록 그분에게 선물을 직접 받지는 못하였지만.


시계를 대신 전해주신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스물이 되는 나에게 주기 위해 사부가 자그마치 삼 년 동안 준비하셨다 하셨다. 몇억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 시계에서 사부의 손에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작은 보석 하나도. 예상일보다 몇 개월 일찍 완성된 시계를 겨울에 피어난 내 생일에 주기 위해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꼼꼼히 포장하여 보관하시다 결국 봄에 머무르게 되시어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받았다.


다행히도 아직 잘 작동하고 있었다. 햇빛을 온전히 받고 있는 다이아몬드도 빛을 잃지 않았다.


도저히 보관함에서 꺼낼 수 없어 오 년 동안 방에 조심히 보관만 해두고 있었다. 사부가 직접 디자인하시고 제작을 맡기신 시계였다. 보기만 해도 손이 떨려오는데 꺼내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그래도, 한 번은 사용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부가 주신 오직 단 하나의 시계인데 방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기나긴 망설임 끝에 시계를 꺼내 들었다. 차가운 온도가 손끝에서 퍼져 나갔다. 시계의 뒷면에는 내 이름, 이도헌을 뜻하는 ‘LDH’이라 각인되어 있었다.


하필, 사부의 서체였다.


하필.


왼쪽 손목에 시계를 찬 뒤 뜨겁게 달아오른 채 울렁거리는 그리움을 집어삼켰다. 습관처럼 꽉 진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방에서 나가려던 때, 문득 눈에 들어온 거울에 비친 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늘 입고 다니던 온통 검은 특경부 제복이 아닌 그저 일반 정장이라.


“조금, 어색한가.”


오늘은 속성 회의가 있는 날이다.


속성 회의는 협회장 집무실에 있는 회의실에서 각 속성의 대표님들이 그간 업무 내용을 보고하시고 또 여러 가지의 모든 업무와 문제점을 논의하시는 회의이다.


이번 회의의 참석 인원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특경부의 대표로서 특경부가 현재까지 알아낸 사부의 행방과 실군단에 대한 정보의 현황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어릴 적, 가끔 대표님들이 속성 회의를 하시는 모습을 구경하고는 했다. 항상 자리를 지키시던 사부의 무릎에 앉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들을 듣다 지루해하는 나를 사부가 발견하시면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신 채 과자를 건네주시고는 했다. 회의 도중에 나의 손을 잡으시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셔서 나와 놀아주시기도 하셨지.


사부의 자리가 공석인 속성 회의도 예전과 분위기가 다소 다르진 않을 거다. 속성 대표님 모두 아픔이 생기면 절대 겉으로 표하지 않으시고 홀로 앓으시니 말이다.


거울에서 시선을 거두고 거실로 나가자 방에서 어기적거리며 나오는 진우가 눈에 들어왔다. 잠에서 막 깼는지 비몽사몽한 모습이었다.


“뭐야, 웬 정장? 아, 오늘 속성 회의구나.”


진우는 크게 하품을 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몇 시간 잤어.”


“두 시간 정도.”


진우는 드레스룸에서 제복을 입고 나와 마저 넥타이를 매다 내 말에 즉시 뒤를 돌아 나를 노려보았다.


“자랑이다. 두 시간이 뭐냐, 두 시간이. 또 새벽까지 일하다 잤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런 건 또 귀신같이 잘 알기는.


“두 시간 동안 푹 자기는 했고?”


응, 이라고 대답하고 싶으나 했다가 바로 거짓말인 거 들통나서 잔소리가 두 배로 불어날 게 뻔하니…….


“……아니.”


“푹 못 자면 일찍 좀 자라, 어? 진짜 다들 얼마나 많이 걱정하고 있는지 아냐? 잠 안 와도 그냥 누워서 억지로 눈이라도 감고 있어. 일은 좀 그만하고. 왜 퇴근하고 집에서까지 일이야.”


마구 울려 퍼지는 잔소리에 슬쩍 진우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진우가 내 볼을 잡고 쭉 늘어트렸다.


“아.”


“일찍, 좀, 자라고.”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말하는 진우가 또다시 바쁘게 입을 움직였다. 귀에서 피가 날 듯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잔소리와 함께 출근 준비를 마친 뒤 우리는 집을 나섰다.



본부에 도착하자 우리보다 먼저 출근을 한 이준 형이 넋을 놓고 내 모습을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나는 형의 바로 옆 의자에 앉고는 목소리를 꺼냈다.


“그냥,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나는 살짝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옛날 생각?”


“너 정작 처음 입었을 때 말이야. 분명 그때는 어린 티가 많이 났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어~”


형은 내 볼을 꾹 누르며 말했다.


처음 정장을 입었을 때가 언제였더라. 아 그래, 사부가 사라지시고 난 직후였다. 속성 회의에서 속성 대표님들에게 그날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고할 때.


한껏 망가져 버린 모습으로 겨우 말을 이어갔던 그때의 치열한 기억이 다시 재생되었다.


“쌍둥이는 학교 갔어?”


“응.”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말을 길게 이을 수 없었고, 눈물이 앞을 흐려 고개를 들 수 없었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낄 수 없었다. 단어 선택과 문장 구사가 유연했었는지, 아니 그 당시 내 목소리가 나오긴 했는지조차 모른 채 보고 드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볼살은 여전히 말랑하네~”


꾹, 꾹. 계속해서 눌러지는 볼에 나는 인상을 쓴 채 형의 손을 탁 쳐냈다.


“그치, 형. 이도헌 볼살 진짜 말랑하지.”


“그러게. 쌍둥이보다 더 말랑한 거 같아. 한 번만 더 만져보면 안 되나?”


오른쪽 검지를 절대 굽히지 않던 형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안 돼.”


단호한 대답에 형이 시무룩하게 오른손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자 다른 대원들도 한 명씩 출근을 했다. 본부로 들어오는 대원들 모두가 내 모습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엄청 꾸몄네? 그냥 제복 입고 가도 괜찮을 텐데.”


선아 누나가 신기한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속성 대표님들 오시는 회의니까.”


“긴장했냐?”


넌지시 던지는 인혁의 한 마디에 몸을 흠칫 떨었다.


오 년 전 그 일 직후에 진행하였던 속성 회의 때는 회의 도중에 잠시 들어가 보고만 하고 나왔던 거라 정식으로 속성 회의에 참가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긴장돼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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