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4)

불의 나비 42화

by 매화연

밤하늘. 어둡게 물든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빼곡히 박혀 있는 그곳은 세상에 작별을 고한 망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밤하늘에 수놓아 있는 자신의 별에 일정 시간 머물다 다시 새로운 삶으로 환생한다.


그것을 우리는 ‘밤하늘의 여정’이라 부르고, 밤하늘 속 자신의 별에 머무는 망자를 ‘여행자’라 칭한다.


달 속성은 사람의 생명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해 속성도 마찬가지. 달 속성은 사람을 포함한 그 어떤 생명체의 목숨이든 곧바로 앗아갈 수 있는 만큼 위력이 엄청난 속성이며 해 속성 크기와 종류, 심각성에 속박되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상처와 속성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숨이 멋은 뒤 한 시간이 넘도록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치유 능력의 속성이다. 달 속성은 죽음, 해 속성은 부활과 관련이 있다 볼 수 있지.


이러한 이유로 밤하늘은 생명의 죽음과 긴밀한 달 속성을 가진 아버지의 가문이 대대로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밤하늘의 관리자는 아버지로 엄마의 도움과 함께 도맡고 계신다.


밤하늘의 입구는 오로지 달 속성으로만 열 수 있는 것과 같이 밤하늘에서 탈출한 자는 달 속성 보유자 이외에 그 어떤 자도 볼 수 없다.


즉, 아버지와 나만이 밤하늘에서 탈출한 여행자를 볼 수 있다는 뜻이지.


“미안하지만 이번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못 다룬 안건은 다음 회의 때 이어서 하죠.”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태윤 형이 아버지의 곁으로 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아버지는 웃음을 지은 채 어깨를 으쓱하는 형을 한 번 일별하시며 입을 여셨다.


“굳이? 내가 나서는 게 일 처리가 더 빠를 텐데.”


“안 그래도 신규 디자인 런칭 때문에 대표님 요즘 더 바쁘시잖아요. 다른 분께 맡길 수 있는 일까지 맡으셔서 괜히 철야하지 마시고 줄일 수 있는 업무는 좀 줄이십시오.”


약간의 잔소리가 겸비된 형의 말에 아버지가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걸음을 옮기시며 말씀하셨다.


“이도헌, 따라와라.”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말씀에 일순 밀려온 당황함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회의실을 나가시는 아버지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태윤 형이 내 옆으로 왔다.


“가시죠, 도련님. 도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태윤 형과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정세연 씨는 김 선생의 애인이다. 김 선생이 청혼하려던 날에 교통사고로 밤하늘에 가게 됐어.”


협회장 집무실에서 나와 조각상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가 정세연 씨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셨다.


“내 기억상 긴 갈색의 머리에 키는 백육십 정도 되었던 것 같고 순한 인상이다. 풀 속성 보유자이니 참고해.”


정세연 씨의 외적 특징을 알려주시는 아버지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버지가 계신 탓인지 우리는 협회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숙덕거림 속에서 해 조각상 앞에 도착하자 태윤 형이 조각상에 형이 소유하고 있는 속성인 얼음 속성을 가볍게 가하였다. 얼음 속성이 주입된 조각상이 주황빛을 강렬히 빛났다.



아버지의 집무실에 도착한 뒤 밤하늘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여전히 뒤를 돌아보시지 않고 앞만 보신 채.


“본론만 말하자면 특경부, 정확히는 네가 정세연 씨를 찾아주었으면 한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상당히 놀랐으나 겨우겨우 억압한 감정은 깊은 곳에 빠져있어 그 놀람은 목소리에도, 행동에도 묻어나지 않았다.


특경부는 그 어떤 명령이든 아버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무엇을 시킨 적이 없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내게 부탁을 하셨다.


달 속성을 사용하여 여행자의 발자취를 밟을 수 있다. 그러니 달 속성을 사용할 수 있으신 아버지가 직접 나서시면 더 빠르고 확실하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면서도 이번 일을 나에게 부탁하신 건 태윤 형 때문일 테지. 아무리 바쁘셔도 아버지는 직접 누군가에게 아버지가 처리할 수 있는, 정확히는 처리해야 될 업무를 부탁하시는 분이 아니시니.


나는 태윤 형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와 눈이 마주친 형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아버지가 바빠서, 라는 이유로 형이 아버지에게 이번 일을 나에게 맡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게 아닐 것이다. 왜 그런 제안을 하신 걸까.


……깊게 생각하지 말자. 정말 바쁘신 아버지를 위해서였을 것이니.


“들어가거라.”


아버지의 말씀에 시선을 옮기니 허공을 무참히 찢어놓은 채 고고히 자리를 잡고 있는 밤하늘의 입구가 보였다. 기다랗던 틈은 아버지의 손을 따라 넓게 몸을 키워나갔다.


아, 이번에도 놓쳤군. 아버지가 속성을 사용하시는 모습.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속성 대표님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속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차원을 찢은 새까만 어둠 사이사이 박혀 찬연한 빛을 내뿜는 별들. 나는 긴장에 절여져 망부석이 되어버린 발을 힘겹게 밤하늘의 입구로 집어넣었다. 밤하늘이라 했으나 절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한낮보다 밝다 해도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항상 서적으로만 보던 밤하늘의 모습을 처음으로 직접 두 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하늘에는 꽤 크기가 큰 수많은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밤하늘을 마주한 어떠한 자는 이것을 아름답다, 라 칭할 것이고 또 어떠한 자는 이것을 잔혹하다, 라 칭할 것이다.


상상보다 훨씬 더 광활한 밤하늘의 압도감에 철저히 짓눌려지고 있다. 정신을 온전히 붙잡고 있기는 물론 두 발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이곳에서 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형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 거지?


형은 그저 손을 떨 뿐이었다. 극심한 압박감을 피하기 위해 이를 꽉 깨물 뿐이었고.


순간 느껴진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나를 별관하시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아버지는 곧장 내게서 시선을 거두시고는 앞을 바라보셨다.


고작 밤하늘에서 버티지도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신…… 건가.


“무슨 별이지?”


“B구역에 M-438194입니다.”


주위를 쭉 훑어보신 뒤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 별이 아버지의 앞으로 신속하게 날아왔다. 아버지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태연하게 그 별을 물끄러미 직시하셨다.


별은 점차 잃어가는 본래의 빛을 겨우 지키며 억지로 하늘색의 빛을 뿜어낸 채 처참히 깨져 있었다.


“정세연 씨는 협회에 살던 사람이니 협회에 있을 확률이 클 거다. 찾으면 바로 연락해라.”


“네.”


겨우 이끈 발걸음이 밤하늘의 입구를 넘어서자 막혀 있던 숨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쿨럭……, 쿨럭, 쿨럭!”


연잇는 기침에 절로 상체가 숙여지자 곧이어 혐오감이 밀려왔다. 그 대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결같은 나였다.


본디 달 속성 보유자는 밤하늘의 압박에도 그 어떠한 타격이 가해지지 않는데, 이 정도면 정말 달 속성이 없는 건 아닐까.


참, 나약하기도 하지.


이전 11화제6막 물망초(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