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5)

불의 나비 43화

by 매화연

다시 협회로 돌아와 샅샅이 협회를 둘러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의 색을 점점 잃어가며 깨져 있던 별, 그리고 그 주위를 맴도는 하늘색의 빛. 실군단의 짓이 확실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밤하늘에서는 달 속성 이외의 속성은 제약을 받아 사용할 수 없다.


물론 그 제약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입장이기에 우두머리나 조력자가 아닌 형태만 사람일 뿐인 실군단이라면 해당 사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실군단은 사람인 우두머리의 창조물이고 명백한 얼음 속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하아, 아니지. 지금은 실군단과 사건의 배후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실군단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고 정세연 씨를 찾는 것에 집중하였다.


김 선생님의 애인이라 하셨으니 김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나는 김 선생님의 약국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 선생님은 협회에서 유일하게 속성으로 인해 생긴 질병에 관한 약을 제조하는 약국의 약사시다. 속성 관련 약 외 기본적인 질병은 물론 나의 진통제같이 해 속성으로도 고칠 수 없는 정신적인 문제와 관련된 의약품도 만들어 나를 비롯한 협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셨다.


항상 밝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시는 김 선생님에게 그런 과거가 있으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김 선생님의 약국은 협회장 집무실 바로 옆 건물이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던 약국이 지금은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작은 불빛만이 창문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정세연 씨로 추정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협회에 없는 건가? 만약, 정말 만약에, 사회로 나간 거라면…… 아니, 그럴 리는 없을 거다. 무조건 협회에 있을 테니 침착하게 찾아보자.


조금씩 커져가는 불안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협회를 계속해서 수색하던 중, 유독 눈에 밟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낯선 곳에 온 듯 안절부절못하며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모습과 마치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런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버리는 사람들, 그리고 불투명한 몸.


찾았다.


나는 정세연 씨에게로 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녀는 움찔 놀라며 뒤를 돌아 나에게 얼굴을 보였다. 긴장으로 인해 움츠러든 어깨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몸을 돌리던 정세연 씨가 나를 보자마자 굳은 몸을 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이태호 씨……? 아, 아닌가?”


정세연 씨는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세연 님, 맞으십니까?”


“네, 제가 맞긴 한데…… 어라? 제, 제가 보여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화들짝 놀랐다.


“진짜 이태호 씨인가?”


오해가 커지기 전에 서둘러 내 소개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태호 대표님의 아들, 이도헌이라고 합니다.”


내 말에 정세연 씨의 눈이 커지더니 활짝 웃으며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태호 씨 아들이라고요? 아니 그전에, 태호 씨가 대표님이 됐어요?”


얼떨떨하며 고개만 끄덕이자 그녀가 더욱 신이 난 채 말을 이었다.


“우와, 태호 씨랑 엄청 닮았네요! 진짜 이태호 씨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럼 혹시, 어머니는 누구……?”


“JI 병원의 김이담 원장님이십니다.”


엄마의 이름이 언급됨과 동시에 어째서인지 정세연 씨의 눈이 한층 더 커지고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이담 씨요?! 그 해 속성 가문의 이담 씨랑 태호 씨가요?”


또다시 끄덕인 고개에 확인사살이 된 것을 본 정세연 씨가 놀란 상태로 한참 정적을 유지하다 도로 입을 열었다.


“두 분이 결혼을…… 하셨구나. 옛날에는 서로 얼굴만 봐도 싸우셨는데.”


엄마랑…… 아버지가? 서로 얼굴만 보시면 싸우셨다고?


“모르셨나 봐요? 두 분 맨날 쉬지도 않으시고 티격태격하셨어요. 진짜 처음에는 친남매인 줄 착각할 정도였어요.”


당황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나를 보며 정세연 씨가 말했다. 도저히 두 분이 투닥거리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신혼이 끝나지 않는 부부로 협회에 소문이 날 정도인데.


“아, 맞다! 전에 서준이가 두 분 연애하신다고 했었지. 그때도 엄청 놀랐었는데. 깜박하고 있었…….”


두 손을 맞부딪치며 잊고 있던 기억을 되새기던 정세연 씨는 이내 결국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였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구나. 몇 주밖에 안 지난 것 같았는데.”


풀잎에 맺힌 새벽녘의 이슬처럼 반짝였던 그녀의 웃음과 눈빛에 어느새 살며시 태어난 쓸쓸함만이 실려 있었다. 밤하늘의 하루는 세계의 일 년이다. 정세연 씨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제가 착각이라도 할 걸까요?”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애틋하게 미소 짓는 그녀를 직시했다.


처음 만났지만 강하게 느껴졌다. 정세연 씨는 자신의 죽음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여기서 저 말을 부정한다면 애써 무시하고 외면했던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 버린다.


결단이 서기도 전에 거짓을 절대 삼키지 못하는 이성이 멋대로 저어버리는 고개에 그녀가 자칫 무너져 버릴 수도, 그래서 모든 현실을 부정하고 어디론가 멀리 도망쳐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있는 힘껏 달려보아도 결국 협회를 벗어나지 못한 채, 아니 어쩌면 한 발짝 나가기도 전에 나에게 제압당하겠지. 문제는 정세연 씨를 붙잡는 것에 있는 게 아니었다.


혼은 한없이 여리고 약하다. 마음의 균열은 곧 의지의 박탈이고 의지는 혼의 결정체다.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한 막대한 기대감,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의지, 사모하는 인연과의 재회의 간절함. 혼과 별을 유지하는 세 가지가 모두 소멸한다면 여행자의 자격을 빼앗아 밤하늘이 추방자로 그를 지명한다. 밤하늘의 추방자는 말 그대로 밤하늘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마구 떠돌다 혼은 조금씩 마모가 일어나 빛의 가루가 되어 끝내 별이 되어간다.


위 세 가지 중 하나만 사라져도 별과 혼의 빛이 약해진다. 일정의 빛을 품지 못해도 본래는 밤하늘의 추방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해당 경우는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빛을 잃어도, 혼이 희미해져도 여행자를 붙잡는 단 하나의 실이 있기에. 그 실이 바로 인연의 실.


온통 흑으로 물든 하늘과 그를 찬연히 반짝이는 수많은 별, 그리고 그 속에서 간혹 존재감을 도출시키는 붉은 실. 악연이 아닌 이상 몇 번의 생을 반복한다 하여도 그 붉은 실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즉, 위 세 가지를 전부 잃어버려도 그 실이 존재하는 이상은 밤하늘의 여행자로서 자신의 별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이지.


“……마음 같아선, 그냥 그렇게 믿고 싶네요.”


무너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기대감이라든가 의지라든가 간절함이라든가 밤하늘이 멋대로 정한 자격 중 그 어떤 것도 놓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정세연 씨의 혼에는 이 세계에 대한 미련이 있지 않다. 순결이 깃들어야 될 혼에 미련이 가득하면 본디 탁해지기 마련이니. 그렇다면 드넓은 하늘 아래서 대지에 발을 디디게 하는 원인은 역시, 연모인 건가. 아버지와 아는 사이면 밤하늘의 체계에 대해 분명 상세히 알고 있을 텐데도 아버지를 찾지 아니했던 것도,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것도, 이 주위를 맴도는 것도.


“아, 죄송해요. 내가 초면에 너무 실례했죠?”


그녀는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놓았다.


자신이 떠난 뒤 이별의 아픔을 홀로 견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걱정과 그리움. 언젠가 다시 만날 걸 알아 그날을 고대하는 기다림. 그것이 정세연 씨가 여태 자신의 별에서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연유였겠지.


“괜찮습니다. 그보다…….”


하지만, 그날은 아직 멀었다.


그녀의 쓸쓸한 웃음에 바로 본론을 말하려던 입을 꾹 다물고 차마 잊지 못한 말을 집어삼켰다. 목숨보다 소중한 이를 두고 떠나간 미안함과 연인을 향한 그리움이 저 웃음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알아요. 돌아가야 하는 거죠?”


“…….”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이도헌 씨가 죄책감 가질 일이 아니니까.”


감정을 숨기지 못한 내 얼굴을 보며 정세연 씨가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그,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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