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6)

불의 나비 44화

by 매화연

정세연 씨는 조심스레 내게 부탁을 말했다. 그녀의 부탁은 마지막으로 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달 속성 보유자가 아닌 자가 여행자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밤하늘에서 망자를 직접 만나거나 망자에게 약한 달 속성의 힘을 가하는 것. 그러니 내 능력으로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저는 정세연 씨를 찾았다는 걸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것이 우선 업무였다. 짧은 통화 연결음과 함께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다.


“무슨 일이야.”


“정세연 님 찾았습니다.”


“알겠다. 내가 거기로 가마.”


아버지에게 지금 서 있는 장소를 말해주고 통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협회로 오셨다.


“일단 자리를 옮기시죠.”


그러고 보니 정세연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즉, 다른 사람들은 내가 계속해서 허공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어쩐지 유독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느껴지더라니.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자 정세연 씨는 슬쩍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지은 미소와 함께 아버지에게 반가움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태호 씨. JI 그룹의 대표님이 되셨다면서요? 정말로 축하드려요. 많이 늦은 것 같지만요.”


“정세연 씨.”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녀는 민망한 듯 몇 번 소리 내어 웃었다. 아버지가 짧게 한숨을 쉬셨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그게…….”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졌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평소랑 똑같이 별에서 생활하고 있던 중에 멀리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여자아이의 목소리와 남성의 목소리였는데 멀리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들리던 목소리들이 점점 크게 들리면서 그 사람들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가까워졌어요.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왔고 잠시 눈앞에 깜깜해졌어요.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협회였고요.”


여자아이와 남성의 목소리……? 실군단이 말도 할 수 있었던가?


아버지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시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답답하신 듯 눈을 한 번 감았다 뜨시며 입을 여셨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시죠.”


“아, 저……!”


정세연 씨가 뒤를 돌아 걸음을 옮기시는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발을 멈추시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셔서 그녀를 바라보셨다. 그녀는 일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내게 말했던 부탁을 아버지에게 간곡히 전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서준이를 만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 돌아온 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아버지의 차가운 대답이었다.


“그치만…….”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아버지는 이내 정세연 씨에게 시선을 거두시며 다시 한 걸음을 떼셨다. 그녀는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서준이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요.”


김 선생님의 이름과 걱정이라는 단어가 공존하자 아버지의 발걸음이 또다시 멈추었다.


“태호 씨는 서준이를 잘 아시잖아요. 저보다 더 많은 세월을 함께 하셨으니까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거예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정세연 씨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 잠깐의 정적 끝에도 반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상에 의약으로 서준이보다 뛰어난 사람 없어요. 세상 최고 약사라 불리는 사람인데 해를 가하는 약도 못 만들까 봐요?”


“정세연 씨.”


“무조건이라고요. 제가 그렇게 가버렸는데 당연히-!”


“그만.”


살짝 높여진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세연 씨의 말이 단숨에 먹혀들어갔다.


“하세요.”


아버지의 말씀이 마침표를 찍자 그녀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결국 툭 힘없이 떨어졌다.


“지금 이러는 게 김 선생한테 도움이 된다 생각하는 겁니까?”


짧게 내뱉은 지극히도 서늘한 숨 뒤로 아버지가 덧붙이셨다.


“제가 그걸 모를 것 같습니까. 정세연 씨가 걱정하는 일 절대 안 일어납니다. 그러니 걱정은 거기까지 하시고 가시죠. 더 오래 있다가는 혼이 마모됩니다.”


지금을 놓치면 정세연 씨와 김 선생님의 재회는 공백을 영원히 기약한다. 그 영원이 언제 깨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일어난 기회인데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감정적으로 굴면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 끊임없이 불어나는 생각이 사부에게까지 도달하면 이성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활시위에 몸을 맡긴 채 팽팽하게 당겨진 재회의 화살을 조준한다. 화살의 목적지가 나의 심장일지언정 활시위를 주저 없이 놓는다.


그 간절함이 얼마나 절박한지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은 사납게 나와버리는 말투도, 확고한 거절에 대한 분함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간절함을 알기에 더욱히 더 이대로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정세연 씨의 흔들리는 눈빛이, 주저 없이 흐르는 눈물이 모두 김 선생님을 향하는 것에 또다시 나는 운명에게 검을 겨눈다.


“이 대표님.”


당신의 연극에 낙을 듬뿍 실어 넣어 줄 터이니 제발 나의 염원을 들어달라고.


“정세연 씨의 부탁,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손이 심히도 떨려온다. 왜일까. 그래도 나의 아버지인데 왜 아버지에게 먼저 말을 걸 때면 항상 손이 떨려오는 걸까.


“안 돼.”


“그럼 제가 들어주겠습니다.”


오른손 손목에 차져 있는 팔찌에 왼손이 안착하였다. 팔찌를 빼내려던 순간 그 위에 또 다른 손 하나가 압박을 가했다.


“이도헌.”


근데 이러면 아버지에게까지 떨림이 전해질 텐데. 애써 숨기려던 게 다 무용지물이 되잖나.


“지금 뭐 하는 거냐.”


한 협회장님은 내 사부이기 전에 속성 대표님들의 절친한 친우셨다. 셀 수도 없이 오랜 세월을 함께한 벗일 텐데 어떻게 이리도 태연하실 수 있으신 건지. 그저 ‘척’일 뿐인지 정말 그리하신 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만일 후자라면 묻고 싶었다.


“감정에 동요하지 말거라.”


어떻게 그렇게 냉철하실 수 있으신 거냐고. 왜 아무렇지도 않으신 거고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냐고.


“쓸데없는 것에 흔들려서 괜히 몸 상하지 마.”


꿋꿋이 마주하고 있던 아버지의 두 눈동자를 끝내 놓아버렸다. 조금씩 내려가는 고개에 순간 결단력이 흐려져 희미해진 기로의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난 한순간도 사부를 놓지 못하여 그분의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이 엉키다 못해 뒤틀렸는데 아버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신다. 정말, 찰나의 감정도 허락지 않으셨다.


“……해도 내가 할 터이니.”


왼손을 팔찌에서 떼 내어 내는 아버지의 손길을 묵묵히 따랐다.


현재 내 달 속성 사용 능력으로 달 속성 보유자가 아닌 이에게 혼을 보여준다는 일은 당연히 불가한 일이다. 달 속성을 사용한다 해도 온전치 못한 달 속성에 영향을 받은 불 속성을 쓸 뿐이었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불 속성이니 정세연 씨에게 주입해 봤자 불 속성을 넣는 셈이 되어 버린다.


그 점을 아버지도 적실히 알고 계실 터. 그럼에도 나를 막으시는 이유를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하였다. 이제야 아버지가 내 달 속성에 극도로 예민하시다는 걸 알아냈으나 왜 그런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손을 놓으신 뒤 아버지는 자신의 팔찌를 매만지며 잠시 정적을 유지하셨다. 그 정적 안 속에는 죄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은 눈빛을 내게 보내는 정세연 씨의 행동만이 의식되었다.


“정세연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정세연 씨는 아버지와 눈을 맞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치만을 계속 살피는 정세연 씨를 보며 아버지가 덧붙이셨다.


“정세연 씨가 여행자가 되신 지 벌써 거진 삼십 년입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그 기나긴 세월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에서 멈춘 채 되려 뒤를 바라보는 이가 한 명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 처방해야 될 약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간을 멈춘 당사자.


“그자의 시간을 멈춘 당사자입니다.”


멈춰버린 시간을 흐르게 만들 방법은 태엽을 고장 내버린 당인이 직접 고쳐주는 것 하나뿐임을 똑똑히 새기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의연히 깨달았으니까.


떨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 채 시선을 바닥에 두는 정세연 씨를 보던 아버지가 왼쪽 팔을 드셔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셨다.


“이십 분.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제야 정세연 씨는 눈을 크게 뜨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꼭 김 선생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드셔야 돼요.”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어설프게나마 숨기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이도헌, 넌 지금 김 선생한테 먼저 가 있어.”


아버지의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그래, 원래 이랬지. 원래 나를 잘 안 보셨는데 왜 오늘따라 유독 더 씁쓸한 건지. 방금 전에 너무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었던 탓인가.


“네.”


짧게 대답한 뒤 나는 김 선생님의 약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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