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7)

불의 나비 45화

by 매화연

내가 생각해도 너무 무모한 작전이었다. 네가 잠시 미쳤지, 이도헌. 어떻게 아버지한테…….


골목을 나와 아버지의 시야 밖으로 나오자마자 힘 풀린 다리가 순간 휘청이며 넘어질 뻔했다.


‘감정에 동요하지 말거라. 쓸데없는 것에 흔들려서 괜히 몸 상하지 마.’


머릿속에 재생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금 재생되었다. 나, 아버지한테 미움을 사 버린 거겠지? 안 그래도 미덥지 않은 자식이라 이쁨 받을 짓만 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선아 누나처럼 살가운 성격이었다면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그래도 조금은 덜 미워해 주셨으면 하는데.


어느새 도착한 약국의 문 앞에는 종이 한 장이 붙여져 있었다. 바람에 힘없이 팔랑이는 종이에는 ‘휴업’이라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짧은 망설임 끝에 문을 두드리자 약간의 소음과 함께 곧이어 문이 열렸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다소 피곤한 기색을 내보이시며 안경을 올리시던 김 선생님이 언뜻 고개를 드시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일시의 놀람, 그 뒤는 언제나 그렇듯 부드러운 미소였다.


“아, 도헌이구나. 무슨 일이냐?”


왜 다들 이리도 아득바득 버티는 걸까.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울려도, 목이 조여져 오고 숨이 쥐어지지 않아도,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듯 아무 일도 없는 마냥.


뭐, 하긴 나도 다른 사람 눈에는 다를 바 없으려나.


“그…… 정세연 님을 찾았다는 말을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어렵사리 꺼낸 말에 김 선생님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삼 초도 지속되지 않고 다시금 미소로 바뀐 아까의 그 굳은 표정에서 전해졌던 안심과 함께 묘하게 혐오가 느껴졌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잠시 들어오렴.”


김 선생님을 따라 약국으로 들어갔다. 편안한 대기를 위해 마련된 기다란 소파를 지나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간 뒤 구석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어 김 선생님이 약을 연구하시는 곳에 도착하였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갖가지 약재의 향긋한 향기와 함께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편하게 앉아 있어라. 뭐라도 마시겠느냐?”


“괜찮습니다.”


의자에 앉자 자연히 앞에 있는 책상에 시선이 갔다.


책상 위에는 열려 있는 반지 케이스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담겨 있는 두 개의 반지와 반듯하게 펼쳐진 하얀 손수건을 깔고 있는 작은 유리병이 있었다. 유리병 속에는 액체가 병의 반 정도 채워져 있었는데 그 액체가 녹빛을 띠고 있는 건지, 아니면 유리병 자체가 녹빛인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김 선생님이 내 맞은편에 앉으시며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려두셨다. 시선을 분산시켜 주었던 안경이 떠나가자 온전히 드러난 조금 붉어져 있는 김 선생님의 눈시울이 강인해 보이기만 해던 김 선생님의 겉모습과 잘 어우러지지 않고 이질감을 띄웠다.


작은 한숨과 함께 한동안 하염없이 반지만을 바라보시던 김 선생님이 이내 입을 여셨다.


“세연이를 만났다고?”


“……네.”


나는 정세연 씨의 별이 부서진 이유를 김 선생님에게 간단히 알려주었다.


“그랬군. 실군단이라…….”


김 선생님의 미간이 잠시 미세하게 찌푸렸다. 무언갈 깊이 생각하시는 듯해 보이는 모습에는 적지만 거센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세연이는 다시 밤하늘에 돌아갔느냐?”


정세연 씨의 이름을 꺼내는 김 선생님은 어느샌가 증오를 꾹 눌러두신 채 복합한 감정을 실은 떨림을 포용하셨다.


“지금 이 대표님과 이야기하고 계셔서 아마 아직은 안 돌아갔을 겁니다.”


‘아직은’이라 말했다. 당연한 사실이었으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재를 조금이나마 회피하기 위해 쓸쓸히 지어 보이시는 김 선생님의 웃음과 정세연 씨에게서 보았던 웃음이 문득 겹쳐 보였다. 아니, 겹쳐 보였다기보다는 두 분의 웃음이 많이 닮았다.


“그래, 고생 많았다. 이제 그만 어서 본부로 돌아가 보거라. 리더가 자리를 오래 비워두면 안 되지.”


내가 맡은 일은 김 선생님에게 정세연 씨와의 만남을 알려주는 것까지였다. 회의도 파기되었고 아버지가 맡기신 일도 모두 끝내었으니 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만 본부로 돌아가도 되었다.


더 이상의 개입은 과한 참견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여기서 발을 빼는 게 맞는 선택지일 수도 있다.


“저, 듣는 거 잘합니다.”


하지만 어떤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털어놓아야지만 아무는 게 있다.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일지라도 다른 이에게 말해야지만 낫는 상처가 있다.


“워낙 유능한 대원들인지라 저 없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요.”


괜한 간여가 아니었을까, 외려 상처를 더 크고 깊게 벌리는 꼴이 아니었을까, 걱정하던 찰나에 김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핫!”


나직이 흘려보내시는 두어 번의 웃음이 차마 서글픔을 지우지 못하였다.


“삼촌 걱정해 주는 거야?”


그 말씀에 나는 당황하며 어버버 거리다 끝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우리 도헌이 많이 컸네. 근데 어째 가면 갈수록 애가 귀여워지는 것 같냐.”


머리카락을 헝크는 김 선생님의 손길이 떠나갈 때쯤 김 선생님의 시선은 또다시 두 개의 반지에 살며시 걸렸다.


“난 괜찮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언뜻 보면 오랜 세월에 마모된 미련을 결국 놓아 버린 것처럼 보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파도에 휩쓸려 형체가 남아 있지도 않을 정도로 심히 마모되었다 하여도 과거를 놓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어쩌면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아픔을 억지로 꺼내는 격이 되어버리는 셈이니까.


김 선생님은 과거의 이야기를 무척 소중히 여기신다. 이 세상에서 오직 단둘만이 기억하고 있는 그날의 추억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계신다. 웃음이라는 포장지에 아프고 쓰라린 상처를 고이 접어두셨다.


그러니, 들어야만 한다. 김 선생님이 내게 들려주어야만 한다.


“……세연이가 죽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네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김 선생님은 여전히 올리신 입꼬리를 유지하신 채로 과거를 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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