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8)

불의 나비 46화

by 매화연

*


“어서 오세요!”


중학생 때 부모님이 알 수 없는 불치병으로 치료 방법조차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는 자연스레 약사를 꿈꾸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아, 오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다 김 선생님 덕분이에요.”


부모님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속성으로 인한 질병과 불치병에 대한 약을 만드는 약사가 되기 위해 속성에 대해 깊게 공부를 했다. 부모님을 죽음으로 밀어붙인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기억이 나는 한에서 부모님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기록하여 병을 찾아내 그 누구도 다시는 이 병으로 인해 아프지 않고, 슬퍼하지 않도록.


물론 부모님의 병이 속성의 문제로 생겨난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간에 그 누구도 부모님의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였으니 신빙성이 존재하는 가설은 속성으로 인한 질병, 그것 하나뿐이었다. 당시 해 속성 대표이셨던 김 원장님, 그러니까 지금의 김이담 원장의 아버지 되시는 분께 물어봤더라면, 부모님의 결말과 나의 결말이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부모님께서 자신들의 병을 내게 숨기지 않으셨더라면, 내가 진작 알아채고 김 원장님께 도움을 청했더라면 분명 달라졌겠지.


내가 김 원장님을 붙잡고 엄마와 아빠를 살려달라 울부짖었던 때에는 이미 부모님의 숨이 멋은 채 한 시간은 훌쩍 지났었고, 여행자로서 밤하늘의 인도를 받고 계신 상태였다.


살아계셨을 적 내게 본인들의 병을 밝히지 않으셨기에 부모님의 증상도 몇몇 개만 알았던 내가 정확한 신양을 찾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잖나.


성인이 된 후에는 JI 연구소에 취직을 하여 속성과 의약품에 관한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바쁜 일상을 보냈던 것은 약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보단 갑작스런 이별과 진실의 충격과 슬픔, 그리고 그 후에 활개를 치는 폭풍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네요. 기존에 있던 증상이 악화되었거나 다른 증상이 나타나진 않으셨죠?”


“네.”


“다행이에요. 검사는 어제 다 하셨으니……, 여기 약입니다. 꼭 식후에 약 드셔야 해요.”


슬픔은 감추고 항상 웃으려고 노력했다. 힘든 티 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기왕이면 남들 보기 좋게 웃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여겼다. 그렇게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진짜 행복이 문득 나를 덮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무의미하게 떠나보내버리고 말았다.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드시고,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 열심히 잘 쉬면서 잠도 푹 주무셔야 돼요. 아시겠죠?”


“하하, 네.”


신이 보기에 내가 많이 가엽고 불쌍했던 모양일까.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꽤나 순조롭게 약사가 되었고 협회에 약국까지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의 도움은 거기까지. 이름조차 없는 병인 건지 수만의 시간을 쓰며 모든 수를 전부 써봐도 부모님의 병을 알아낼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독일무이의 삶을 이어나가는 핑계였던 목표가 암묵적인 포기에 슬그머니 발을 들였다. 그럼에도 여태껏 목숨을 부지했던 건 내일 그 활기찬 아이가 속성에 섞인 바이러스 제거 치료제를 위해 약국에 찾아오지, 모레는 몸에 안 좋다 말하는 데도 술을 못 끊는 호탕한 청년이 심장 통증 완화제를 받으러, 글피는 여전히 정정하신 할머님이 영양제를 처방받으시러 오시고, 또 그글피는 때마침 수험 생활을 하는 여고생이 카페인이 들지 않는 피로회복제와 비타민을 구입하러 오는 날이네, 라는 이런저런 일정을 구실 삼는 구차한 변명에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 한 달이 기어이 일 년을 가득 채웠던 탓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스쳐 지나가듯 모두가 건네는 ‘김 선생님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네요.’, ‘다 김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들이 버젓하지 못한 내 삶을 이어가는 데에 있어 보람을 한 수저 넣어주는 나의 원동력이자 스스로를 혐오하여도 꿋꿋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문에 달린 종이 맑은 소리를 노래하며 한 여성분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껏 긴장한 채 쭈뼛쭈뼛 계산대 앞으로 걸어왔다.


“약국은 처음이시죠?”


“네.”


나는 서랍에 열어 안에 있는 서류를 한 장 꺼내 올려놓고는 펜을 쥐며 질문을 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정세연이요.”


“정세연 씨, 이름이 예쁘시네요.”


서류 가장 상단에 있는 이름란에 세연 씨의 이름을 적으며 무심코 내뱉은 말에 세연 씨는 어버버 거리다 부끄러운 듯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런,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한 말인데 부담스러웠으려나.


그 뒤로도 나이와 전화번호를 비롯한 몇 가지 개인정보를 물었다. 신기하게도 세연 씨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약국에 동갑이 온 건 세연 씨가 처음이라 친해지기 위해 선뜻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낯을 가리는 세연 씨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이 접었다. 이미 잔뜩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으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약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약 부작용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약 부작용? 그런 건 일반 병원에서도 진료가 가능할 텐데…….


협회의 사람들이 내 약국을 많이 찾아준다는 건 그만큼 신뢰도가 올라갔다는 증표이니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일반 협회 병원에서 해결이 가능한 일까지 내가 맡아버린다면 병원의 소용이 사라지지. 난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일반 병원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것이 내 신조이자 깊은 염원이었고 이 약국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점차 이름을 떨치고 있는 요즘, 단순 감기로도 약국을 찾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보통은 일반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 달라며 그냥 돌려보내지만, 약불 부작용이라……. 애매한 건 일단 진료를 해봐야지.


“복용하시는 약이 무슨 약일까요?”


“아, 그게……, 그…….”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 탁탁 울려 퍼지는 손톱 옆 거스러미 뜯는 소리. 나와 절대 마주치지 않는 눈.


불안 증세? 왜? 마음에 감기가 걸려 약국에 찾아오는 모두 밖에서는 이러한 불안함을 표하는 증상들을 보일지 몰라도 약국 안, 특히 내 앞에서는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불안해할 필요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난 단순 약국의 약사였고 어쩌면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을 넘어서지 않는다. 간혹 약국을 방문하는 진상 이야기만 태호를 비롯한 애들한테 한 번씩 신세한탄하는 거지 내가 약국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여기저기 떠벌리는 것도 아니고, 애당초에 그럴 시간도 없…….


아하, 그런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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