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막 물망초(9)

불의 나비 47화

by 매화연

“세연 씨가 이곳에 온 일과 약국에서 어떤 진단을 받았고, 저랑 무슨 말이 오갔는지, 상세한 대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와 같은 약국 내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이곳에서 절대 벗어날 리 없어요.”


세연 씨가 내 말에 조금 놀란 듯 숙이고 있던 고개를 빠르게 들고 나와 눈을 맞추었다.


“오로지 저와 세연 씨의 비밀인 거죠.”


나는 오른쪽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담은 눈빛이 조심스레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조용해도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인 건가.


“와, 저 그렇게 못 미덥지 생겼어요? 그래도 인상이 서글서글해서 나름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얼굴인데. 비슷한 연령대 분들한테는 안 먹히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그럼!”


다급하게 시정하려던 세연 씨의 말을 끊고 탁! 계산대 위에 오른쪽 손을 올려두며 말을 이었다.


“제 손모가지 걸겠습니다. 진짜로요.”


이곳은 그저 평범한 약국이 아니다. 어떨 땐 나름 정신적인 문제에 관한 약도 복용해 주는 만큼 상담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약국으로 치장한 작은 고민 상담소랄까. 그렇기에 이 약국에 오기를 꺼리는 사람도 간혹 있다.


난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멀리 가지 않고 부모님에 대한 일을 꽁꽁 숨기는 나만 보더라도. 험한 세상을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본능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로 정신과 상담에 대한 사회적 인식.


협회는 마을이 아니다. 반쪽 대한민국이라 불릴 정도로 상당히 규모가 큰 만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그 속에는 악인이 늘 껴있기 마련이다.


소문. 한 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다. 온갖 해명과 반박을 더 해도 귀를 막으면 그만인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남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다, 라 흔히들 이야기하나 깊숙이 파헤쳐보면 우리의 생각보다 인간이란 생물은 타인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쏟아붓는다. 자존심이 하늘을 뚫고 질투와 이기심을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인간은 생각보다 선하고, 생각보다 악하다.


당연히 정신과 상담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되나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말했잖나, 반쪽 대한민국. 이 작은 나라를 통제하려면 막강한 강제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십일 세기에 강제성이 웬 말인가. 그래, 불가하다는 거지. 하지만 여기는 약국이다. 아무리 상담소와 유사한 역할을 넌지시 지고 있다 한들 엄연한 약국이다. 이곳에 다녀갔다 하여도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뿐더러 막상 사람들도 그저 몸이 아팠겠거니, 하고 넘겨버린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이러한 인간의 순리를 그리 좋게 볼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힘든 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만 있다면 된 거 아니겠어.


몸의 감기도, 마음의 감기도 별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둘 다 똑같이 처방전이 필요하고, 숨길 필요도 숨겨야 될 이유도 없고 아프면 아프다 말해야 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


슬쩍 내려간 세연 씨의 시선이 내 오른쪽 손목에 걸리자 그제야 드디어 웃음을 편히 터트렸다.


“아하하하!”


성공.


이래 봬도 더럽게 싸가지 없기로 유명하신 우리 부잣집 도련님 이태호 군께서 사람 꼬시는데 재주 들렸다며 친히 미친놈이라 인정한……, 아니 잠만, 이게 아닌데.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추억 회상은 이쯤 그만두는 편이 정신 건강에 더 좋을 것 같군. 괜히 기분 나빠지는 기억까지 불러일으키겠어. 나는 다시 세연 씨와의 대화에 집중하였다.


“저 입 무겁답니다? 그러니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잔뜩 부풀었던 그녀의 긴장이 꺼지는 순간은 한순간이었다.


“수면제를 먹고 있어요. 불면증 때문에…….”


“그렇군요. 어떤 증상이 나타나시나요?”


“음…….”


세연 씨는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의 증상을 하나씩 말했다. 나는 세연 씨가 말하는 증상들을 빠짐없이 전부 서류에 기록하였다.


두통, 이명, 어지럼증, 울렁거림, 심장 통증, 기립성 저혈압, 불면증, 그리고 간혹 나타나는 호흡곤란.


“근데 전부 그렇게 심각성이 엄청나게 두드러지지는 않아요. 그냥, 일상생활이 조금 불편하기만 한 거라서. 솔직히 지금도 계속 고민되거든요. 이 정도는 모두 가지고 있는 증상일 텐데 괜히 호들갑 떨면서 온 게 아닌가, 하고.”


또다시 탁탁, 거스러미를 뜯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멈추지 못하는 소리는 차마 목소리에 담지 못한 불안을 고스란히 포용하고 있었다.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텐데. 아무래도 저 엄살이 너무 심하죠?”


“세연 씨.”


애써 심각해지려는 표정을 항상 짓는 미소로 무마시켰다. 그녀의 떨리는 입꼬리가 슬며시 추락하였다. 탁탁거리는 소리도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증상 자체도 어느 정도 위험성을 띠고 있기는 하나 원초적인 문제는 원인이다. 원인은 이제 알아내면 되는 거고. 아직 기폭제를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내가 비경해지는 건 세연 씨의 태도 때문이다.


“저랑 약속 한 가지 합시다.”


“약속……이요?”


“네. 앞으로 자신의 아픈 점을 그냥저냥 넘기며 사소하게 생각하지 않기. 그게 육체적 건강이든 정신적 건강이든. 알았죠?”


약사는 선을 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환자의 정확한 원인과 병명을 알아야지 그에 맞는 약제를 처방해 줄 수 있으니. 환자가 말하기 꺼려하는 이야기도 꺼내야만 한다.


거기서 환자가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약사의 역할이다.


“세상에 치료가 불필요한 병은 없습니다. 모든 병은 치료가 필요해요.”


나는 책상 밑 첫 번째 서랍을 열어 가득 찬 밴드 중 하나를 집어 계산대 밖으로 나갔다.


“몸도 마음도 이미 부서졌는데 억지로 견디려고 노력 안 하셔도 돼요. 견디고 버텨도 안 낫습니다. 아픔이 더 심화될 뿐이죠.”


세연 씨의 왼쪽 손을 살며시 잡았다. 온기를 잃은 채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손이 차갑기 그지없는 나의 손에 올려졌다. 강제로 만든 거스러미까지 다 뜯겨 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가끔은 상처를 온전히 마주하는 것도 필요하답니다.”


조심스레 상처 위에 붙인 밴드를 세연 씨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무언갈 깊게 깨달은 건지, 불편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이 세연 씨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정확히 ‘정신적 건강’이라는 단어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도 생각난 듯. 힘겹게 주억거리는 세연 씨를 보며 마음이 안 좋아져도 분명한 처방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단순한 수면제 부작용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과도한 스트레스 탓이라기엔 증상이 너무 다양했고. 어느 정도 짚이는 바가 있으나 일단은 원래의 절차대로 진행해 보아야겠군.


“증상만 두고 봤을 때는 평범한 수면제 부작용은 아닌 것 같아요. 속성상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일단 피검사 한번 해봅시다.”


세연 씨의 피를 뽑아 신속히 검사를 진행했다. 역시, 예상대로 세연 씨의 속성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속성 때문은 아니네요. 음, 세연 씨.”


나는 세연 씨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녀를 불렀다. 약 부작용도, 속성의 문제도 아니라면 답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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