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51화
이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으며 온 세상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꽃다발에 있던 물망초는 꺾이다 못해 바스러지며 순식간에 더러워졌고 세연의 새하얀 드레스는 점차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가해자인 트럭 운전자가 대낮부터 술을 먹고 음주 운전을 했었던 건지, 해가 중천에 떠 있었음에도 잠에 취하여 졸음운전을 했었던 건지조차도. 사고 후속 조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은 나를 대신해서 이 대표가 처리해 주었다.
세연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세연의 죽음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어딘가 세연이 살아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찬란한 빛을 가지고 내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그 웃음을 피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다시 그녀가 약국으로 찾아와 내 품에 안길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냉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지속됐으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점차 세연이 없는 세상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죄책감에 정신이 갉아 먹혀갔다. 그리움보다는 자책이, 연연보다는 자기 혐오감이 더욱 모습을 키워나갔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으며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쉬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이 세상에서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나 때문에 세연이 세상을 떠났다.
전부 나 때문에.
내가 너에게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특별할 거 없는 그저 환자와 약사라는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애초에 결국 부모님의 병을 찾지도 못한 채 실패로 끝난 오만의 목표를 가지지 않고 약사도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행복이라는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으며 너를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며, 불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방안에 박혀 울다가 지쳐 잠에 들고 다시 일어나면 또 울고. 눈을 뜨면 세연이 없는 세상이 나를 압박하고, 눈을 감으면 세연이 내 바로 앞에서 죽는 꿈이 수도 없이 반복을 이루며 나를 무너트리고.
그런 생활을 지속한 채 폐인처럼 살아가던 나에게 힘이 되었던 건 현재 속성 대표들인 나의 오랜 친구들이었다.
“김서준, 뭐 하냐~”
대체 알려준 적도 없는 비번은 어떻게 알았는지 애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박 협회장의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거칠게 열어젖혀지자 그리 달갑지 않은 환한 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방의 불까지 켜지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와,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 그냥 폐가인데?”
“환기 좀 해라. 청소도 하고. 폐인도 아니고 진짜.”
커튼을 걷고 그 속에 가려져 있던 창문을 활짝 열며 최 소장이 말했다. 아직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애들이 거실을 뒤지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전해졌다.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하는 듯 김 원장이 소리쳤다.
“야, 김서준! 너 이거 비타민 왜 안 챙겨 먹어! 기껏 애들이랑 고민하고 이거저거 비교해 가며 좋은 거로 사줬더니만 포장도 안 뜯었네. 하아, 저 자식을 진짜 어떻게 하지.”
“입을 찢어서라도 억지로 집어넣어야지.”
거실에서 김 원장과 천 팀장의 잔소리 섞인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좀 낮춰라, 김이담. 적당히 시끄러워야지.”
“뭐? 아 진짜 저 싸가지……! 갑자기 왜 시비야, 이태호!”
“시끄럽다 했다.”
“네가 더 시끄러워!”
뒤늦게 들어온 이 대표의 말에 어김없이 둘의 투닥거림이 시작되었다. 시끄러운 대화 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저것들 또 시작이네.”
박 협회장이 한마디 나직하게 내뱉었다. 한숨을 푹 내쉰 뒤 그대로 침대에 눕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으며 몸을 휙 돌리자 누군가 이불을 획 가져가 버렸다.
“일어나라. 침대에 어지간히 누워있고.”
한 협회장의 목소리가 사부작 이불 개는 소리와 함께 전해졌다.
“일어나라고, 좀.”
내 팔을 덥석 잡은 한 협회장이 나를 일으켰다. 강제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눈부신 빛과 활기찬 애들의 목소리에 오랜만에 눈앞이 환하고 침묵 속에 머물던 이명과 죄책감의 소리가 사라졌다.
“김서준, 이거 뭐야.”
책상 쪽을 기웃거리던 이 대표의 손에 녹빛의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나는 황급히 완전히 일어나 그의 손에 있던 유리병을 낚아챘다. 나를 향하는 이 대표의 시선에 의구심이 가득 담겼다.
이건, 독약이다. 달 속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다는 거짓부렁으로 이 대표에게 받은 소량의 달 속성을 이용하여 섭취하자마자 단번에 목숨이 끊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달 속성이 주재료이기에 살짝 피부에 닿기만 해도 곧바로 살이 타들어 가 녹을 것이다. 달 속성의 능력은 아직도 모든 정보가 밝혀지지 않을 정도로 무궁무진하고 그토록 강하니까 더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겠지. 이 독약을 만든 나도 장담하지 못하는 문제였다.
“뭐냐고 그거.”
이상함을 눈치챈 이 대표가 더욱 진지하고 심각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나는 그때 괜한 자신감이 들었을까. 아니, 오랜 친구들을 보자 그간 버텨왔던 게 한꺼번에 터졌던 모양이었을까? 그냥 거만과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 너희들이 있는 지금이라면…….
충동적으로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입에 가져다 댔다. 유리병을 기울이자 병을 타고 미끄러진 액체가 흘러나왔다. 손에 급히 퍼지는 달의 한기가 입술에서도, 입안에도 느껴져야 했고 식도를 타고 구석구석을 누비며 내 모든 장기를 다 부숴 망가트려야 했다. 신경을 모조리 마비시키고 어떻게든 독약이 몸 곳곳을 뚫고 심장에까지 도달하여야 했다.
그러나 첫 관문을 넘으려 하기도 전에 독약은 출발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 안착했다. 종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버둥조차 철저히 제지당했다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쨍그랑 -
갑작스런 악력에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한 유리병이 샅샅이 깨졌다. 작은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지며 그 속에 있던 투명한 액체가 성질이라도 내는 듯 멋대로 자신을 만진 그의 손을 흠뻑 적시며 점차 살갗을 녹여갔다.
“……야, 이태호. 너 그게 뭔지는 알고 그렇게 겁도 없이 잡은 거냐?”
“이게 뭔지 모르니까 잡았다고는 생각이 안 드냐?”
독약이 병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 대표가 손바닥으로 병의 입구 구멍을 막고 거칠게 독약을 가로챘다.
깨진 유리 조각이 손바닥에 박히고 투명한 독약이 자신의 피부를 녹여가도 이 대표의 표정은 일절 변화가 없었다. 그저 조금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냥 나 좀 내버려 둬라. 니들이 뭔데 계속 참견이야.”
순간 이 대표가 흠칫 몸을 떨었다. 평소와 확연히 다른 이 대표의 태도에 덩달아 내 몸이 움찔거렸다. 화가 난 건지, 겁에 질린 건지 모를 표정을 지은 이 대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리가 참견 안 하면, 죽을 거냐?”
낮게 읊조리는 내뱉은 이 대표의 말에 무거운 침묵이 곳곳에 퍼졌다.
“참견하면 안 죽을 거 같냐?”
그 말에 구겨진 인상을 피고 평소대로 표정을 지으며 이 대표가 자신의 오른손을 잠시 쳐다보았다. 손을 살짝 털어내자 피가 섞여 본래의 투명을 잃은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 대표가 자신의 왼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더니 곧이어 시선을 다시금 나에게로 옮기고는 주먹 쥔 왼손을 내 얼굴로 날렸다.
이 대표를 말리려던 주위 애들의 손보다 이 대표의 주먹이 더 빨랐다. 평소 이 대표가 잘 사용하지 않는 왼손인 데다 힘 조절을 했다는 게 느껴지는 데도 고개는 완벽히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꽤나 큰 소리의 뒤를 이어 꾸준히 유지되는 얼얼한 통증은 조금도 줄어들 틈도 보이지 않았다.
“너 못 죽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이 대표를 바라보았다.
“어떤 수를 쓰든 막을 거야. 죽어도 어떻게든 살릴 거야. 끝까지 참견할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하면서 괜히 힘 빼지 마. 네가 정상적으로 밤하늘에 가 있든 속성으로 죽어 어디로 간 지 모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려낼 거라고.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다 소용없어, 그러니까!”
답지 않게 언성을 높이며 이 대표가 덧붙였다.
“그냥 살아.”
열심히 살라는 것도, 힘을 내라는 것도 아닌 그냥 살라는 그 말에 왜인지 터져버린 서러움이 울컥 치솟았다.
“힘들면 말 좀 해라. 버거우면서 혼자 떠안고 있지 마. 앓지도 말고, 상처가 곪을 때까지 마냥 내버려 두지도 말고.”
반듯이 갠 이불을 살며시 침대 위에 올려둔 뒤 한 협회장이 내게 휴지를 건네었다.
“시간이라는 약은 아픔을 지워주는 약효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그때의 감정과 아픔을 더디게 해주면서 다 나았다고, 이젠 괜찮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지. 사실 하나도 안 괜찮은데. 아직 너무나도 아픈데.”
한 협회장이 건네는 휴지를 겨우 받았으나 손은 힘없이 툭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참고, 또 참을 뿐이었다.
“애초에 약이 아니라 환술에 가깝지.”
한 협회장은 무심히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에 면역이 있는 사람도 있어. 아무리 지나도 그 착각의 더딤마저 먹히지 않는 사람. 약효가 안 드는 약 억지로 먹어서 뭐 해, 속만 쓰리지. 세상 최고 약사가 그것도 모르면 어떡하냐.”
다정한 온기가 닿자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렸다. 결국 쭈그려 앉으며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내보내었다.
그들 덕에 정신은 빨리 차릴 수 있었으나 몸도, 마음도 망가질 대로 망가져 이미 산산이 부서진 상태였다.
너라는 빛이 없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