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53화
*
“독약……이라고.”
“네, 김 선생님께서 이 대표님께 전해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아버지가 하얀 손수건에 감싸져 있는 독약을 이리저리 살펴보시다 손수건을 푸셨다. 유리병을 가만히 들려다 보시는 아버지가 대체 무슨 생각 중이신지 파악할 수 없었다.
오래된 피아노의 소리가 문 너머로 계속해서 들려왔다. 고장 나버린 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음정도 엇나갔으나 무척이나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주며 부서진 화려함을 연주하였다.
그렇게 곡이 막을 내리자 다시 정세연 씨가 불투명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감사해요, 태호 씨. 덕분에 마지막 인사도 잘 끝냈고 소중한 선물을 받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에게 연신 감사를 전하는 그녀의 왼쪽 약지에 아까 김 선생님의 책상에서 봤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제 주인을 찾은 기쁨을 표하는 건가, 반지 케이스에 있을 때보다 유독 반짝임이 가히 빛나 보였다.
“그럼 이제 갑시다.”
아버지는 먼저 몸을 돌리셔서 약국 밖으로 걸어 나가셨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또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녀가 상냥한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정세연 씨도 약국을 나가자 옆에 있던 태윤 형이 나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련님. 덕분에 일이 잘 마무리되었네요.”
“아닙니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걸요.”
“에이, 도련님이 도와주셨기에 일이 이렇게나 수월히 끝난 거죠. 이럴 땐 의기양양하셔야 합니다?”
형은 웃으며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었다. 그런 모습도 잠시, 형이 한층 나직해진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도련님.”
나를 부르고는 태윤 형이 살짝 삐뚤어진 나의 넥타이를 매만졌다.
“한 번씩은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쌓아두면 안 좋아요. 마음에도 병이 생긴다는 거,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내 어깨를 몇 번 털어주며 형이 덧붙였다.
“절 마음껏 이용하세요, 언제든지 불러도 되고, 얼마든지 하소연해도 됩니다. 도련님이 부르시면 바로 달려갈 테니. 그러니 제발 아프지만 마세요. 상처가 곪을 때까지 내버려 두지도 말고.”
“……네, 실장님.”
“네? 누구요? 실장님?”
장난스레 불만 가득 떠안은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태윤 형의 말에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을 번복했다.
“형이요, 형.”
지그시 나를 노려보던 형이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으이그, 언제 이렇게 다 컸습니까? 제 허벅지까지 밖에 안 오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머리를 마구 헝크는 형의 손길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보다 어른이신 분이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때가 어언 오 년 전 일일 테니.
“저는 이만 이 대표님께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아가씨랑 셋이서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해요.”
“네, 들어가세요.”
태윤 형이 멀어진 걸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새로운 단서가 나왔으니 다시 기존에 있던 정보를 취합해 실군단에 대해 최대한 알아내야 했다. 그래, 알아내야지. 알아내야 하는데…….
조금, 지친 건가.
그때였다.
“이 대표님?”
정세연 씨와 함께 떠나셨던 아버지가 약국으로 돌아오셨다.
“아직 안 갔느냐.”
“이제 막 복귀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나를 지나쳐 굳게 닫혀있는 문 앞으로 걸어가셨다.
“그…….”
문고리를 잡으신 채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아버지가 나를 일별하셨다. 무언갈 말씀하시려는 듯 입을 여셨다가 이내 닫으며 시선을 다시 앞으로 옮기셨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서 가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문을 여시고 김 선생님이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분명 굳게 닫혀야 될 문이 미세한 틈을 포용했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두 분의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이 대표. 왜 또 왔어.”
“이거.”
탁, 책상에 무언갈 두는 소리와 함께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곧이어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나 혼내려고 온 건가?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일찍일 줄은 몰랐는데.”
“고맙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말에 김 선생님도 나처럼 놀라셨을까.
“약속, 지켜줘서.”
“……너와 약속인데 어길 일이 있나. 전에 네가 그랬잖아, 세연이 떠나고 맞이한 첫 봄에 내가 처음으로 이 독약을 만들었을 때. 이게 네가 슬픔을 조금이라도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독약 만드는 것까진 좋은데 다시 만들고 너한테 안 주면 죽여버리겠다고. 독약 먹고 죽은 뒤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누군지 잘 기억하라면서.”
속성 대표님들의 오래전 이야기 가운데 나직한 김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섞였다.
“그땐 진짜 바로 먹으려고 했는데 너랑 애들이 뜯어말렸었지.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아~ 나 그때 누구한테 주먹으로 맞았었더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과했잖나.”
“알지, 알지. 기억하고말고. 그리고 네가 발끈할 만했어. 뭐,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오기로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근데 그때 진짜 아팠다, 인마. 맞고 제대로 정신 차렸지만.”
“그건 그렇고, 이건 또 대체 언제 만든 거냐. 내가 너한테 달 속성을 준 적이 있었나?”
“아니, 뭐…… 저번에 약 연구한다고 너한테 달 속성 받았었잖아, 그때 다 끝내고 조금 남아서…….”
“허.”
짧은 헛웃음과 함께 아버지가 말을 이으셨다.
“정확하게 딱 떨어지게 양 계산 다 했다며.”
“아이, 부족한 것보단 남는 게 낫잖나.”
“하여튼 사람 꼬시는데 재주 들린 미친놈이지.”
“와, 그 말 언제 적 거냐? 되게 오랜만에 듣네. 몇십 년 만에……, 잠시만, 아니지.”
끼익,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신 듯한 김 선생님이 자리를 고쳐 앉으시는지 바닥에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연이었다.
“내가 네 그 말 때문에 학창 시절 내내 별명이 바람둥이였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부아가 치민다 진짜.”
“맞는 말이잖아.”
“맞긴 뭐가 맞아. 진짜 맞고 싶냐?”
나한테는 세연이 밖에 없어, 라며 덧붙이시는 김 선생님의 투덜거리심이 어째선지 조금 씁쓸하게 전해졌다.
“그보다 독약 만드는 조건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아버지가 이제야 의자에 앉으시는 듯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다시 만들기 전에 죽을 만큼 힘들다고 나한테든 애들한테든 말했어야지. 그렇게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지만 말고 티를 내야 할 거 아니냐.”
문 너머 보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또다시 정세연 씨와 닮은 쓸쓸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김 선생님의 모습이.
“알고 있었어, 너 안 괜찮은 거. 헌데 일부러 말 안 꺼냈다. 네가 아니라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괜히 세연 씨 생각나게 해 네 아픈 상처를 더 건드리는 걸까 봐.”
아버지의 목소리에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이렇게 많이 아파하고 있을 줄 알았으면 그냥 괜찮냐 한마디 물어봐 줄 걸 그랬다.”
“…….”
“나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 바빠. 힘들다고 말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줄 수 있다고.”
“거짓말. 내가 너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거짓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짜 안 바쁘니까 제발 힘들면 불러라. 혼자 속으로만 앓지 말고.”
“누가 할 소린데. 너나 좀 그래라.”
“김서준.”
‘김 선생’이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가 김 선생님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자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 적막이 찾아왔다.
“……도헌이가 찾아오기 전까지 그냥 독약 먹고 밤하늘로 가버릴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 회의 끝난 뒤로부터 세연이 생각이 끊임없이 나 미치겠더군. 근데 그때 너희들 얼굴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그러니까…….”
먹먹하게 잠기는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끝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아 진짜, 내가 너희들 때문에 못 죽잖아…….”
깊게 내뱉은 숨에 연이어 희미한 김 선생님의 훌쩍임이 들려왔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찾아온다. 아무런 에고도 없이 멋대로 들이닥친 이별을 좋든 싫든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안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영원한 이별은 존재하지 않음을.
영원과 이별이라는 단어의 공존 자체가 이미 모순임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남을.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의 실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또 시작이군. 지긋지긋한 환청.
‘그러니 이별을 겪는다 한들 그리 슬퍼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과거에서부터 오는 그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머릿속을 잔뜩 엉켜놓았다.
……혹시,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날의 운명 속에 피어날 이별을 예측하고 계셨던 거예요, 사부? 그러면…… 미리 말 좀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이렇게 색 바랜 환청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사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건데.
“또 쓸데없는 생각…….”
혼자 중얼거리고는 미세한 두통을 느끼며 약국을 나갔다.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협회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기세였다.
저 먹구름이 불러일으키는 게 찰나의 소나기일지, 휩쓸려오는 폭우일지는 지켜봐야겠지.
비가 밀려오기 전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내 옆에 없는 사부가 그립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사적인 일로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는 모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차마 과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