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1화
누구에게나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협회 속에 머무는 한기가 몸 곳곳에 스며들어 내 모든 신경을 예민하게 깨웠다. 날카로운 바람이 내 살갗을 스치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나를 축축이 적셔 체온을 얼음의 온도와 동등한 숫자로 급격히 내려가게 만들었다.
그와 동반된 어지러움과 이명, 점차 심해지는 두통에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도헌.”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곧바로 현실이 자각되었다. 본부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가 섞인 약간의 소음과 본부의 모습이 내 눈앞에 선명히 나타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옆에 서 있는 진우의 눈빛에 의문이 담겨 있었다.
“아무것도.”
짧은 대답을 들은 진우는 더는 나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떠올리는지.
잊고 싶어도, 잊으면 안 되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그날의 흔적과 그날의 기억이 나를 처참히 무너지게 만든다. 자책과 죄책감, 후회와 미련, 그리고 서글픔을 담은 그리움. 차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안에서 뒤섞여 갔다.
그 순간, 본부에 경보음이 심각함을 알리며 우렁차게 울어댔다.
“협회 분수대 쪽에 얼음 속성 한 명, 번개 속성 한 명이야. 실군단의 짓은 아닌 것 같아.”
연희가 현재 협회에 나타난 불법 속성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화면과 협회의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커다란 푸른 창을 여러 개 띄워둔 채 말했다.
“특경부, 출발합시다.”
이 세상에는 속성이 존재한다. 속성은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능력으로 소수의 사람만이 소유하고 있다. 그의 종류는 총 일곱 가지로 불, 물, 풀, 번개, 얼음, 그리고 달과 해가 있다.
작은 불씨는 곧이어 큰 화마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듯 작은 오만이 불러일으킨 커다란 편견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속성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아득히 먼 옛날 옛 선조들로부터 속성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 간략히 속성 보유자들이 머무는 세상인 ‘협회’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성 보유자의 수가 늘어나자 협회의 규모도 점점 커졌고 그에 비례하여 속성을 악용하는 범죄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를 방지하고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속성 사용은 완전히 금하며 법을 어기고 속성을 사용한 자들을 ‘불법 속성 사용자’라 불러 치부하고 그에 맞는 처벌을 내렸다.
겨우 그것만으로는 경각심이 부족했는지 그럼에도 속성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생겨나자 이러한 불법 속성 사용자들로부터 협회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특수 속성 경호 본부’이다.
특수 속성 경호 본부, 줄여서 특경부는 총 아홉 명의 대원들로 현장에 나가 직접 상황을 정리하는 현장팀인 불 속성인 나, 물 속성인 이선아 누나, 서진우, 번개 속성인 박인혁, 풀 속성인 최이준 형이 있고 본부에 남아 정보를 확인하고 알려주는 본부팀인 얼음 속성인 박인화, 박연희, 풀 속성인 최이후, 최이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특경부의 리더로 특경부를 대표하여 이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짧은 음으로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착함을 알렸다.
협회로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JI 그룹의 꼭대기 층으로 가면 초승달 모양의 큰 조각상이 있다. 그 반짝이는 조각상에 약간의 속성을 가하면 된다.
나는 속성을 제어하고 있는 은색 팔찌를 손목에서 뺀 뒤 약한 불 속성을 조각상에 사용했다. 속성이 가해진 조각상이 백색의 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조각상의 빛이 우리를 협회로 안내하였다.
무전으로 본부팀에게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현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시끄럽게 높인 언성과 함께 미미한 속성을 서로 오가게 하며 다투고 있었다. 특경부의 등장에 주위의 몰려있던 사람들이 안심한 듯 다시 제 갈 길을 걸어갔다.
나는 그 둘 사이로 팔을 벌려 그들을 제지하였다.
“그만하시죠.”
나를 발견한 두 사람이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예상보다 상황이 쉽게 정리되겠네.
“아니, 저, 이도헌 님 그게 아니라, 그냥 단지 가벼운 말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좀 격해져서-”
“자세한 건 본부 가서 말씀하세요.”
“한 번만 봐주시면-!”
“자세한 건, 본부 가서 말씀하시라 했습니다.”
나는 남성의 말을 끊으며 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진짜 사소한 싸움이었어요. 속성도 사람에게 사용한 게 아니잖아요!”
“뒷감당이 가능하면 계속 말씀해 보시죠.”
나는 팔찌를 빼는 시늉을 하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입을 꾹 닫고 순순히 협조했다.
“연행해.”
내 말에 뒤에 있던 현장팀의 대원들이 두 사람을 연행했다. 대원들의 손에 이끌린 채 내 옆을 지나가며 한 남성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특경부의 광견 같으니라고…….”
특경부의 광견(狂犬). 말 그대로 특경부의 미친개.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부르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이제 본부로 돌아가서 자세한 설명을 들은 다음, 형벌에 관한 서류를 작성해 저들에게 주면 끝난다. 물론 그 뒤에 상세한 보고서도 써야 되겠지만.
대충 들어봤을 때 속성을 직접적으로 가하진 않은 것 같으니 벌금형 정도에서 끝날 것이다.
불법 속성 사용자들에 관한 특경부의 일은 당시 상황 정리와 형벌에 관한 서류, 후에 그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서 마무리된다. 그 이후의 일은 협회장님이 맡으신다.
협회에는 두 분의 협회장님이 계신다. 각 속성의 대표하시는 대표님들 중 불 속성의 대표이신 한 협회장님과 번개 속성의 대표이자 연희의 아버지이신 박 협회장님. 두 협회장님은 셀 수 없이 많은 협회의 일과 협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부터 규모가 큰 사건까지 협회의 모든 업무와 책임을 맡고 계셨다.
원래는, 그랬다.
현재는 한 협회장님이 실종되신 상태. 때문에 박 협회장님이 그 많은 협회의 모든 업무를 전부 맡고 계신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협회에서 가장 크고 밝게 반짝이는 건물인 협회장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협회장 집무실을 비롯한 평화로운 협회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나를 집어삼킨다. 기억이 되살아나기 전에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서서히 피어오르는 악몽을 억누르고 고개를 돌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앞서가고 있는 특경부 대원들을 향하여 걸어가던 순간이었다.
삐이이 -
귀에서 나는 의문의 소리와 함께 극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금방 다시 중심을 잡아 넘어지진 않았으나 이명과 두통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내 이름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지만 어지러움 탓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이도헌!”
이명은 금세 사라졌고 소리도 다시 정상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선아 누나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소란을 일으킨 두 사람은 진우와 인혁, 그리고 이준 형이 본부로 데리고 간 모양이군.
협회는 눈부실 정도로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사회에서 비가 오는 건가…….
“괜찮아?”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여전히 두통은 남아 있었다.
“오늘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소나기인가 보지. 괜찮아. 가자.”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순간 누나가 내 팔을 덥석 잡았다.
“가긴 어딜 가. 본부보다 협회장 집무실이 가까우니까 박 협회장님 집무실에서 약이라도 먹고 와. 그 둘 취조는 우리가 할 테니까.”
“됐어.”
“쓰읍, 어서.”
바쁘신 박 협회장님에게 괜히 방해가 될 것 같아 안 가려고 했지만, 따가운 누나의 눈빛에 마지못해 끝내 협회장 집무실로 향했다.
“접니다, 박 협회장님.”
박 협회장님의 집무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아, 도헌이냐. 들어오거라.”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박 협회장님은 언제나 그렇듯 바쁘게 업무를 보고 계셨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괜찮다. 그보다 무슨 일이냐?”
나에게 시선을 옮기시며 박 협회장님이 말씀하셨다.
“그, 두통 때문에…….”
그 말에 박 협회장님은 하던 일을 급히 멈추고 서랍에서 내 진통제와 물을 챙겨주셨다.
“여기.”
나는 박 협회장님이 챙겨주신 진통제를 먹었다. 진통제를 먹으니 두통이 조금은 완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 바쁘면 좀 쉬다 가거라.”
“감사합니다, 박 협회장님.”
“뭘 딱딱하게 협회장님이냐. 그냥 편하게 삼촌이라고 부르라니까.”
박 협회장님의 권유에 잠시 망설였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절대 속성 대표님들을 편하게 부르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박 협회장님과 둘만 있고 무엇보다 공적인 목적으로 찾아온 게 아니니 잠시는 괜찮으려나.
“아, 네. 삼촌.”
박 협회장님은 뿌듯하게 웃으시며 내 맞은편에 앉으셨다. 짧은 탄식과 함께 박 협회장님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하였다.
“사회에는 비가 오는 모양이군.”
협회의 날씨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했다. 그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원망스러울 정도로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집무실로 들어왔다.
“또다시 일 년이 지나버린 건가.”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힘없이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항상 이날만 되면 사회든 협회든 꼭 한 곳에는 비가 내리는군. 마치 하늘도 그 녀석을 그리워하듯. 그렇지 않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나직한 미소를 지으신 채로 깊게 박 협회장님이 한숨을 쉬셨다.
“벌써, 오 년이나 지났군그래.”
박 협회장님이 혼잣말하듯 말을 꺼내셨다. 문득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았다.
오 년.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렀다.
책상에 있는 전화가 울리자 박 협회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전화를 받으시며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하셨다.
오늘은 한 협회장님이 실종되신 날이다.
정확히는 오 년 전, 내가 스무 살 때 일어난 일이다.
브런치에 '불의 나비'를 연재하게 된 중학생 작가지망생, 매화연이라고 합니다. 매주 월, 수, 금 오후 7시에 연재될 불의 나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