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속성 대표이신 덕에 나는 어릴 때부터 속성 대표님들을 삼촌, 이모라 부르며 대표님들과 가깝게 지냈다. 어려운 대표님이라는 딱딱한 직책이 아닌 친한 삼촌, 이모로 지내던 다른 대표님들과는 달리 유독 한 협회장님은 내게 더욱더 특별한 존재였다.
한 협회장님은 그저 친한 삼촌이 아니었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나의 사부셨다. 언제부터 어쩌다가 한 협회장님을 사부라 부르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협회장님, 그러니까 나의 사부는 좋은 스승이자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셨다. 속성을 다루는 법도, 속성에 대한 지식도, 협회에 관한 것도,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도, 그리고 슬픔을 표출하는 법도,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도. 부족함으로만 채워진 나에게 사부가 많은 것을 하나하나 친히 가르쳐 주셨다.
나의 아버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의류 브랜드 대기업인 JI 그룹의 대표이자 유일한 달 속성의 보유자이며 달 속성의 대표이시다. 특경부를 비롯한 속성에 관한 모든 것은 전부 아버지의 권한이었다. JI 그룹의 꼭대기 층에 협회가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의 엄마는 JI 그룹의 소속인 최상의 의료로 고명한 JI 병원의 병원장이자 유일한 해 속성의 보유자이며 해 속성의 대표이시다.
한 회사의 대표, 한 병원의 원장, 그리고 속성 대표라는 직책은 막대한 권력과 권한을 쥐고 있었고 그만큼 그의 책임도 컸으며 업무도 끊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각자의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다. 주말에도 밤늦게나마 집에 들어오실 정도였다. 그 때문에 나와 누나는 부모님과 함께 있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바쁘신 탓에 우리의 곁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언제나 업무를 쫓으시며 미안함을 금치 못하셨을 부모님을 이해하나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었고 부모님을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속에서 때론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외로움에 치여 지쳐있을 때 내 옆을 지켜주셨던 분은 사부였다.
넘어질 때면 기꺼이 내어주시는 사부의 손이, 항상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르는 사부의 목소리와 나를 향한 사부의 미소가 계속해서 오늘을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사부가 있었기에 나는 웃을 수 있었고, 울 수 있었고, 힘들 때도 꿋꿋이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행복한 일상이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폭풍전야는 늘 고요하다지.
그날은 사회에도, 협회에도 비가 무수히 쏟아지는 날이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폭우라 해도 될 정도로 꽤 많은 비가 세상을 적셔갔다.
평소와 같이 사부의 집무실에서 있던 중에 순간 집무실 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분명 비 때문에 창문을 꼭 닫아 찬 공기가 들어올 공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도헌아, 추우냐?”
창문을 두들기는 비를 빤히 바라보던 나에게 사부가 물으셨다.
“아,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요.”
이상할 정도로 주변의 온도가 순식간에 낮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온이 점차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부의 시선을 따라 나도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상의 소리를 삼킨 빗소리만 들릴 뿐인 창밖에는 유난히 고요하였다. 어째 조금의 인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기분 탓이려나?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구나. 한번 나가봐야겠어.”
“같이 가요, 사부.”
사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옮기셨던 걸음을 장롱 앞에 우뚝 멈추셨다. 잠시 고민하시더니 장롱을 열어 안에 있는 검자루를 챙기셨다.
우산을 챙겨 사부와 함께 협회장 집무실을 나섰다. 밖으로 발을 내딛자 수없이 떨어지는 비와 더불어 한겨울의 바람을 연상케 하는 서늘함이 우릴 맞이하였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 한들 이 정도로 길가에 사람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얼음?”
아무리 날씨가 흐리다 한들 안개가 이리도 짙게 퍼질 일은 없으며 더군다나 바닥에 얼음이 깔려 있을 일도 없었다.
나는 바닥에 있는 얼음은 손가락으로 쓸며 중얼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협회 길가에 원인이 불명한 얼음이 뒤덮여 있었다. 협회장 집무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일수록 바닥뿐만 아니라 나무나 건물들까지 타고 올라갔다.
“얼음 속성인 것 같구나. 이 정도의 얼음 속성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천 팀장밖에 없을 터인데, 그렇다고 천 팀장이 했을 리는 없고.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역시 눈치가 빠르십니다, 한 협회장님.”
사부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기계음이 섞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강한 한기가 바람을 타고 전해져 오며 수북한 안개와 함께 그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얼음 속성으로 보이는 하늘색의 실이 엉켜 있는 듯한 가면이 그의 얼굴의 하반부를 가리고 있었고, 머리카락과 옷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짙은 안갯속에서 유일하게 그의 눈이 속성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듯 무척 밝게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넌 누구지?”
“음, 실군단의 우두머리라고 해두죠.”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는 호기롭게 웃으며 굳세게 쏟아지는 비에도 마다하지 않고 우리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실군단의 존재를 모르겠군요. 뭐, 좋습니다. 조금 빨라져도 상관없겠죠.”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순간 뒤에서 낯선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두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아니, 자세히 확인해 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저들의 피부는 하늘색의 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고 있지만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숨을 쉬고 있었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로 향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시는 사부가 짧은 망설임을 보이셨다.
“……부탁하마,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나는 옅은 미소를 짓은 채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완전히 뒤를 돌아 ‘실군단’이라는 존재와 마주하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우산을 바닥에 던지고 팔찌를 손목에서 뺐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나의 턱선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는 점차 나를 적셔가며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려 놓았다.
나는 불 속성을 사용하여 불의 나비를 소환했다.
속성 보유자들은 각각 본인이 속성을 쓰는 고유의 능력이 있다. 속성 종류는 일곱 가지로 한정되어 있으나 고유의 능력은 같은 속성일지라도 모두 다르다. 불의 나비는 내가 속성을 사용하는 고유의 능력이다.
불의 나비들이 실군단에게로 날아갔다. 생각보다 민첩한 실군단의 움직임과 고군분투를 하던 불의 나비가 끝내 실군단을 놓쳤다.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실군단을 쫓으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그때, 뒤에서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짜악! 채찍처럼 날아온 실이 팔에 새빨간 자국을 선명히 새겼다. 서늘한 감촉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냉담을 남기며 고스란히 녹아든 얼음 속성의 한기가 점차 온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한번 날아오는 실을 보자마자 나는 급히 자세를 낮췄고 실이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불의 나비를 다시 소환하였다.
그들의 집중을 온전히 받는 건 나였고 붉은빛에게는 매정할 정도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건 그 빛이라는 것도 모른 채 실을 되잡아 휘두르려던 때 그 속에 들어간 불의 나비가 그들의 몸 전체에 붉은빛을 퍼트렸다. 연이은 소멸에 금세 실군단이 전부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긴장이 느슨해지자 오른팔에 새겨진 상처가 따가움을 유발하기 시작하였다. 오른팔의 상처를 감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이상의 실군단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눈에는 실군단의 우두머리와 싸우고 계시는 사부의 모습만이 비칠 뿐이었다.
붉은 꽃잎과 하늘색의 실이 엉킨 듯한 광경은 아름다움과 참혹함을 동시 공연했다.
이 싸움은 사부가 이길 수 없다. 이미 협회는 저 자의 본진으로 바뀌었을뿐더러 사부는 절대 내가 가까이 있어 다칠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실 분이 아니시다. 차라리 내가 그와 대면하는 게 나았다. 빨리 가서 사부를 도와야 했다.
도와야 하는데……?
불과 몇 초 전까지 앞에 있던 사부와 우두머리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시선을 옮겨보아도 얼어붙은 협회만 보일 뿐이었다.
“도헌아!”
뒤에서 들리는 다급한 사부의 목소리에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사부……?”
내 앞을 막고 계시는 사부의 오른쪽 어깨에 박힌 검이 자신을 이루고 있는 하늘색의 실을 빛내었다.
“풋, 푸하하하!!”
사부를 조롱하듯 우두머리는 마음껏 입을 찢어댔다.
“아아, 이런. 너무 눈물겨운 장면에 그만.”
겨우 폭소를 그치고 웃음이 불러일으킨 눈물을 닦으며 그가 말했다.
“아주, 좋은 사부를 두었군.”
나를 향했어야 될 검을 받아낸 사부의 어깨에서 흐르는 피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하늘색의 선명한 빛이 속성으로 인한 상처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었다.
속성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오직 해 속성만으로 치유가 되고, 강한 속성의 힘이 깃든 상처에 신속한 해 속성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된 상태로 하루가 넘어가면 자칫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사부, 어깨가…….”
얼굴에 걱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사부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웃으시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셨다.
“괜찮으니 걱정 말거라.”
사부는 오른쪽 어깨에 있는 검을 단번에 뽑아 불 속성으로 손쉽게 태워버렸다. 검날의 끝까지 닿은 불꽃이 불타버린 검의 절망을 빌며 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호흡을 가다듬은 사부가 속성 사용을 재개하셨다. 꽃잎을 동반한 붉은빛이 사부의 검날을 휘감았다. 속성으로 둘러싸인 검이 다시금 자신에게 향하는 걸 보고도 우두머리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눈으로 반달을 그려내며 그저 가만히 나를 응시하였다.
“이제 막 공연의 서막이 열렸는데 벌써 결말부터 바라보는 행동, 정말이지 시시하기 그지없네.”
사부의 검이 우두머리의 목에 닿기 직전, 연한 선홍색을 띤 안개가 협회 곳곳을 물들였다.
“도헌아, 숨 쉬지 마!”
급히 공격을 멈추신 사부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시며 소리치셨다. 사부의 목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 곧이어 한 번 더 가첨하여 밀려오는 안개가 시야를 차단했다.
“콜록, 콜록……!”
앞도 보이지 않던 짙은 안개는 빠른 속도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안개가 완전히 걷혀질 때쯤 협회에 남아 있던 건 세상을 덮은 녹지 않은 얼음뿐이었다.
사라진 건 안개만이 아니었다. 실군단의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사부도 사라지셨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협회를 방랑하는 한기는 내 발걸음을 얼어붙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협회를 돌아다니며 사부를 찾았다.
두 음절을 담은 간절한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운명은 사부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나의 세상을 앗아간 운명이 지극히 원망스러워 차마 떨림을 담은 목소리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끝내 한계에 다다른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JI 병원의 한 병실에 누워있었다. 회복을 하고 있는 나에게 상황을 마무리하신 박 협회장님이 한 소식을 전해주셨다.
“협회에 사상자는 없었다. 큰 피해도 없었고, 얼음 속성 제거 작업도 다 끝났어. 한데 한 협회장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더구나.”
박 협회장님은 내가 자리를 비웠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라며 자책하셨다.
대체 내가 왜 협회에서 쓰러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그 이유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확실히 기억에 남는 건 진한 매화의 향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