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03화

제1막 서막(完)

불의 나비 3화

by 매화연

그 뒤로 나는 비가 내리면 두통을 겪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사부가 사라지자 나의 하늘은 산산이 무너져 내렸고, 일어나는 법을 잊어 넘어진 상태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오로지 매일같이 내 곁을 맴도는 죄책감뿐이었다.


사부가 사라진 것 나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밖으로 나가는 사부를 말렸더라면, 그날 사부의 곁에 내가 없었더라면, 이런 결말을 초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부를 향한 그리움에 숨이 막혀왔지만 나의 슬픔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사부의 행방이었다.


슬픔은 그저 독일뿐이다. 그와 그리움이 만나면 생명은 죄악이 된다.


사부의 생사가 불확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마냥 슬퍼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슬픔을 겉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 놓아버리고 싶고 한 걸음 더 내디딜 일말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나 내가 어떻게 사부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사사로운 감정은 버리고 그 어떤 단서라도 샅샅이 찾아내야 했다.


특경부의 리더로서, 사부의 제자로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어떤 일을 해서라도 사부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설령 목숨을 잃는 것일지라도.


무심코 바라본 창문에 걸린 햇살이 집무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사부도 이 햇살을 보고 계실까.


그때였다.


퍼어엉 - !


갑작스러운 큰 폭발음에 깜짝 놀란 틈도 없이 나와 박 협회장님은 바로 협회장 집무실을 나서서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밖으로 나가니 가던 길을 일시 멈추고 그 자리에서 웅성거리는 협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원인은 하늘에서 어지러이 낙화하며 세상을 물들이는 붉은색의 수많은 꽃잎이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붉은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손에 닿은 꽃잎은 얼마 못 가 곧이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꽃잎이 떠나간 손을 가만히 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불 속성으로 이루어진 붉은 꽃잎은 사부가 속성을 사용하시는 고유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 꽃잎들은 사부의 꽃잎이 아니었다. 불 속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사부의 꽃잎과 모습만 닮은 그저 한낱 역겨운 모방품일 뿐.


사부의 꽃잎은 언제나 찬란하게 빛났다. 마치 사부의 모습처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사부의 꽃잎, 그 속에 담긴 빛을 감히 따라 할 수 없다.


붉은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꽃잎은 푸르른 하늘과 사람들의 걸음이 닿는 땅을 붉게 칠했다.


누군가 사부의 꽃잎을 모방했다. 속성도, 위험성도 없어 보이는 무해한 꽃잎을 만들어 협회에 널리 퍼트렸다. 게다가 마치 다 보라는 듯 큰 폭발음으로 협회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래, 분명 실군단의 짓이겠지. 이 정도 규모의 일을 벌일 세력은 현재 실군단 밖에 없다. 도대체 왜? 그저 나를 농락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무의미한 짓을?


경고라기엔 비효율적으로 쓸데없이 규모가 컸다. 의미를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도 작았다.


실군단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난해한 생각으로 어지러워진 머리가 다시금 미세하게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순간 울린 무전기에 그제야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너 괜찮아?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


벨트 뒤쪽에서 꺼낸 무전기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더니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있어. 위험하진 않아 보여. 속성도 아닌 것 같고.”


주위를 둘러보며 진우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있을 때, 옆에 계시던 박 협회장님의 쓸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꽃잎과 무척 닮았구나.”


나는 입 가까이 가져다 댔던 무전기를 잠시 내리고 떨어지는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일찍이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꽃잎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 순간, 그저 평범한 꽃잎들 사이에서 내 시선을 완벽히 빼앗아버린 한 꽃잎이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며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그 꽃잎은 날빛보다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꽃잎을 조심스레 잡았다.


사부의 꽃잎이었다.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이 빛은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하기 충분했다. 속성이 많이 미약한지 나를 위로할 정도의 자그마한 온기만을 담고 있던 꽃잎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말았다.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졌다. 심장이 도약하고 손이 떨린다. 나는 눈물을 삼키려 아직까지도 미처 땅을 밟지 못한 꽃잎들이 새겨져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삼라한 꽃잎들에 섞여 있던 단 하나의 사부의 꽃잎이 내 앞에 떨어졌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지도 모른다. 사부의 염원과 내 염원이 너무나도 간절하여 결국 만나 우연이 필연으로 바뀐 운명 같은 기적.


사부는, 살아계셨다. 방금 내게 따뜻한 온기를 선사하고 간 꽃잎은 그 누구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사부의 꽃잎이 분명하였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어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현 사건에는 많은 일들이 얽혀있는 듯했다. 복잡해진 사건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박 협회장님.”


“어, 그래. 수고해라.”


나는 박 협회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특경부 대원들에게로 갔다.


“서둘러. 시간이 부족해.”


“뭐야, 무슨 일인데.”


어리둥절해하는 진우를 지나치며 앞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시작됐어.”


“대체 뭐가?”


인혁의 물음에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공연이.”


결말은 아직 오지 않았었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찾아오고 있는 아주 먼 미래, 어쩌면 나의 선택에 따라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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