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로 돌아가기 전 나는 이태호 대표님,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이 아버지의 집무실에 와보았지만 올 때마다 긴장이 온몸을 뒤덮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집무실 앞에서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짧은 두 번의 연주가 끝이 나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나는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이 닫히고 압박을 담아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방금 협회에 발생했던 일에 대해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이 대표님.”
아버지의 책상 앞에 서서 방금 협회에서 일어났던 붉은 꽃잎 사건을 아버지에게 자세히 보고하였다.
특수 속성 경호 본부는 사부의 실종 직후 곧바로 생겨났다. 특경부가 만들어진 뒤 가장 먼저 아버지는 특경부의 대원들을 불러 모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명심하거라. 세간에는 불법 속성 사용자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특경부가 만들어졌다, 라고 알려질 거다. 하나 특경부가 만들어진 본래의 목적은 실군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한 협회장의 행방에 관해서도.”
불법 속성 사용자로부터 협회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명목적인 대의명분 아래 있는 특경부의 본 목적은 실군단과 사부의 행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다.
“한 협회장님은, 살아계십니다.”
오 년 동안 아무런 흔적도, 단서도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들은 오 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사부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던 상황에서 사부가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물적 증거가 나왔다. 확연히 기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서늘한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유지되었다. 어떠한 말씀도, 자그마한 움직임 하나도 없이 그저 책상에 놓인 서류를 빤히 바라보실 뿐이었다.
결국 나의 시선은 또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무심하고 차가운 성격은 언제나 나의 시선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했다.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다섯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많지 않았으나 그 조금의 시간마저도 추억이라 부를 만큼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외려 어른이 되어 아버지가 나의 직속 상사로 계시는 지금이 어릴 때보다 아버지와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아버지를 마주하는 것 같다. 물론 업무 이야기에다 공적인 자리뿐이긴 하지만.
팔랑,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집무실 가득 채워졌다.
다시금 반복되는 숨 막히는 분위기와 지극한 고독. 너무도 싫다. 당장이라도 집무실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 한 협회장과 실군단에 대해 계속 조사해라. 방금 있었던 일은 보고서로 작성해서 나한테 올리고.”
서류에 시선을 고정하시고 단 한 번도 나에게 눈길을 주시지 않은 채 그저 내 말을 묵묵히 들으시던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여셨다.
“네, 알겠습니다.”
본부로 돌아오자마자 대원들에게 붉은 꽃잎 사건을 간략히 설명해 준 후 본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큰 화이트보드를 꺼내왔다.
본격적으로 정보를 알아낼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보드마카를 들어 오 년 전 모든 것의 첫 디딤돌이 된 그날의 사건, 방금 협회에서 발생하였던 붉은 꽃잎 사건, 그리고 이때까지 알아낸 실군단에 대한 정보를 세세히 기록했다.
오 년 전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우리는 ‘실군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실군단, 얼음 속성으로 추정되는 하늘색의 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군단의 우두머리가 만들어낸 마치 군단처럼 매번 많은 수가 함께 나타나는 존재.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은 수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항상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 위험한 존재이다. 특히 우두머리도 같이 나선 경우에는 더더욱.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모든 사건과 정보가 정리되어 있는 화이트보드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하게 보이는 공통점은 두 사건 모두 사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가 관건인데.
오 년 전에는 사부의 실종이라는 명확한 결과가 발생하였다. 한데 이번 경우는 그들의 목적도, 결과도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기 위해? 아니, 공포는 무슨 그에 대한 호기심조차 찰나였다. 누군가에게 무언갈 알리기 위해? 나를 제외한다면 그 꽃잎은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기껏해야 그 당시 협회에 있었던 특경부 대원들과 박 협회장님뿐.
오 년이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기간을 떠나보내고 겨우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게 고작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오로지 유흥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공포를 심는다거나 무언갈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냥 진짜 나를 농락하려고?
“허.”
보잘것없는 속셈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잠시 흐트러진 집중을 다시 되찾았다.
이번에는 우두머리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사부의 꽃잎은 단 하나. 나머지 다른 꽃잎들은 속성이 깃들어 있지 않아 위험하진 않았지만 자칫 속을 수 있을 정도로 사부의 꽃잎을 꼭 빼닮은 완벽한 눈속임이었다.
누군가 사부의 능력을 복제했다. 하지만, 우두머리는 불 속성이 아닌 얼음 속성에다가 남의 속성을 복제하는 능력도 없어 보였는데.
배후에 또 다른 이가 있다는 건가. 그것도 속성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공연이라는 유치한 개념 아래에 최종의 무언갈 꾸미고 있다. 앞으로 몇 차례의 공연이 반복될지, 어떤 일을 벌일지 현재로선 알아낼 방도가 없어 막연하기만 할 뿐이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뒤 책상에 앉아 아버지에게 올릴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두 자신의 업무에 온 집중을 쏟은 본부 속에서 자연스레 유지되던 침묵을 깬 범인이 한 명 나타났다.
“아, 찌뿌둥해라.”
기지개를 쭉 켜던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의자를 끄는 소리에 멈추지 않고 움직이던 손가락이 우뚝 정지되었다. 깨진 집중력에 살짝 미간을 찌푸릴 때 다시금 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협회에 커피 사러 갈 건데, 마실 분?”
그 한마디에 특경부 대원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었다. 대원들의 행동에 진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다 먹는 거지?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아홉 잔 사 온다.”
“서진우, 카드 들고 가.”
내가 건네주는 법인카드를 받고 진우는 협회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침묵 섞인 집중이 금세 다시 본부 곳곳을 누볐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슬슬 몸이 뻐근해질 무렵, 이번에는 인혁이 고요히 흐르고 있던 침묵을 깨버렸다.
“뭐야, 서진우 왜 이렇게 안 와?”
문득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진우가 나가고 난 뒤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내가 진우한테 전화해 볼게.”
선아 누나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진우에게 전화를 건 뒤 스피커폰으로 바꾸고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었다. 계속 기다려도 누나의 폰에서는 진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안을 점차 키우는 통화 연결음만이 본부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도헌이 형, 이것 좀 봐봐.”
본부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이후가 본부 책상에 설치되어 있는 조작기의 몇 가지 조작 버튼을 누르며 푸른 창에 CCTV 녹화본을 띄웠다.
허공에 띄워진 크게 확대된 화면 속에서는 진우가 양손 가득 커피를 들고 본부로 복귀하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특이점이 전혀 없는 녹화본 속 진우가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갑작스레 뒤로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뒤로 지지직, 소리와 함께 녹화본이 끊겼다.
“……인화랑 연희는 서진우 무전기에 연결 시도하고, 쌍둥이는 협회 CCTV 돌려 보면서 서진우 어디로 사라졌는지 확인해 줘.”
나는 침착하게 본부팀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화랑 연희, 그리고 쌍둥이인 이후랑 이현이 각자 맡겨진 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의 배후에는 분명히 조력자가 있을 것이다. 만약, 실군단이 진우를 습격했다면…… 특경부 대원이 무방비 상태로 혼자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우두머리가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조력자, 아니 조력자‘들’도 모두 나섰겠지.
그러면, 진우가 위험하다.
“현장팀, 빨리 협회로 갑시다.”
현장팀 대원들과 함께 최대한 빨리 협회로 달려갔다.
협회에 도착하고 나서도 나는 한 손에 무전기를 놓지 않은 채 본부팀과 연락을 지속하였다. 본부팀이 계속해서 진우의 무전기에 연결을 시도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쌍둥이, CCTV는?”
“아까 보여준 거 말고는 녹화가 안 됐어. 주변 CCTV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잘 작동 중인데…….”
무전기는 연결이 안 되고, CCTV는 녹화가 되지 않았다. 찾을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마음만 급해질 따름이었다.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자.”
협회로 커피를 사러 갔다 했으니 협회 밖으로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지체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진우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곳곳으로 흩어진 대원들과 멀어져 협회를 빠르게 수색했다. 평화롭기만 한 주위를 꼼꼼하게 둘러보고 있던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이준 형이었다.
“여기 길에 다량의 커피가 쏟아져 있어. 아마 진우가 산 커피 같아. 플라스틱 컵도 딱 아홉 개인 데다 주위에 혈흔도 있고. 분수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바로 나오는 골목 안으로 쭉 들어오면 돼.”
무전을 통해 전해지는 형의 목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내 발걸음은 이미 형이 말한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는 형이 보이는 거리까지 오자 바닥을 어지럽힌 물과 피의 흔적이 나를 맞이했다.
이 물은……, 물 속성이었다.
물 속성과 혈흔의 자취를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커피가 바닥을 흠뻑 적신 곳과 가까워질수록 물 속성과 혈흔이 점차 줄어들었다.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형의 말대로 쏟아져 있는 커피와 찌그러진 아홉 개의 플라스틱 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바닥에는 작게 금이 간 팔찌도 하나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밟은 듯했다.
팔찌 박혀 있는 보석이 빛과 색을 잃은 채 처연히 잿빛을 풍겼다. 팔찌 안쪽을 확인하니 ‘서진우’라는 석 자가 확실하게 각인되어 제 주인을 알리고 있었다.
“팔찌? 서진우 건가?”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인혁이 물었다. 뒤를 돌아보니 현장팀 대원들이 다 모여있었다.
나는 진우의 팔찌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성에는 각각의 대표색이 있다. 불은 빨간색, 물은 파란색, 번개는 노란색, 얼음은 하늘색, 풀은 초록색, 그리고 달은 하얀색, 해는 주황색이다.
팔찌에 있는 보석은 해당 팔찌의 주인이 팔찌를 착용하면 각 속성의 대표색으로 빛나고 팔찌를 빼면 색과 빛이 사라져 보석은 잿빛으로 변한다. 속성을 사용할 때 보석이 잃은 빛과 색은 속성을 사용하는 자의 눈으로 옮겨진다.
아직 마르지 않는 물의 흔적이 일렁거렸다. 이 정도 양이라면 고유의 능력도 사용했을 것이다. 아무리 진우가 상대적으로 속성 제어에 뛰어나다 한들 위험을 많이 감수했어야 했을 텐데.
“딱히 다른 흔적은 이제 없는 거 같은데…….”
선아 누나가 플라스틱 컵과 바닥에 쏟아져 있던 커피를 물 속성을 이용해 치우며 말했다.
그때, 무전기가 또다시 울림을 발생시켰다. 무전의 발신자는 본부팀, 정확히는 인화였다.
“무전기 연결 성공했어. 위치추적도 됐고. 일단, 진우 오빠 무전기는 도헌 오빠 무전기에 연동해 줄게.”
잠시 연결이 끊기는 듯 치지지직,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무전기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