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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사고 다시 본부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길을 걸어가던 중 저 멀리 누군가 달려오는 듯한 작은 발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불현듯 스쳐 가는 이유 모를 불안에 나는 곧장 뒤를 돌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소리의 원천이 되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 어린 남자아이가 내 쪽으로 급히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속도를 내어 더 다급하게 뛰어왔고 결국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아이에게 재빨리 다가가 커피를 잠시 바닥에 놓고 아이를 일으켜 주었다. 먼지가 묻은 아이의 손바닥을 살살 털어주며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꽤 세게 넘어졌는지 아이의 무릎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무릎의 상처가 아파서 운다기보다는 뭔가가 무서워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몹시도 서럽게 우는 아이를 안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다독여주고 있을 때, 아이가 달려온 방향을 뒤따르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울려 퍼졌다.
점차 커져가는 발소리는 골목의 적막을 처참히 무너트렸고 소리의 주범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걸어오는 그의 주위에 극심한 살기가 맴돌았다.
하늘색의 실이 엉킨 듯한 가면이 그의 얼굴의 하관부를 철저히 가리고 있었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하늘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얼음 속성을 보유한 자인가.
“당신은 누구지?”
나는 숨을 죽이고 눈물을 조용히 흘려보내는 아이를 꼭 안으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기계음이 섞인 남성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네놈은 뭔데 내 일을 방해하는 거지?”
하관부를 가린 가면,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 그리고 얼음 속성. 내 앞에서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그가 어딘가 익숙했다. 누군지 기억이 날 듯 나지 않아 애꿎은 입술만 지그시 깨물었다.
“외부인 같은데, 당신이 이 아이랑 관련이 있어?”
하, 그가 낮게 숨을 뱉어냈다.
“묻는 말에만 답하는 게 좋을 거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굳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거든.”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발소리가 증폭될 때마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몸의 떨림이 점차 심해졌다.
“다시 한번 묻겠다. 넌 누구지?”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서진우다. 특경부의 대원, 서진우.”
상대의 신상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나의 신상을 먼저 알려주는 것만큼 위험하고 무모한 짓은 없을 테지. 특경부라는 신분으로서는 더더욱. 그렇지만 만약 내가 그의 물음에 응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로 나를 공격했을 것이고, 그럼 아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절대 어린아이를 위험에 빠트리게 둘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위험해지는 게 훨씬 낮지.
내 말에 그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서진우……?”
그의 시선이 넥타이에 달린 특경부의 휘장으로 옮겨졌다.
종대를 이루고 있는 해와 달, 그 사이를 꿰뚫는 검, 그리고 한가운데 박혀 있는 흑과 백의 별.
은으로 만들어진 특경부의 휘장이 온통 검은색일 뿐인 제복 속에서 유일하게 달빛을 받고 반짝 빛나고 있었다.
“서진우……. 하, 특경부였군. 이도헌이 속해 있는.”
아, 드디어 생각났다.
실군단의 우두머리.
“내가 왜 너를 못 알아본 거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그가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그러자 도헌에게 말로만 전해 들었던 그놈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빛을 어떻게든 모방하려 애쓰는 실군단들이 서서히 한기를 뿜어냈다.
“그 잘난 특수 속성 경호 본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오 년 전 도헌의 앞에 나타났었던 우두머리가 현재 내 앞에 서 있었다. 그에 관해서는 도헌에게 익히 들었다.
실군단의 우두머리, 실군단을 만들어내 조종하는 위험한 자.
‘사부가 많이 봐주고 계시던 게 눈에 보이긴 했어. 바로 제압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혹시라도 옆에 있는 내가 다칠까 봐 많이 조심하시면서 행동하셨겠지. 뭐, 물론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사부한테 우두머리가 상대가 될 리 없을 테지만. 그런데, 만약에 우두머리의 상대가 사부가 아니라 나였다면 상황이 어떻게 뒤바뀌었을지 몰라. 직접 겨루어보진 않았으나 대충 보기만 했을 땐 꽤 실력이 있는 자 같았으니까.’
아 진짜, 왜 하필 우두머리랑 대치해야 하는 지금 이도헌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나는 바닥에 놓아두었던 커피를 발로 찼다. 하늘을 비행하는 커피를 그대로 뒤집어쓴 실군단이 시야가 차단되어 이리저리 길을 헤매고 있었다. 이걸로 조금은 시간을 벌었겠지. 나는 팔찌를 벗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아이를 감싸 안은 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차가운 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으나 마다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실군단은 나에게 반격할 틈조차 주지 않고 빠르게 쫓아왔다. 그들은 공격하는 방식도 다양하였다. 실을 채찍처럼 사용하는 이도 있었고, 활을 사용하는 이도, 검을 사용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아이를 최대한 보호했다. 실이 몸에 상처를 내도, 날아오는 검이 팔에 깊은 상처를 새겨도, 멀리서 날아온 화살이 뺨을 스쳐도,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옷을 다 적셔도 신경 쓰지 않고 아이를 꽉 안은 채 계속 달렸다.
순식간에 많은 상처가 생기자 순식간에 달리기의 속도가 줄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오른쪽으로 꺾인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앞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앉았다.
“하아, 하아…….”
가파른 호흡이 점차 진정되며 실군단이 던진 검에 스친 왼쪽 팔이 급격히 아려왔다. 얼음 속성으로 공격했는지 깊은 상처에 선명히 빛나는 하늘색의 빛이 품어져 나오며 찢긴 제복 사이에 피로 물든 벌어진 살갗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골목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표적을 놓친 실군단이 살기 섞인 한기를 끊임없이 내뿜으며 주위를 방황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속성을 사용하지 않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건가. 나는 최대한 조심스레 속성을 사용했다. 내 제어 아래 속성이 다뤄지는 선을 넘겨서는 안 되었다.
밀려드는 물 속성에 의해 실군단이 쓸려나가며 순식간에 그들이 사라졌다. 그나마 실군단의 약점이 속성이라 다행이군.
실군단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이를 진정시켰다. 아이는 자그마한 두 손으로 애써 입을 틀어막은 채 소리를 삼키고 그치지 않는 눈물을 조용히 흘리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숨 쉬어.”
아이를 안심시키려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의 눈물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괜찮아, 형이 여기 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이 지켜줄게.”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난히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온기에 저절로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지자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없었다. 곧 있으면 실군단과 우두머리가 올 것이다.
“꼬마야. 혼자 집 찾아갈 수 있어?”
조금 진정된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 손 잘 보고 있다가 형이 손가락을 다 접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뛰어가는 거야. 할 수 있지?”
“……형은…….”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형은 어떡해요……?”
많이 무서울 상황 속에서도 눈물에 젖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고 내 걱정이 담긴 한 마디를 내뱉는 아이의 행동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아이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형은 엄청 강해서 괜찮아.”
장난스러운 말에 그제야 아이가 작게나마 웃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겨우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내 뒤에서 나의 바지를 살포시 잡았다.
내가 더 이상 반격을 할 수 있을지,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나 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애당초 이 상태로 나 혼자서 우두머리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아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골목에서 나오자 저 멀리 우두머리가 이쪽으로 나릿나릿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실군단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우두머리만이 서 있었다.
나는 손을 등 뒤에 놓고 손가락을 세 개를 폈다.
“어이, 우두머리.”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오기나 하지?”
또다시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하, 기가 막히는군.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 건지…….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상태로?”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을 접었다.
“당연하지.”
멀어지는 아이의 발걸음 소리와 동시에 나는 우두머리에게로 달려가며 물 속성을 사용했다.
쏴아아! 파도처럼 그를 덮친 물 속성은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그가 손을 뻗자 순식간에 깡깡 얼었다. 뻗은 그의 손에 주먹이 쥐어졌고 그와 동시에 정체되어 있던 얼어버린 물 속성이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와장창 - !
곳곳으로 튀는 얼음 조각들 속에서 그의 눈동자의 빛이 다시금 나를 마주하자 곧바로 나는 물 속성으로 이루어진 삼지창을 소환해 그에게로 던졌다. 매섭게 바람을 가르며 삼지창이 날쌔게 날아갔다.
고유의 능력을 쓴 이번 공격은 그가 막지 못하였다. 꽤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 우두머리는 휘청거리고 말았다.
아니, 내가 휘청거리는 건가?
“아, 망할…….”
이제 더 이상은 무리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일순 눈앞이 깜깜해지며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어디선가 깊은 매화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작품 감상 중 헷갈리실까 봐 안내드립니다. 작품 속 * 표시는 시점이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