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07화

제2막 새로운 흔적(完)

불의 나비 7화

by 매화연

*


“협회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네?”


무전기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 듣기 거북한 잡음과 함께 선명치 않은 음질로 목소리가 전해졌다.


진우의 말이 끝나자 곧이어 차갑게 가라앉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마라. 내가 묻는 말에만 똑바로 대답해.”


실군단의 우두머리였다. 지그시 서로를 깨무는 어금니와 금방이라도 무전기를 부숴버릴 정도로 자연히 힘이 들어가는 손이 곧이어 이성까지 끊어버릴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현재 진우가 우두머리와 한 공간에 같이 있다. 어쩌면, 그의 조력자들도 같이.


우두머리의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진우의 무전기와 연결이 끊겼다. 무전으로 간단한 상황 파악 이상은 역시 무리였나.


“아, 끊겼다……. 더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본부와 연결된 무전기에서 아쉬워하는 이현의 목소리가 나왔다.


“위치는?”


“밑이야. 오빠가 지금 밟고 있는 바로 밑.”


아무렇지 않게 넌지시 던진 연희의 말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바닥을 유심히 보았다. 특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한 바닥이었다.


“어, 그러니까, 지하……라는 거지?”


애써 웃음을 유지하며 선아 누나가 내 무전기를 통해 연희에게 말했다.


“응, 지하.”


순간 모두 표정에 경혹함이 역력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한동안 몸이 굳은 듯 경직되었다.


“하하하, 이야……, 이거 어떻게 들어가냐. 뭐, 바닥을 뚫기라도 해야 하나?”


얼마 가지 않아 인혁이 어이가 없는 듯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


허탈하던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한껏 진지해진 인혁이 무언갈 알아낸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연신 바닥을 두드렸다. 주위의 여러 군데를 한참 두드리더니 고개를 들어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여기 안에 비어있어. 잘하면 뚫을 수 있을지도. 형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준 형이 속성을 사용하는 고유의 능력은 장미 줄기를 만드는 것. 그래, 형의 장미 줄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해볼게.”


팔찌를 손목에서 빼 형이 속성을 사용했다. 가시 돋은 두꺼운 장미 줄기가 바닥을 뚫으려고 애를 썼다.


우득, 우드득. 거친 소리를 발생시키며 바닥을 파고들려던 굵은 가시를 장착한 장미 줄기가 마침내 바닥에 구멍을 냈다. 작은 구멍이었지만, 내구성이 약해 보이는 바닥을 뚫기에는 충분한 구멍이었다.


형의 손에서 새로 탄생한 장미 줄기가 구멍을 파고들었다. 장미 줄기가 구멍을 마구 휘감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이 힘없이 쩌저적 갈라지며 안에 있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됐다!”


“역시 이준이 형!”


선아 누나와 인혁뿐만 아니라 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본부팀 대원들도 놀라며 감탄하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전해졌다.


나는 칭찬을 어색해하면서도 갈라진 바닥을 보며 들떠있는 동생들을 보면서 귀엽다는 듯 슬며시 미소를 짓는 형을 바라보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형의 능력은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하고 뛰어났다. 타고난 실력이지.


“빨리 들어가자. 시간이 부족해.”


우리는 장미 줄기의 가시를 조심하며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니 칠흑 같은 어둠에 온통 침식된 복도가 외부인을 한껏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팔찌를 손목에서 빼고 속성을 사용해 불의 나비 하나를 소환했다. 붉은빛을 발산하는 불의 나비가 앞길을 밝혀주었다.


불의 나비의 빛에 의존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도중 뒤에서 무언가 환하게 빛을 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밝은 빛에 뒤를 돌아보니 상당한 수의 실군단이 하늘색의 빛을 빛내며 우리에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실군단의 모습은 오 년 전 내 앞에 처음 나타났었던 실군단보다 한층 더 변화되어 있었다.


실뿐만 아니라 검, 그리고 화살과 활. 그들의 손에 얼음 속성의 실로 이루어진 새로운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살기와 한기는 더욱 깊어졌고 굳이 겨루어보지 않아도 실력이 다량 성장했다는 걸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자식들이 실군단이야?”


인혁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너는 진우한테 가봐.”


선아 누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인혁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어디 한번 몸 좀 풀어볼까, 라며 재밌겠다는 듯 웃음을 지은 채 실군단을 향해 입을 열었다. 누나와 형도 준비가 다 됐다는 듯 나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


나는 불의 나비와 함께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자아가 없어 보이는 실군단은 오직 우두머리의 조종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실군단을 이 이상으로 다루기에는 진우에게 온 집중을 쏟아붓는 게 방해되는 모양인 걸까, 다행히 내 앞길을 막는 실군단이 더는 존재하지 않아 막힘없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멈추지 않고 길을 걸어가던 중 어째서인지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귀에 맴돌았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마라. 내가 묻는 말에만 똑바로 대답해.’


문득 불안함이 커진 나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고요한 복도 속의 정적을 깨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조금만 버텨줘라, 서진우. 금방 갈 테니까.



아무리 뛰어도 어둠만 지속될 뿐 그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뛰던 발을 잠시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계속 옮겨가는 시선이 쉴 생각도 없이 여기저기를 탐색하던 그때, 불의 나비가 갑자기 앞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어둠 사이를 뚫으며 갑작스레 이동하는 불의 나비를 나는 서둘러 쫓아갔다.


꽤 긴 거리를 날아가던 불의 나비가 우뚝 멈춰 선 곳은 칠흑 속에 숨어 있던 어떠한 한 방이었다.


문에 달린 큰 유리창 너머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비쳤다. 나는 빛을 빛내는 불의 나비를 없앤 뒤 숨을 죽여 유리창으로 방 안의 상황을 살폈다.


희미한 조명이 달의 빛에 힘입어 어둠을 쫓고 있는 방 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우두머리의 조력자로 보이는 낯선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검을 들고 서 있는 실군단의 우두머리의 뒷모습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벽에 얼음 속성의 실로 묶여 있는 진우가 있었다.


우두머리가 들고 있는 검의 끝이 진우를 겨냥하고 있었다.


문은 분명 잠겨 있을 것이다. 공연히 위험을 감수하고 문고리를 내렸다가는 저들의 시선만 끌고 진우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난 뒤 망설임 없이 유리창을 향해 주먹을 쥔 손을 날렸다.



쨍그랑 - !



큰 소음과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으로 깨져 파편이 되었다. 나는 깨진 유리창을 넘어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도약을 위해 디뎠던 손바닥에 거칠게 깨진 날카로운 유리창의 잔해가 박혀 들어가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안개가 자욱이 깔렸다. 나를 맞이하는 차가운 한기를 무시한 채 나는 짙은 안갯속을 무작정 뛰어들었다. 안개가 점차 걷히자 진우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진우!”


나를 떠나 빠르게 날아가는 불의 나비가 진우를 감싸고 있던 실을 순식간에 소멸시켰다. 실이 사라지자 진우가 힘없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겨우 몸을 가누고 있는 진우의 오른쪽 팔을 내 어깨에 둘러 그를 부축하였다. 몹시도 차가운 그의 체온이 몸에 닿았다.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실의 한기를 몸이 고스란히 흡입한 모양인가.


진우의 몸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찢어진 특경부의 검은 제복은 붉은색을 띨 정도로 이미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가장 심하게 다친 곳은 왼쪽 팔의 깊은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늘색의 빛이 그가 속성 공격에 맞았다는 것을 명확히 고하였다.


“괜찮아?”


내 말에 진우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죽을 것 같은데…….”


그 말이 그저 한낱 농담인 마냥 웃으며 실없게 말하는 진우의 말과는 상반되게 그의 호흡이 거칠었다.


“야, 너 손바닥에서 피나잖아.”


진우가 내 오른손 손바닥을 보며 말했다. 깨진 유리에 찔린 손바닥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온 정신이 진우에게 가 있어 다친 손바닥을 보아도 상처에 비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여튼 이도헌, 자기 몸 막 다루는 버릇 좀 고쳐야 되는데.”


“네가 지금 나 걱정할 때냐?”


진우는 자신의 상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를 향한 잔소리를 쉴 틈 없이 계속 늘어놓았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진우는 다치지 않았을 텐데. 상처 하나라도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실군단이 언제, 어디서 우리를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속에 놓여져 있음을 잘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너무 안일해 있었다.


“꼬맹이 한 명 구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다친 거야. 네가 늦은 게 아니라.”


내 생각이라도 읽기라도 했는지 진우가 나를 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자책 그만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부가 사라진 후로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 부쩍 늘었다. 미련을 거부하고, 감정을 무시하여도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자책과 죄책감이 억지로 마음에 박혀 늘 주위를 맴돌았다.


오 년 전 그날을 절대 잊지 말라는 듯, 나의 행복은 철저히 묶어두고 잘못은 영원히 각인시키려는 듯.


진우의 발걸음에 맞추며 천천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거 보여? 아 진짜, 내 잘생긴 얼굴에 흠집이……!”


끝없는 어둠 속을 걷다 보니 저 멀리 그 많던 실군단을 모조리 해치우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특경부의 대원들이 보였다.


인혁의 얼굴에 살짝 스친 듯한 작은 상처가 있었다. 인혁은 그 상처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이준 형과 선아 누나에게 말했다.


“야 박인혁~ 나 걱정했냐?”


진우의 목소리에 인혁이 다급히 옆으로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보았다. 심하게 다친 진우를 보며 인혁은 애써 놀란 기색을 숨기려고 했다.


“했겠냐?”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인혁의 눈빛에 깊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특경부의 대원들과 함께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끝없이 펼쳐졌던 어둠이 사라지고 눈부신 협회의 불빛들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무심코 올려다본 밤하늘에 수놓아져 있는 달이 무심한 하늘을 환하게 빛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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