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8화
한바탕 사건이 있고 난 뒤 새로운 실군단의 흔적은 잠시 발길을 끊었고 본부에는 한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화이트보드에 사건 하나가 추가되었다. 저번에 진우에게 일어났던 그 납치 사건이었다.
진우와는 한 집에 살고 있기에 그날도 어김없이 같이 퇴근을 하며 진우가 당시의 상황을 내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진우의 말에 의하면 우두머리를 돕는 조력자는 여자아이 한 명과 남성 두 명으로 총 세 명. 그중에서 집중해야 할 사람은 속성 제어 팔찌를 차고 있던 불 속성 보유자인 남성이다.
속성 제어 팔찌는 협회에 등록된 사람에게만 제공된다. 그럼 그 사람은 아마 협회에 살고 있거나, 살았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특경부 대원들이나 속성 대표님들과 같이 속성 보유자이면서 사회에 사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 만약 사회에 산다고 한들 협회장 집무실에 그에 대한 서류가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불 속성 보유자인 모든 사람들의 서류를 뒤져서 그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애당초 찾는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속성을 사용 중인 듯한 하늘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히 눈에 띄는 다른 특이점은 없다고 했다.
나는 진우가 알려준 실군단의 우두머리가 그에게 했던 질문을 곰곰이 생각했다.
특경부의 업무와 목적, 생겨난 시기에 대한 의문, 특경부의 직속 상사. 모두 하나같이 아주 조금의 진실을 섞은 답변 하나에도 끊임없는 연결고리를 형성하여 많은 해답과 수만 가지의 가정을 세울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들이었다.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지, 알아낸 답들의 사실 확인을 위한 건지, 아니면 이미 확신할 수 있는 답을 알아냈으면서 한 번 떠보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우두머리는 실군단 내 ‘마스터’라고 불리며 수상할 정도로 속성과 협회에 대해 잘 알았고, 특경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다. 물론 속성 보유자라면 협회와 속성, 그리고 특경부에 관한 건 얼마든지, 어쩌면 당연히 알만한 정보이기에 그것은 그리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으나 가장 걸리는 건 협회에 엄청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는 협회를 향한 원망을 품고 있는 걸까.
정리되지 않는 깊은 생각을 하나둘 천천히 다듬고 있을 때, 본부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다들 바쁠 텐데 갑작스레 찾아와 미안하구나. 별건 아니고 진우 팔찌 다 고쳐서 돌려주려고 왔어.”
JI 연구소의 소장이자 풀 속성의 대표이신 최 소장님이셨다.
JI 그룹 소속인 JI 연구소에서는 속성과 관련된 연구가 진행된다. 속성 제어 팔찌도 연구소에서 만든 것이다.
“아빠다!”
그리고, 최 소장님은 이준 형과 쌍둥이의 아버지이셨다. 이현이 최 소장님을 부르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구, 우리 딸.”
최 소장님을 바라보는 이현의 모습은 마치 꼬리를 흔들며 헤실거리는 강아지 같았다. 최 소장님은 다정히 미소 지으신 채 이현에게 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진우에게 팔찌를 건네셨다.
“연락하시면 제가 찾으러 갔을 텐데…….”
“되었다. 연구 진행하느라 계속 앉아 있었더니 몸이 좀 뻐근해서 말이야. 온 김에 너희 얼굴도 보고.”
팔찌를 건네받는 진우가 미안함을 표하자 최 소장님이 그 감정을 무마하시려는 듯 몇 번 웃어 보이셨다.
“그보다 진우야, 몸은 좀 괜찮으냐?”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다행이군.”
진우는 은색 팔찌를 대신해 착용하고 있던 금색의 팔찌를 빼고 곧바로 원래의 은색 팔찌를 착용하였다. 제 주인을 되찾은 팔찌의 보석이 다시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다들 수고하거라.”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시는 최 소장님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였다.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른 채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시계 속 시침은 퇴근 시간에 우뚝 멈춰서 있었다. 문득 시선 속에 들어온 아직 미성년자라 서류 작성과 같은 업무는 맡지 않고 불법 속성 사용자 발생 시 본부 지원만을 하는 쌍둥이를 제외한 대원들의 모습이 모두 하나같이 주럽에 찌들어 있었다.
“이제 슬슬 모두 퇴근합시다.”
그 한마디에 쭉 유지되고 있던 본부의 정적이 철저히 깨지며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활기가 본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어쩐지 오늘은 제법 한가로웠네.”
본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인화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늘은 단 한 명의 불법 속성 사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야, 너 그런 말을 하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며 퇴근 준비를 하려는 인혁의 떨리는 목소리가 인화에게 닿던 그 순간, 본부에 경보음이 물 건너간 칼퇴근을 알리며 요란스럽게 울렸다.
“아, 박인화!”
인혁이 인화를 째려보며 소리 지르자 인화는 어색한 몇 번의 헛기침과 함께 필사적으로 인혁의 눈을 피했다.
“협회 외진 골목에 불 속성 한 명, 번개 속성 한 명, 풀 속성 한 명으로 총 세 명이야…….”
연장 근무에 우울해져 축 처진 연희의 말을 듣고 현장팀이 곧바로 협회로 출발했다.
본부팀의 안내에 따라 불법 속성 사용자들이 있는 외진 골목으로 이동했다. 다들 피곤함을 가득 끌어안은 채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어린아이 세 명이 속성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부모님들 몰래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본격적으로 속성을 사용하기 전에 와서 누가 다치는 큰일은 생기지 않았다.
“다음부터 그러면 돼요, 안 돼요?”
인혁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분명 확실하게 정확히 절차를 밟아 정당한 처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나이가 어리고 매우 적은 양의 속성이었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하지 않았다 할지언정 속성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명백하였으니. 그러나 위험한 행동이긴 하지만 아직 어리기도 하고, 다친 사람도 없고, 반성하는 태도도 보이고 있다는 대원들의 몰아치는 필사적인 설득에 못 이겨 못마땅하나 결국 이번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안 돼요…….”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속성은 진짜 정말로 위험한 거예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나는데 다치면 아야 하잖아. 그치?”
아야 한다는 말에 겁에 질린 듯 아이들이 숙이고 있던 다급히 고개를 들며 눈을 크게 떴다.
“다치면 우리 친구들도 아프고 부모님들도 많이 속상해하시겠죠?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하면 안 돼요…….”
“응, 엄청 위험하니까 앞으로는 절대 이런 장난치지 마요. 알았죠?”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진지하게 혼을 내던 인혁이 그만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못 살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인혁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도 어릴 때 속성 가지고 장난 많이 쳤었지~ 옛날 생각나네.”
“그렇지, 엄청난 말썽꾸러기였지. 뭐 지금도 여전하지만.”
“뭐 인마?”
진우의 말에 인혁이 발끈하며 그를 째려보았다.
“박인혁 어릴 때 속성 대표님들한테 많이 혼났지~ 얼마나 혼났는지 셀 수도 없잖아?”
“참나, 누가 보면 넌 안 그런 줄 알겠다? 맨날 너도 내 옆에서 장난치다 나랑 같이 혼났으면서.”
진우랑 인혁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편의점에 간 선아 누나가 막대 사탕 세 개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 사과 맛이었다.
“자, 이거 먹어요.”
누나는 편의점에서 산 사탕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시간 늦었으니까 내가 애들 집에 데려다주고 올게. 부모님들 걱정하시겠다.”
진우가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감사합니다, 라고 외친 뒤 진우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후후, 짠!”
아이들이 멀어지자 선아 누나가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하나 꺼내 자신의 입에 넣었다.
딸기 맛이 아닌 사과 맛이었다.
“사과 맛 맛있어?”
넌지시 내뱉은 내 말에 누나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답하였다.
“막대 사탕 맛들 중에서 제일 맛있어.”
……거짓말.
고개를 끄덕이며 짓는 저 은은한 웃음이 어찌나 내 마음을 파고 들어가 아프게 만드는지 누나가 조금이라도 알기나 할까.
아니, 절대 모르겠지. 평생 알아서도 안 되고.
“너도 먹을래?”
“더 있어?”
“응, 딱 한 개.”
주머니에서 누나가 또다시 사탕 하나를 꺼냈다.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기억이 만들어낸 건지 누나는 자신이 먹을 막대 사탕을 살 때면 자기가 다 먹을 것도 아니면서 꼭 두 개씩 사는 버릇이 있었다.
“아니. 단 거 싫어.”
그때 내 옆에 있던 인혁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누나 손에 들려 있는 사탕을 빤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누나, 나 먹을래!”
“자.”
인혁은 누나가 건네는 사탕을 받아 곧장 입에 넣었다.
“아싸, 공짜 사탕~”
보자, 상황도 다 정리됐겠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 없지.
“현장팀, 복귀합시다.”
그렇게 다시 본부로 돌아가려던 그때, 인혁이 걸음을 옮기는 나의 팔을 붙잡았다.
“속성 제어 훈련 조금만 하다 갈게. 박인화한테는 말하지 말고 먼저 집에 가라고 해줘.”
평소와는 달리 장난기를 빼 한층 진지해진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막대사탕을 인혁이 와그작 씹어 먹었다.
“팔찌는, 챙겨 왔어?”
“당연하지.”
인혁은 주머니 속에서 금색으로 된 팔찌를 꺼내 손가락으로 휘휘 돌렸다.
“알겠어. 무리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무전기로 연락해. 본부에 있을 테니까.”
“너 퇴근은?”
“남은 일 좀 더 하다 갈려고.”
오늘 안에 처리해야 할 업무는 더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인혁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아무도 없으면 안 되니까.
“알았다.”
웃음을 띤 인혁이 설렁설렁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아 자신만의 속성 제어 훈련장으로 향하였다.